반도체 수급 불균형으로 車 업계 감산
두뇌 역할하는 반도체 없으면 자동차 못 만들어
포드·GM·폴크스바겐 생산 조정…차질 100만대

전 세계 자동차 공장이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으로 그야말로 비상이다. 지난해 전 세계에 갑자기 불어닥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자동차 수요와 생산이 줄어 반도체 업계가 자동차 반도체 생산량 상당수를 가전과 정보기술(IT) 기기 등으로 옮겼고, 이후 자동차 수요 회복에 반도체 수급 불균형이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 미국 한파로 텍사스주의 전력과 물(水) 공급이 원활치 않다는 점도 공급난을 가중시켰다. 이 지역에는 자동차 반도체 회사와 공장이 다수 위치해 있다.

반도체는 자동차 한대에 들어가는 부품 숫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현재 1%쯤으로 매우 적지만, 각 부품과 기관의 ‘두뇌’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없으면 차가 굴러가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자동차 생산 공장을 멈추거나, 감산(感産)에 돌입한 상태다. 피해가 불어나고 있는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 중에 있다. 자동차 반도체 공급 부족이 발생한 원인과 현재 상황, 자동차와 반도체 업계의 대응 상황 등을 살펴봤다.

◇ 車 반도체 부족 원인…코로나19 변수·수요 예측 실패

자동차 반도체가 품귀 현상을 겪는 원인은 복합적이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큰 요인으로는 반도체 업계의 수요 예측 실패가 꼽힌다.

그래픽=박길우, 이민경

지난해 전 세계에 갑자기 불어닥친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은 자동차 생산 감소로 이어졌다. 각 국이 감염병 전파를 막기 위해 셧다운(일시 중단)에 들어가는 등 ‘이동’을 틀어막고, 사람간 ‘거리두기’에 들어가자 이동수단인 자동차 수요가 크게 감소했다.

이 탓에 자동차 반도체 생산도 줄었다. 반도체 업계는 자동차 반도체 몫으로 책정해 둔 생산 비중을 비대면 흐름으로 수요가 증가한 가전과 PC, 게임기 등으로 옮겼다. 이 분야들은 펜트-업(억눌렸던 수요가 폭발하는) 효과까지 겹쳐 수요가 폭증했다.

하반기 자동차 수요는 살아났지만, 생산 비중이 조정된 자동차 반도체는 수요에 맞춰 생산을 끌어올리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다. 여기에 자동차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이 적다는 점도 공급 부족을 재촉했다. 글로벌 자동차용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의 70%를 생산하는 대만 TSMC가 전반적인 반도체 수요 증가로 각 분야 반도체 생산량에 제한을 뒀고, 공급 병목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MCU는 자동차를 비롯한 모든 전자기기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반도체로, 최근 자동차에 전장이 확대되며 필수 부품으로 자리매김했다.

◇ 부품 3만개 車에 어떤 반도체 필요하길래, 없으면 생산도 멈추나

현재 자동차 반도체를 만드는 기업은 독일의 인피니언과 네덜란드의 NXP가 대표적이다. 두 회사 모두 인수합병(M&A)을 통해 자동차 반도체 분야에서 몸집을 불려왔다. 2019년 매출 기준으로 이 시장 점유율 1위는 NXP지만, 지난해 인피니언이 미국 사이프레스세미컨덕터를 인수하면서 순위가 역전된 것으로 본다. 그래봐야 두 회사의 점유율 차이는 2% 내외다.

그래픽=박길우, 이민경

이밖에 일본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미국 온세미컨덕터, 마이크로칩테크놀로지, 독일 보쉬 등이 자동차 반도체 시장의 상위 회사로 여겨진다.

자동차 반도체는 인포테인먼트, 텔레매틱스,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전기 동력계의 확대로 저변이 더욱 넓어지고 있다. KPMG는 자동차 반도체 시장이 매년 6~7% 성장하면서 2040년이면 1500억~2000억달러(약 169조~225조원)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측했다.

2만~3만개의 자동차 부품 중 반도체는 200~300개에 불과하다. 부품군별 사용 비중은 차체(바디)가 27%로 가장 높고, 인포테인먼트 부품 23%, 동력계 21%, 안전장치 17%, 섀시 12% 등이다. 기능별로는 MCU가 30%의 비중을 차지한다. 온도, 압력, 속도 등의 신호를 디지털화하는 반도체인 아날로그 회로는 29%다. 이어 광학·센서 17%, 로직 10%, 단기능 7%, 메모리 7% 순이다.

자동차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MCU는 마치 사람의 두뇌처럼 작용하면서 조건을 만족할 경우 특정 기기를 작동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현재 시각을 디스플레이에 표현하고, 안전띠를 매지 않으면 경고음이 울리는 것이 MCU가 관장하는 일이다. MCU는 NXP와 르네사스가 각각 시장의 31%를 만들어 낸다.

그래픽=박길우, 이민경

자동차 생산원가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단가는 470달러(약 53만원) 수준으로, 생산원가 내 비중은 2% 수준이다. 다만 앞으로는 생산원가 비중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친환경화와 전동화 가속에 따른 것이다. 기존 내연기관차 대비 전기차는 반도체 사용금액이 92% 증가하고, 자율주행 단계별로는 기존 2단계에서 2.5단계로 상향될 때, 금액이 85% 증가한다. 현재 테슬라 모델3의 경우 반도체 사용금액은 1700달러(약 191만원) 규모로, 동급의 내연기관차와 비교해 약 4배 많다.

◇ 안심할 회사 없다…포드·폴크스바겐 이어 현대차도 감산 검토

비교적 넉넉하게 재고를 확보했다던 현대자동차그룹도 자동차 반도체 공급난이 지속되자, 위기 관리에 들어갔다. 현대차그룹의 핵심 협력사 일부가 현재 반도체 10개 이상 품목의 재고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르면 3월 중순부터 자동차 생산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만~3만개의 부품으로 이뤄지는 자동차는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부품이 하나라도 빠질 경우 완제품을 만들 수 없는 구조다. 지난해 초 중국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난 직후 자동차용 전선이 부족해 생산에 타격을 입은 것이 대표적이다.

과거 자동차 전체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부품 숫자는 1% 수준에 불과하지만, 레벨3 이상 자율주행이 적용된 차량이 본격 도입되는 2022년에는 2000개 이상의 반도체가 필요할 것으로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은 내다봤다. 더구나 반도체가 각 장치의 ‘두뇌’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공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을 경우 생산에 치명적이다.

폴크스바겐그룹은 중국과 북미, 유럽 내 1분기 생산을 10만대 조정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 그룹에 속해있는 아우디는 1월 고급 모델 생산을 연기하고, 직원 1만명의 휴직을 발표했다. 포드는 지난달 18일부터 이달 19일까지 독일 공장을 폐쇄했다. 미국과 캐나다 공장도 일시 중단했다. 일본 업체들은 중국 위주로 자동차 생산의 일시 축소를 발표했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1월 말 본격화하기 시작한 반도체 공급 부족은 1분기 100만대의 생산 차질로 이어질 전망이다. 사태에 따라선 3분기까지도 자동차 반도체 공급난이 계속될 수도 있다고도 예측했다.

그래픽=박길우, 이민경

송선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자동차 업계 내에서는 반도체의 수급 불일치가 가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며 "공급부족이 해결되려면 8인치 웨이퍼 공정용 생산라인이 늘어나야 하는데, 반도체 업체들 입장에 서는 12인치 웨이퍼보다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은 8인치 및 자동차 반도체에 대한 생산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어 중장기적으로도 수급은 빡빡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