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77건 중 54건은 회사 운영 자금 위해 유증

국내 기업이 올해 들어 약 2개월간 4조7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0% 이상 증가한 규모이다.

금융 투자 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유상증자 급증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와 관련 있다고 분석했다. 돈은 필요한데 대출을 통해 조달할 수 있는 자금에 한계가 있는 만큼, 기업들이 유상증자를 통해 돈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픽 = 박길우

조선비즈가 올해 초부터 지난 2월 25일까지 나온 유가증권·코스닥·코넥스시장 상장사 및 기타 법인의 유상증자 결정 공시 77개를 분석한 결과, 이 기간 국내 기업은 총 4조7400억원 규모의 증자 계획을 발표한 것으로 집계됐다. 해당 기업뿐 아니라 종속회사의 유상증자도 포함한 통계이다. 정정 공시와 재공시는 제외하고 최초로 내놓은 공시만 집계했다.

4조7400억원 중 SK바이오사이언스의 증자 예정액 7400억원은 상장을 통해 들어올 자금인 만큼 특수성을 감안해 제외하더라도, 지난해 같은 기간 증자 금액 2조9400억원과 비교해보면 큰 폭으로 늘어났다.

각 기업이 밝힌 유상증자 목적을 살펴보면, 회사 운영 자금 조달이 전체 77건 중 54건으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네이버가 3500억원을 출자한 빅히트 자회사 비엔엑스(BeNX)나 상장을 앞두고 칼라일에 2200억원을 투자받은 카카오모빌리티처럼 사업 확장을 위해 증자하는 기업도 일부 있으나, 그보다는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한 증자 사례가 현저히 많다. 채무 상환을 목적으로 한 유상증자도 10건이 있었다.

올 들어 채무 상환을 위해 유상증자를 결정한 대표적인 업체로는 셋톱박스 업체 휴맥스가 있다. 휴맥스는 지난 17일 453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 중 152억원을 채무 상환에 사용하고 나머지를 사업 다각화에 투자할 예정이다. 카메라 렌즈 모듈 업체 해성옵틱스도 지난달 29일 자회사의 채무 상환을 위해 446억원을 유상증자하겠다고 밝혔다.

금융 투자 업계 관계자들은 올해 들어 기업의 유상증자가 급증한 것이 코로나19 발 경기침체와 관련 있다고 봤다.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관계자는 "기업의 업종 및 재정 상황에 따라 유상증자 목적이 제각기 다르겠지만, 코로나19의 대유행이 기업 운영에 다방면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채무 상환을 위해 유상증자를 결정한 휴맥스와 해성옵틱스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의 여파로 실적 악화를 겪고 있다. 지난 16일 휴맥스는 작년 당기순이익이 적자전환했다고 밝히며 코로나19의 유행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지난해 휴맥스의 당기순손실은 1009억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36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해성옵틱스 역시 실적 부진의 이유를 코로나19에서 찾았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유상증자를 하면 기존 주주의 보유 지분의 가치가 낮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증자보다는 차입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이 더 유리하다"며 "그럼에도 유상증자가 크게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많아졌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재정난을 겪는 기업이 늘었다는 사실은 은행의 기업대출 증가 수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5일 은행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달 말 은행권의 기업대출 잔액은 986조3000억원으로 전달보다 10조원가량 늘었다. 코로나19 탓에 실적 부진에 빠진 기업들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한편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 수혈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투자자는 유상증자의 방식에 따라 주가 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볼 수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지분을 살 사람을 미리 정해놓는 제3자배정 유상증자의 경우는 주가에 호재로 작용하나, 일반공모 방식의 증자는 악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자이에스앤디의 경우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의 유상증자 계획을 공시한 다음 날 주가가 8% 넘게 하락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