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다음달 열리는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홍콩의 선거제를 뜯어고칠 예정이라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2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홍콩의 의회인 입법회는 지난해 야권 의원들이 모두 물러나면서 친(親)중 의원들만 남은 상황이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여기서 더 나아가 홍콩 행정장관을 선출하는 선거인단 1200석 중 구의원 몫 117석을 아예 없애거나 대폭 축소하는 방안을 양회 투표에 붙일 방침이다.

홍콩의 구의원 선거인단은 승자독식 방식으로 꾸려진다. 2019년 구의회 선거에서 범민주진영이 452석 중 388석을 차지한 데 따라 이대로 선거를 치르면 177명 모두 범민주진영이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애국자가 홍콩을 다스려야 한다(愛國者治港)’는 중국의 입장에서 결코 반갑지 않은 전개여서 그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국 정부가 어떤 형식으로든 개입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돼 왔다.

중국 정부의 홍콩 책임자인 샤바오룽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사무판공실 주임도 이날 취임 후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나와 ‘홍콩 정치권에는 애국자만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날 홍콩·마카오연구협회가 주최한 비공개 화상회의에 참석해 "중국에 반(反)하거나 홍콩을 분열시키려는 자는 누구라도 핵심 자리를 차지해서는 안 된다"며 "애국자의 반대편에 서고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원칙을 파괴하려는 자는 홍콩특별행정구의 정치권에 현재도, 앞으로도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했다.

샤바오룽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사무판공실 주임.

중국은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넘겨받으면서 2047년까지 일국양제 체제를 유지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2019년 홍콩에서 대규모 반중 시위가 벌어진 이후부터는 입장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시한이 절반도 더 남은 가운데 홍콩에 대한 통제를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일국양제는 홍콩 주권 반환 후 50년간 중국이 외교와 국방에 대한 주권을 갖되, 홍콩에는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는 것을 뜻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27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에게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애국자가 홍콩을 다스린다’는 원칙을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애국자, 즉 중국에 우호적인 인사를 홍콩 정치권에 두는 것이야말로 홍콩의 장기적 번영과 안정을 위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중국 정부의 이러한 입장은 실질적 조치로도 이어지고 있다. 일례로, 홍콩 정부는 지난해 7월 1일부터 모든 공무원에게 홍콩의 ‘미니 헌법’ 격인 기본법과 정부에 대한 충성 서약을 요구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해 10월까지 해당 서약에 서명한 공무원은 2900여명에 달한다. 앞서 패트릭 닙 홍콩 공무원사무장관은 공공부문 직원 단체 관계자들과 만나 "18만 홍콩 공무원 전원이 충성을 맹세해야 한다"며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잘릴 수 있다"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공무원들의 충성 서약은 지난해 6월 30일 시행된 홍콩보안법에 따른 것이다. 홍콩보안법 6조는 공직을 맡은 홍콩인은 서면이나 구두로 기본법 준수와 정부를 향한 충성을 약속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2019년 6월 홍콩에서 열린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반대 시위에 공무원들이 참여한 사실이 드러나자 중국 정부가 특별히 넣은 조항이다.

패트릭 닙 홍콩 공무원사무장관.

홍콩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고등학교 시사교양 필수과목인 통식(liberal study)의 전면 개정과 관련 교과서 사전검열 계획을 발표했다. 통식은 학생들이 국가나 국제, 사회 문제 등에 있어서 서로 다른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도록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과목이다. 실제로 이 과목은 홍콩 학생들이 2014년 우산혁명과 2019년 민주화 시위에 앞장서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홍콩 교육부는 지난해 6월에도 통식에서 ‘3권분립’이라는 표현을 뺐다. 케빈 융 홍콩 교육부 장관은 통식의 과목명 변경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통식에 들어가는 리버럴(liberal)이란 단어가 "부정적인 개념"과 연계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였다.

중국 정부는 지난 1년간 중국 중앙인민정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중련반) 인원을 100명가량 증원했다. 중국은 원칙적으로 외교·국방을 제외한 홍콩 내정엔 관여할 수 없기 때문에 홍콩에 중련반이라는 기관을 두고 홍콩 정부와 각 분야 업무를 조율한다. 이와 관련, 홍콩 매체 홍콩01은 "중련반의 본질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중련반은 이제까지 정치 분야의 선전·교류 업무를 담당했지만 앞으로는 홍콩의 경제·민생 사업을 맡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