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장에게 듣다]①조세재정연구원
"정교한 선별지원이 승수 효과 높아… 소득 파악·분석 역량 중요
기본소득은 30년 뒤에야 고민해야… 현물지원 등 복지 확충이 우선
전국 조직 가진 국세청 역할 필요… 중부담 중복지 지향해야
고령화 인구감소 대응위해 확장적 재정정책은 불가피한 선택"

"재난지원금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두텁게 줬을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은 18일 서울 반포동 조달청사에 위치한 연구원 집무실에서 가진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극복과 관련해, 선별지원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김 원장은 "어떤 사람들은 재난지원금을 모든 사람에게 줬을 때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그건 증명이 안됐다. 더 들여다 봐야 한다"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그는 "경제가 정상적인 상황에서 현금성 이전 지출은 저축 증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재정지출의 승수 효과가 떨어진다"며 "다만 경제 위기 국면에서 급작스럽게 소득 활동이 원활하지 않아 어려워진 특정 계층에 정교하게 정부가 이전 지출을 늘릴 경우 소비 등으로 이어지는 지출 승수 효과가 높게 나타난다는 최근 연구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원장과의 인터뷰 다음날인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보편지원’이라고 할수 있는 전국민위로지원금 지급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간담회에서 "코로나19에서 벗어날 상황이 되면 국민위로지원금, 국민사기진작용 지원금 지급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사실상 코로나 상황이 진정되면 전 국민에게 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정부 재정정책이 조세재정분야 국책연구원장 등 전문가들의 조언과 반대로 정치적인 셈법에 의해 추진된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이 18일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지원금+손실보상+이익공유까지… "정교한 선별 시스템 필요"

최근 정부와 여당은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라 4차 재난지원금 및 1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검토하고 있다. 아직 정확한 규모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재난지원금과 함께, 필수근로자 지원 등 15조원 안팍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 원장은 효과적인 재정 투입을 위해서는 정교한 선별지원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업체별로 영업과 관련해 시간, 기간 차원의 제한이 있었지만, 이로인한 손실이 얼마인지는 추정하기 쉽지 않다"며 "정교한 선별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코로나19 피해를 명확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고 했다.

과거 2~3차 지원금은 국세청 카드내역과 건강보험공단의 매출액, 직원수 등의 정보를 활용했다. 매출액 4억원 이하, 직원 5인 이하라는 조건에 해당되는 자영업자들은 최대 100만원 가량 비슷한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구조였다. 사업 형태별 자영업자들의 실제 피해에 비례한 지원금을 지급하는 형태의 고도화 된 선별지원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과세 정보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과세 정보는 그간 개인정보 문제로 인해 국세청이 각 부처에 제공하기는 어려웠다. 국세기본법 제 81조13(비밀유지)에 따르면 납세자가 제출한 자료나 업무상 취득한 과세 자료를 타인에게 제공 또는 누설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국세청이 전담하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국세청이 지급하는 근로장려금(EITC)처럼 국세청이 재난지원금의 지급 주체가 되면 과세 정보를 외부에 공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국세청은 전국적인 조직과 함께, 국민의 소득 정보를 가지고 있는 과세 관청"이라며 "외국의 경우 아동보조금이나 가족수당 등 세금 관련 보조금을 주는 역할을 국세청이 하는 나라도 많다"며 "기존 건강보험공단의 자료와 국세청의 카드사용 내역, 나아가 부가세와 소득 등 과세 정보 등을 더한다면 지금보다는 정교한 선별지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소상공인 버팀목 자금을 신청하기 위해 민원인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기본소득 보다는 현물복지 늘려야… 중복지 위해 증세 필요

김 원장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기본소득제와 관련해서는 "경로의존성 등을 감안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 볼 문제"라고 했다. 앞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해 6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효과가 2~3개월 지속되는 전 국민 20만~30만원의 소멸성 지역화폐 지원을 연 1~2회 정기적으로 실시하면 어떤 경제정책보다 경제효과가 클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기본소득제에 불을 붙였다. 이후 기본소득제는 여야의 난타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김 원장은 "기본소득이 될 수 있으려면 10만~20만원은 부족하고 100만원 정도는 줘야 현실성 있는데, 그 재원을 현재로서는 감당할 수 없다"며 "현재 우리나라의 복지가 중복지로 올라가고 있는데, 기본소득제로 사용할 돈을 공급자 중심의 시장인 의료(건강보험)와 주거, 교육 등에 투입해, 현물복지의 퀄러티와 규모를 키운다면 적은 액수의 기본소득을 받는 것보다 만족도를 훨씬 높일 수 있다. 이 방법이 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김 원장은 중복지 국가로서의 성장을 위해, 장기적으로 증세가 필요하다고 입장도 내비쳤다. 김 원장은 "이미 우리의 복지제도는 많이 성장했고 건강보험의 경우 상당히 수준이 올라왔다. 중부담·중복지는 우리가 10~20년 시간을 두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며 "경제적 합리성 봤을때 증세 필요하다. 어느정도 복지가 갖춰져야 경쟁력있는 국가고 그래야만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다. 복지는 국가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으로 경제가 더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김 원장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정부의 재정지출 확장에 대해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김 원장은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렸지만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는 적게 했다. 주요 선진국은 국내총생산(GDP)의 17%까지 했다는 얘기도 있다"며 "작년 1~4차 추경을 통해 재정지출을 65조원 정도 늘렸고, 그 중 절반 정도가 지출 확대고 나머지는 지출구조 개선과 세입경정이었다. 65조를 다해도 우리나라 GDP의 3.5% 수준으로 최소한의 지출을 확대했고, 그만큼 우리 정부가 재정에 대해서 예민하게 결정을 하고 있다"고 했다.

◇ 작년 우리 경제 ‘선방’... 고령화 등 구조적 문제 선제 대응

김 원장은 작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1.1%에 대해 "선방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주요 선진국이 -5% 이상 성장률이 떨어진 가운데, 한국이 경제 지표들이 상대적으로 좋았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 고령화와 인구감소 등 우리 경제의 구조적 잠재성장률 저하에 대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재정지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원장은 "현 정부 초기에는 상당한 세수가 많이 들어와서 재정이 흑자 상태였고 세계잉여금으로 국채를 값기도 했지만, 당시 경기로 봐서는 호황기에서 침체기로 전환되던 시절이었다"며 "지출을 수입도 적게한 셈인데 반성해야할 부분이다. 다만 이후 정부는 재정을 투입해 침체기가 안되도록 노력을 했고, 이는 잘한 일"이라고 했다.

이어 "경제에는 국민과 국가, 기업 등 경제 주체들의 저축과 투자, 소비의 균형이 중요한데, 적정한 균형이 성장의 경로를 찾아가는 것"이라며 "고령화, 인구감소 등의 상황에서 국민은 소비를, 기업은 투자를 줄이는데 정부가 지출을 늘려 경제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고령화 사회 초기국면이지만 겁을 낼 게 아니다. 우리 사회를 성장시켜놔야 후대 세대들이 고령화를 감당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