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인플레 급등에도… 연준은 '완전고용' 강조
"연준, 고질적 저성장 타개 정책 실험 중일수도"

수십년간 '인플레이션 파이터' 역할을 해왔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변화가 성공할 수 있을까. 미 기대인플레이션이 연거푸 고점을 갈아치우면서 인플레이션의 우려가 커지자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시장 달래기에 나섰다. 완전고용에 대한 의지를 다시 강조하며 일정수준의 과열을 용인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연준이 아무리 돈을 풀어도 벗어나지 못했던 저성장·저물가 국면을 타개할 기회로 현 상황을 해석하기도 한다. 경기확장에 따라 점진적으로 오르는 '좋은(benign) 인플레이션'을 연준이 반기고 있다는 시각이다. 자산급등은 미시적인 금융정책으로 조절하면서 고질적 저성장, 고용의 질적문제 등을 해결할 정책실험을 하고 있다는 진단도 있다.

시장에서는 연준의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한 만큼 당분간은 달러 약세가 이어질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미국의 ‘완전고용’이 달성될 때나 통화정책 정상화가 가능해져 당분간은 현재의 완화적 통화정책이 유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

◇美 기대인플레 급등… 파월 또 ‘완전고용’ 강조, 시장불안 달래

우리나라의 설 연휴기간이었던 지난 10일(현지시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급격하거나 장기적인 인플레이션을 기대하지 말라"고 강조하면서 "과거 실업률이 하락하면 금리인상으로 대응했지만 지금은 그럴수 없다"고 했다.

이는 최근 대규모 경기부양에 대한 기대감에 인플레이션 우려가 확대되는 데 대한 연준의 응답으로 해석됐다. 지난 9일(현지시간) 기준 미국 기대 인플레이션율(BEI)은 2.22%로 2014년 8월 이후 약 6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터진 직후였던 지난해 3월 0.5%까지 떨어졌던 BEI가 2%를 훌쩍 넘어선 것이다.

파월 의장의 지난해 평균물가목표제(AIT) 도입을 발표한 이후 일관된 입장을 밝히며 시장에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통화정책의 목표를 물가에서 '완전고용'으로 옮겨갈 것이며, 이 과정에서 소비자물가상승률 2%를 넘어서는 과열도 일정수준 용인하겠다는 것이다. 연준이 목표로 하는 것은 최대 고용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자연실업률 4.1%이하로 떨어져도 상당기간 완화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물가 급등이 현실화될 경우 연준의 스탠스가 바뀔수 있다는 점에서 물가 궤적 전망은 자산시장에 있어 중요하다"며 "그러나 파월 의장 발언에서 연준 정책 초점이 여전히 물가보다는 고용에 있음이 확인됐다"고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의 리바이스 스타디움에 마련된 코로나19 백신 접종소에서 9일(현지시간) 앤드루 블래쉬(84세)가 백신을 맞고 있다.

◇수요가 이끄는 ‘좋은 인플레’…"연준, 디플레 파괴 정책실험"

시장에서는 인플레이션 경기 확장 흐름에 따라 점진적으로 상승하는 가운에 연준의 정책 기조 변화가 자연스럽게 안착하는 '좋은 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이때 BEI는 2.5% 내에서 유지되는 것을 전제로 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는 일시적으로 연준의 물가목표치(2.0%)를 상회하다 하반기에는 물가상승률이 다소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금센터는 2분기 물가 상승률이 3%를 상승할 가능성도 내다봤다.

또 하반기가 되면 코로나19 충격이 컸던 숙박, 여행, 운송 등이 수요 정상화에 돌입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상반기에 기저효과와 이연된 소비가 물가상승을 주도한 이후 하반기에는 수요정상화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연준이 수요가 유발하는 물가상승을 장기 저물가·저성장, 양극화 등 구조적 문제를 타개할 기회로 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파월 의장이 과거와 달리 물가가 불안하다고 해서 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사실상 정책 실험적 측면에 있다는 것이다. 지속적인 재정지출을 강조하는 것 역시 정책 공조차원에서 일맥상통하다.

다만 이경우 최근 증시급등을 비롯한 자산버블 논란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국제금융센터는 이 경우에도 통화정책과 같은 거시정책이 아닌 비은행 기관의 유동성 규제를 비롯한 미시적 금융정책을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국채에서 시작된 시장금리 상승이 일어날 경우에도 금리인상을 배제한 포워드 가이던스나 자산매입, 수익률곡선제어(YCC) 등의 방안을 사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성택 국제금융센터 전문위원은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 중앙은행의 가장 큰 숙제는 금리를 아무리 떨어뜨려도 저성장 기조가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디플레이션 우려를 파괴하는 정책실험의 일환일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전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거래일보다 1.3원 내린 1100.1원으로 5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나타냈다. 장중에는 1100원을 하회하기도 했다. 미 연준이 인플레이션 우려에도 긴축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한동안 달러 약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강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