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11조원가량을 내다 팔았던 연기금이 시가총액 대비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은 2차 전지 관련주인 세방전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세방전지는 2019년 새롭게 국민연금 대량 보유 주식 명단에 이름을 올린 곳으로,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계속 팔고 있는 연기금도 살 건 산다’라는 반응이 나온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도 2차 전지에는 베팅했다는 것이다.

16일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으로 연기금은 시총 1조5540억원인 세방전지를 연초부터 총 246억원어치 사들였다. 세방전지의 시총 대비 연기금 순매수 대금 비율은 1.58%다. 시총 대비 연기금의 매수 비율을 살펴보면 세방전지를 이어 키움증권(1.51%), 솔루스첨단소재(1.43%), OCI(1.38%), 빅히트(1.30%) 순이었다.

그래픽=박길우

순매수 금액으로만 따지면 시총이 큰 빅히트와 LG디스플레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시총 대비 순매수 규모로 보면 이들보다는 생소한 기업인 세방전지가 제일 큰 규모로 올라선 셈이다. 순매수 대금 기준으로는 빅히트(1049억원)·LG디스플레이(655억원)·삼성바이오로직스(648억원)·키움증권(580억원)·OCI(391억원) 순으로 연기금이 가장 많이 샀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단순히 순매수 금액만을 기준으로 하면 전망과 상관없이 규모가 큰 회사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라면서 "시총 대비 매수 금액 비율이 높았다면 연기금이 어떤 전망을 갖고 이들을 매수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연기금은 미리 연도별 자산 비중을 일정 수준 정해놓고 이 범위 안에서 조정하는 방식으로 자금은 운용한다. 주식 자산 비중이 높아지면 주식 비중을 축소하고 그 안에서 사거나 팔 종목을 고르는 식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연기금이 시총이 상대적으로 작은 세방전지를 높은 비중으로 사들이는 건 연기금도 2차 전지를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차량·산업용 배터리 전문 제조업체인 세방전지는 ‘로케트배터리’로 유명하다. 세방전지 주가는 최근 5개월 만에 4배 넘게 올랐다. 지난해 9월 2만6000원대이던 주가가 전날 11만1000원을 기록했다. 특히 세방전지 자회사인 세방리튬배터리가 2차 전지 수혜주로 알려졌다.

앞서 연기금은 연초부터 지난 15일까지 유가증권 시장과 코스닥 시장을 합쳐 약 11조795억원을 순매도했다. 유가증권 시장에서 10조5843억원, 코스닥 시장에서 4952억원을 팔았다. 이는 한국거래소 자료가 존재하는 1999년 이후 최대 순매도 규모다. 연기금이 짧은 기간에 11조원 넘게 주식을 순매도한 건 과거 유례가 없던 일이다.

일각에선 연기금이 국내 주식 비중 초과로 올 상반기에만 30조원을 추가로 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노동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초부터 펼쳐진 코스피 대형주의 강한 상승 랠리는 연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을 더 높였다"라면서 "동시에 채권 등 다른 자산 수익률이 국내 주식보다 낮은 상황을 보이자, 연초부터 빠른 비중 조절을 했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