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정부와 서울시가 국내 최대 쪽방 밀집 지역인 서울역 쪽방촌 일대를 주거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히면서 해당 지역 소유주는 물론 용산구 일대 주민들 사이에서 복잡미묘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낙후 지역이 깨끗하게 정비되고 개발 사업이 잇따라 발표되는 것은 반길 일이지만, 일자리와 고급 주거단지 이야기는 없고 대부분 임대주택 이야기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 용산구는 국제업무지구 개발, 용산공원 조성, GTX-A 노선 신설, 재개발 정비사업 등 각종 개발 계획으로 큰 변화를 기대하던 지역이다.

10일 국토부가 발표한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 재생 사업 추진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서울역 인근 용산구 동자동 쪽방 밀집 지역 4만7000㎡를 정비사업 지구로 지정하고 내년 지구계획과 보상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곳에는 임대 1250가구·분양 200가구 등 공공주택 1450가구가 오는 2026년까지 조성될 예정이다. 민간분양주택 960가구는 2030년까지 공급된다. 동자동은 서울역 부근으로 남산의 남쪽, 용산 미군기지 북쪽에 있다.

해당 지역 공인중개업소에서는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전하고 있다. 동자동 A공인중개사무소장은 "지난 4일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자 매도자들이 팔려고 내놨던 단독주택과 빌라 물건을 다 거둬들였다"고 했다. 이 일대 재개발사업이 추진되면 향후 입주권 가치가 더 올라갈 것이란 전망이 작용한 것이다.

반면 당사자 상당수는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상의 없이 개발계획을 발표하며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후암특별계획1구역(동자) 준비추진위원회는 "정부가 토지·건물주들과 어떤 협의나 의견 수렴도 이뤄지지 않은 내용으로 아무런 사전 동의 없이 계획을 기습적으로 발표했다"며 "정부 계획에 결사 반대한다"고 입장을 냈다. 근처 지역 주민들의 시선은 복잡하다. A 공인중개사무소장은 "인근 주상복합 아파트인 아스테리움 소유주의 경우 이 일대 공공 주도 재개발사업 추진이 호재인지, 조망권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 섞인 문의가 있었다"고 했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당사자별로 입장과 이해관계가 다르다 보니 민간 주도 정비사업보다는 상대적으로 개발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이곳을 낙후된 지역으로 계속 방치하는 것보다는 나은 방향이라 속도감 있게 정비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해당 지역뿐만 아니라 용산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용산은 2006년 서울시의 '한강르네상스' 사업, 2018년 '여의도·용산 개발 마스터플랜' 등 서울시 미래 도시개발의 핵심지로 꼽히곤 했다. 하지만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이 잇따르면서 용산 일대를 국제 허브로 개발하는 '큰 그림'은 뒤로 밀렸고, '공공주택 사업'만 먼저 추진되는 중이다. 신계동에서 만난 한 주민은 "(정비창 부지를 가리키며)저 너른 땅이 텅 비어있는 것이 벌써 몇년이냐"면서 "그나마 공공주택이라도 먼저 짓겠다는 것을 다행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한심한 노릇이라고 보는 이가 더 많다"고 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후암특별계획구역 1구역 1획지 일대 모습.

애초 국제업무시설, 오피스 공간, 상업시설 등으로 개발하는 마스터플랜에 담겼던 ‘용산정비창 용지’, ‘캠프킴 미군기지’ 등은 지난해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발표로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핵심 부지로 선정됐다. 서울의 노른자위 땅을 개발해 도시 가치와 산업의 역동성을 키우려 했던 각종 사업들의 방향성이 흐려지고 임대주택 공급지로 먼저 활용되는 셈이다.

정부는 역세권 500m 이내 2종 주거지역~준주거지역에서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는 대신 늘어난 용적률 절반은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추진 중인 용산 철도병원 부지 개발 프로젝트는 병원 본관은 리모델링해 용산역사박물관으로 사용하고 남은 부지에 아파트·오피스텔·상업시설 등을 공급한다.

이촌동에 거주하는 박모씨는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는 것을 우려한다면서 도시정비를 미루고 있는데, 그래서 집값은 잡혔느냐"면서 "제대로된 개발을 빨리하는 것이 오히려 양질의 주택을 늘리고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는 지름길이 된다는 것을 시민은 아는데 정부만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어 "임대주택 건설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업무지구나 분양주택 이야기는 양념처럼만 들어가고 임대주택만 앞세우니 답답하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장현 용산구청장 역시 "용산의 한강대교와 중앙청에 이르는 거리는 국가 상징 도로이고 1번 도로인데 캠프킴에 임대주택을 짓는다고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면서 "캠프킴은 땅값이 족히 2조원에 이를 것이고 건축비가 상당히 투입될 텐데, (이 돈으로) 서울 근교 변두리에 지으면 3100가구가 아니라 1만 3100가구로 지을 수 있다"고 반대 목소리를 낸 바 있다.

전문가들도 용산 개발이 철학 없이 진행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경우가 많다. 이명박 정부 시절 용산정비사업에 관여해온 한 업계 전문가는 "왜 모든 것을 공공으로 개발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사업 방식이 지주 중심 사업이 아니라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라 토지를 수용해서 추진하는 것인데 토지 소유자의 관점에 따라 호재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날벼락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서울의 중심지가 1960년대의 모습으로 낙후돼 방치돼있었다는 점에서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도시를 재정비한다는 점에서는 환영하지만,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도시개발의 측면에서 서울의 철도 관문 역할을 하는 지역이자 핵심 업무지구로 개발이 이뤄져야 하는데 쪽방촌 일대에 조성되는 주거시설이 과연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일대가 한때는 국가의 상징적인 지역으로 개발하겠다는 청사진이 제시됐던 곳인데, 이곳을 모두 ‘주거 지역화’하는 것 역시 도시계획 측면에서는 안타깝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