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만 1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청해 세계에서 가장 큰 광고 ‘전쟁터’로 유명한 미국 프로미식축구 결승전 ‘슈퍼볼’에서 광고주 세대교체가 일어났다. 과거 슈퍼볼 광고시장에서 터줏대감 행세를 해오던 대기업들이 코로나19 여파로 올해는 광고를 내지 않기로 잇달아 선언한 반면, 코로나 사태 속에서 급성장한 온라인 회사들이 이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6일 광고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맥주 업체이자 유명 맥주 버드와이저를 제조하는 안호이저부시 인베브(AB인베브)는 오는 7일(현지 시각) 미국 플로리다주(州) 탬파의 레이먼드 제임스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슈퍼볼에 버드와이저 TV 광고를 내지 않기로 했다. 버드와이저의 TV 광고가 슈퍼볼에 나오지 않는 것은 1983년 이후 38년 만에 처음이다.

올해 슈퍼볼에 광고를 내지 않기로 한 안호이저부시 인베브(AB인베브)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유튜브 계정에 공개한 버드와이저 광고. 맥주제품 홍보가 아닌 의료 종사자들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내용을 담았다.

버드와이저뿐만이 아니다. 슈퍼볼에서 서로를 향한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주목을 받아온 탄산음료 라이벌 코카콜라와 펩시도 프라임타임(시청률이 가장 높아 광고비도 가장 비싼 방송 시간대) 광고 리스트에서 빠졌다. 펩시콜라를 보유한 펩시코는 대신 가수 위켄드(The Weeknd)가 출연할 슈퍼볼 경기 하프타임 쇼 후원에 집중할 계획이다. 코카콜라도 올해 중간광고를 내보내지 않기로 했다.

2008년 한국 기업으로는 처음 슈퍼볼 TV 광고를 했던 현대차(005380)도 올해 슈퍼볼 TV 광고를 건너뛰기로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슈퍼볼의 광고 효과가 예년보다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결정이다. 현대차는 2015년을 제외하고 지난해까지 모두 12차례 광고를 했다. 기아차도 지난 10년 동안 해왔던 슈퍼볼 TV 광고를 올해 생략했다.

전 세계 180여국에 생중계되고 미국에서만 1억명이 넘는 TV 시청자를 끌어모으는 슈퍼볼 경기는 광고비도 천문학적이다. 지난해 슈퍼볼 광고단가는 30초 기준 560만달러(약 62억원), 올해는 550만달러(약 61억원)다. 광고 방영 1초당 약 2억원이 드는 셈이다.

한 행인이 지난 4일(현지 시각) 미국 플로리다주(州) 탬파에서 열리는 전미프로풋볼(NFL) 결승전인 ‘슈퍼볼’을 앞두고 패트릭 머홈스(캔자스시티·왼쪽)와 톰 브래디(탬파베이)의 사진이 들어간 울타리 현수막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슈퍼볼 광고의 단골 고객이던 대기업들이 올해 불참 선언을 한 배경으로는 코로나19로 인한 암울한 실적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AB인베브는 식당과 스포츠 경기장 맥주 수요가 급감하면서 지난해 1~9월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6.8% 감소했다. 코카콜라도 평소 매출의 절반을 거두는 스포츠 경기장과 극장 등 인파가 몰리는 장소가 출입이 제한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슈퍼볼 광고에 쓰일 예산을 코로나19 관련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 사용할 계획인 기업들도 있다. 버드와이저는 TV 광고에 책정된 수백만 달러 이상의 광고 예산을 보건 관련 비영리 기구와 함께 백신 접종을 홍보하는 데 투입할 예정이다. 기아차도 슈퍼볼 광고비를 절약해 미국의 불우 청소년을 지원하는 ‘액셀러레이트 더 굿(Accelerate The Good)’이라는 공익사업 규모를 확대하기로 했다.

광고업계 관계자는 "광고주인 주요 기업들이 코로나19와 경제 불확실성으로 지난해 타격을 입었고, 코로나 시국에 광고가 너무 즐거워서도 안 되기 때문에 올해 위험이 크다고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판 ‘배달의민족’인 온라인 음식 배달업체 ‘도어대시’가 지난 5일(현지 시각) 공개한 슈퍼볼 광고의 한 장면.

이들의 빈자리는 코로나19의 혜택을 본 새로운 기업들이 차지했다. ▲무료 증권 애플리케이션(앱) ‘로빈후드’ ▲온라인 음식 배달업체 ‘도어대시’ ▲온라인 중고차 거래사이트 ‘브룸’ ▲전문가 프리랜서를 찾는 구인 사이트 ‘파이버’ 등이다. ▲온라인 도박 사이트 ‘드래프트 킹스’ ▲멕시칸 체인 음식점 ‘치포틀레이’ ▲개인 간 물품 거래 사이트 ‘머카리’ ▲구직 사이트 ‘인디드’ 등도 올해 처음 슈퍼볼에 광고를 낼 예정이다.

광고 내용 또한 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도어대시는 인기 인형극 ‘세서미 스트리트’의 캐릭터들이 나와 외출이 어려워진 소비자들을 향해 키친타월이나 쿠키 같은 아이템도 배달해준다는 점을 알린다. 파이버는 중소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사업을 어떻게 온라인으로 전환해야 하는지, 인디드는 어려운 시장 상황에서 일자리를 찾는 사람의 여정을 다룬 광고를 준비했다.

광고업계 관계자는 "새로 광고를 내는 기업들은 코로나19 영향으로 새로운 고객을 확보해 회사가 성장한 만큼 이들을 유지하면서 시장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며 "전통적으로 슈퍼볼 광고는 인지도를 높이는 발판으로 쓰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