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점에 관계없이 당첨될 수 있다는 거잖아요. 청약은 거의 포기했는데 희망을 품고 조금 더 기다려 볼 생각입니다." (35세 직장인 박모씨)

"이러면 작년에 특별공급 기준 완화해준 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연봉 1억 맞벌이에 자녀 하나만 있어도 특별공급 청약할 수 있다더니 결국 기회는 더 줄었네요"(34세 직장인 유모씨)

정부가 ‘2·4 공급대책’에서 공공분양 주택의 분양 기준을 바꾸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신혼부부와 다자녀 가구 등을 위한 특별공급을 줄이고 일반공급 비중을 늘리면서 추첨제 물량을 신설했는데, 당첨 확률이 낮아진 사람과 높아진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5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 등 ‘2·4 공급대책’에 따라 공급하는 공공주택에서 9억원 이하 주택의 경우 특별공급 물량을 현행 85%에서 50%로 축소하기로 했다.

줄어든 특별공급 물량은 일반공급 방식으로 분양될 예정이다. 일반공급에는 기존에 없던 ‘추첨제’ 물량이 30% 새로 배정될 예정이다. 기존 공공주택 일반공급은 전용면적 85㎡ 이하의 경우 청약통장 저축총액(매월 10만원만 인정)이 많은 순으로 당첨자를 선정하는 ‘순차제’만으로 당첨자를 가렸다.

이같은 청약제도 개편은 특별공급 대상이 아닌 청년층 등의 청약 당첨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미혼인 청년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번에 신설된 추첨제 일반공급에는 3년 이상 전 세대원 무주택자라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가점이 부족하고 특별공급 자격이 안 되는 이른바 ‘청약 소외계층’에도 기회를 주어지는 셈이다.

◇ "기회 주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경쟁률 또 높이나"

하지만 이번 개편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도 많다. 특별공급 기준을 완화해준다고 한 지 4달 만에 특별공급 비중을 줄이는 개편을 또 내놓은 셈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특별공급 청약에 걸려있던 소득요건을 130%에서 160%로 완화하고 생애최초 전형을 추가했다.

지난번 특별공급 요건 완화로 겨우 특별공급 청약에 나설 수 있게 된 이들은 안 그래도 ‘하늘에 별 따기’였던 내 집 마련이 더 멀어졌다는 반응부터 나오고 있다. 노무사 김모(37)씨는 "작년에 있었던 특별공급 청약에서 늘 떨어졌다"면서 "특별공급 기준을 완화한 이후 경쟁이 더 치열해졌는데 배정 물량까지 줄었으니 특별공급 청약으로 집을 마련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 지 모르겠다"고 했다.

신혼부부인 박모(32)씨는 "신혼부부가 불리해지고 미혼은 유리해진 것 같다"면서 "정책이 나올 때마다 희비가 갈리니 ‘또 갈라치기 하는 거냐’는 생각만 든다"고 했다.

특별공급 기준을 완화한 이후 처음으로 실시한 과천지식정보타운 분양단지에는 9만426명이 몰렸다. 평균 경쟁률은 139.8대 1이었다.

◇ 기대감 생긴 미혼·중장년은 ‘환영’

반면 가점도 부족하고, 특별공급 자격요건도 충족하지 못해 상대적으로 청약에서 소외됐던 무주택자들은 추첨제 도입을 환영하는 반응이다. 당첨 확률이 희박하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길이 열린 셈이기 때문이다.

미혼 직장인 박모(35)씨는 "자격이 느슨한 만큼 경쟁이 말도 안 되게 치열하겠지만,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니 당첨만 되면 막대한 이득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어찌 보면 ‘주택 복권’이나 마찬가진데 결혼하지 않았다고 청약도 못 하게 하는 기존 제도는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맞벌이 직장인 김모(37)씨는 "소득 때문에 특별공급 자격은 안 되고 가점도 부족해 늘 추첨 물량이 있는 중대형 아파트 청약만 넣어야 했다"면서 "중소형에도 추첨제가 도입된다니 기대가 된다"고 했다.

중·장년층 무주택자들도 순차제 일반공급이 전체 물량의 15%에서 35%로 늘어나는 것을 반겼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자신을 50대 가장이라고 밝힌 청원인이 "특별공급은 금수저 신혼부부만을 위한 제도"라며 역차별을 호소하기도 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분양 물량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마치 ‘제로섬’ 게임과도 같아 ‘갈라치기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면서 "하지만 청약 기회가 아예 없는 것보다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 개선되는 것이 맞는다"고 했다.

◇ "청약제도 개편, 의미 있다…다만 주택 공급 예상대로 이뤄져야"

다만 신규 주택 공급이 나와줘야 청약 제도 개편의 의미가 있는데 대체 언제부터 공급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서울 32만 가구, 전국 83만6000가구를 공급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지만, 실제 주택 공급으로 이어질 지에 물음표를 다는 반응이 많기 때문이다.

청약제도 개편만 이뤄지고 신규 주택 공급이 없으면 내 집 마련 시기를 늦추는 무주택자들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프리랜서 최모(31)씨는 "서울에 수십만 채를 공급하겠다고 공언을 했지만, 지난 24번의 부동산 정책이 말한대로 이뤄진 적이 없어 불안하다"면서 "추첨만 믿고 있다가 기대한 만큼 공급이 따라주지 않으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정부의 대책대로 주택이 공급된다고 해도 추첨제로 공급되는 물량은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서울에서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으로 7만8000가구,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으로 9만3000가구, 소규모 정비사업으로 4만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모두 정비사업인 만큼 기존 조합원이나 토지소유주에 우선 입주권을 배분하고 남은 가구를 분양하게 된다. 통상 재건축·재개발 사업에서 나오는 분양물량이 전체의 30%가량이다.

공공 참여에 따른 용적률 상향 인센티브 등으로 가구 수가 기존 재건축·재개발의 1.4배로 늘어난다고 가정해도 공공분양으로 풀리는 물량은 4~5만가구, 그중 추첨제는 6000~7500가구에 그친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200만 가구를 넘기는 서울의 무주택 가구를 고려하면 200대 1의 경쟁률은 가뿐히 넘긴다는 얘기다.

다만 부동산 전문가들은 청약제도 개편으로 ‘패닉바잉’을 진정시키는 긍정적인 효과는 있을 것으로 봤다. 서원석 중앙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번 대책은 ‘누구나 서울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한 것 같다"면서 "심리에 좌우되는 경향이 강한 부동산 시장 특성상 매수세가 줄어들면서 단기적인 안정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