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귀에 못이 박이게 들어서 지겹겠지만, 그래도 시장에서 요즘 ESG(환경·사회·지배구조)만한 게 없습니다. 투자 분위기는 쉽게 안 가라앉을 겁니다."

"어디 새로운 데에 투자할 곳은 없느냐"는 물음에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가 한 말이다. 김진영 키움증권 연구원도 "ESG 투자는 최근 몇 년 동안 주류로 자리 잡기에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미 대선에서 조 바이든 당시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세계적인 트렌드는 ESG가 됐다. ESG가 앞으로 큰돈이 되리라 판단한 여의도 증권가는 분주하게 ESG 투자에 나섰다. 각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는 ESG 관련 보고서를 줄기차게 내고 트러스톤운용·키움운용 등 운용사들은 자체 ESG를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ESG 관련 기업을 넣은 공모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 신규 상품도 계속 늘고 있다.

그래픽=최혜연

‘아주머니들이 돈을 싸 들고 증권사 지점에 오면 끝물’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아주머니들도 훤히 꿰고 있는 ESG는 이제 시작이다. ESG 관련 의무 공시가 확대되면서, 기업들의 ESG 투자도 늘어날 전망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개별 기업에 대한 ESG 평가 등급을 산출할 때 보다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다.

금융당국은 오는 2030년부터 모든 유가증권 시장 상장사에 ESG 현황을 공시하도록 했다. 여기에 이달 초에는 코스닥 상장사의 ESG 공시 의무화를 하려는 움직임도 보이면서 더욱 구체화하고 있다. 또 최근 한국거래소가 내놓은 ‘ESG 정보공개 가이던스’도 반길 만 하다. 거래소는 E(환경)·S(사회)· G(지배구조) 별로 필요한 공개사항을 세부적으로 규정했다.

이런 흐름을 타고 국내외에서는 ESG에 돈이 몰리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으로 SRI펀드 설정액은 최근 3개월 사이 6176억원이 늘었다. 같은 기간 수익률도 21.26%으로 양호한 편이다. SRI펀드란 환경, 사회 등을 고려한 펀드로, 국내 ESG 펀드를 말할 때 유사한 범주로 여겨진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작년 4분기 글로벌 ESG 펀드 자금유입은 1523억달러(약 170조원)를 기록했다. 사상 최고치를 재차 경신한 셈이다. 이 중 미국은 지난해 ESG 펀드로 유입된 자금이 511억달러(약 57조원)로 2018년보다 10배 늘었다. 같은 기간 전세계에서는 신규 ESG 펀드가 196개 출시됐다.

다만 무턱대고 ESG 상품에 투자하는 건 금물이다. ‘그린워싱(Greenwashing)’을 피하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그린워싱이란 실제 친환경 경영과는 거리가 있지만 녹색경영을 표방하는 것처럼 홍보하는 일을 뜻한다. 금융당국에서 ESG 관련 공시 확대 등을 꾀하고 있지만 당장 시장에서 ESG 관련 정보 가치를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인프라와 검증단계 등이 부족한 실정이다.

국내 SRI 펀드 중 가장 규모가 큰 ‘마이다스책임투자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신진호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 대표는 "이름 있는 기업도 ESG 점수를 높게 받기 위해 내실을 다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라며 "ESG 펀드에 투자한다면 운용사에 이를 잘 골라낼 수 있는 전문 ESG 운용역이 있는지, 관련 리서치를 자체적으로 하는지 등을 따져보고 투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