勞 "경영진 잘못, 직원 희생 강요" vs 社 "강경 노조 때문에 투자 불가"
年 1400억원 소비하던 한국GM·협력업체 직원 떠나며 군산 경기 타격

친환경차·자율주행·모빌리티 서비스 확산으로 시작된 '카마겟돈(carmageddon·자동차 산업 대혼돈)'이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 자동차 산업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제조뿐 아니라 정비·판매·자재 등 전후방 효과가 커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자동차 산업이 국내 경제의 든든한 허리 산업으로 자리 잡으려면 국내 자동차 산업의 구조가 어떻게 개선되고 업체의 구조조정이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는지 짚어본다. [편집자주]

전북 군산시에 있는 옛 한국GM 군산공장 입구에는 현재 '명신'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명신은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업체로, 제너럴모터스(GM)가 2018년 군산공장을 폐쇄하자 이를 인수했다. 명신은 '중국의 테슬라'로 불리는 바이톤(Byton)과 연간 5만대 규모의 전기차 위탁 생산 계약을 맺었으나 바이톤이 경영난을 겪으면서 이같은 계획이 불투명해졌다. 결국 최근 새로운 국내 고객사를 찾았지만 계약 물량은 올해 3000대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한국GM 군산공장은 연간 26만대의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1997년 설립돼 한국GM 공장 중 가장 최신 공장이었고,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과 생산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군산공장에서 일했던 한국GM과 1·2차 협력업체 직원들은 1만2700여명, 근로자들과 가족들이 1년에 쓰는 돈은 1400억원에 달했다. 이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결국 군산 경제는 계속해서 부침을 겪게 됐다.

건물 곳곳에 노조의 투쟁 현수막이 걸린 인천 한국GM 부평공장 모습. 국내 최대 외투기업인 한국GM은 최근 고용, 노조 문제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철수까지 고려하고 있다.

자동차에 이어 조선·화학 산업까지 동반 침체가 이어지면서 군산은 텅 빈 유령도시가 됐다. 군산 지역 소규모 상가의 공실률은 2017년 1분기 9.2%에서 2020년 4분기 26.6%까지 치솟았다. 실업률은 군산공장이 폐쇄된 2018년 상반기 4.1%로, 2017년 실업률 1.5%의 3배로 급증했다. 2019년 상반기 실업률 3.5%, 하반기 2.2%로 다소 낮아졌으나 군산공장 폐쇄 이전 수준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군산공장 폐쇄 이후 한국GM이 언제든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해마다 노사 갈등이 반복되면서 한국 시장 철수설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같은 문제는 한국GM 뿐 아니라 르노삼성자동차, 쌍용자동차도 마찬가지다. 현대차(005380)·기아의 국내 자동차 시장 독점 외에 대립적 노사관계로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변화에 발맞춰 미래차 투자에 집중하지 못하고 결국 위기에 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들 회사의 노사 갈등은 어느 한쪽만의 잘못은 아니다. 매해 파업을 반복하는 노조도 문제지만 한국GM·르노삼성의 경우 이를 명분 삼아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들이 내부적으로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서 노조 파업을 빌미로 이를 합리화하려고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이들 3사의 자동차 생산량은 5년 전(95만대)과 비교하면 절반 가까이 줄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자동차 생산량 350만6800대 중 3사의 생산량은 57만6300대로 집계됐다.3사 생산량을 합쳐도 전체의 16.4%에 불과한 것이다.

◇ GM·르노, 한국 노조에 수차례 경고장… 결국 전기차 물량 못 받아

한국GM의 모기업인 제너럴모터스는(GM) 수년 전부터 미래차 투자에 집중하기 위해 사업을 재편해왔다. 2015년에는 유럽에서 쉐보레 브랜드를 철수했고, 2017년에는 오펠·복스홀 브랜드를 매각했다. 인도와 오스트리아, 뉴질랜드에서도 잇따라 공장을 닫거나 철수했고 2018년에는 한국GM 군산공장을 폐쇄했다. 부평 2공장도 2023년 이후 배정 물량이 없다.

군산 공장 사태 당시 산업은행은 한국GM에 8000억원을 투입하면서 10년간 철수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노조와의 갈등이 지속될 때마다 GM은 한국 철수를 염두에 둔 행동과 발언을 쏟아내며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작년 11월에는 노조가 파업을 단행하자 부평 1공장에 대한 2100억원의 투자 결정을 보류하기도 했다.

스티븐 키퍼 GM 해외사업부문 사장도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한국GM 노조가 생산 물량을 인질로 삼으면서 심각한 재정 타격을 주고 있다"며 "한국GM에 각종 투자를 하기가 어렵고, 몇 주 안에 노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장기적인 충격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2019년에도 당시 해외사업부문 사장이었던 줄리언 블리셋이 한국GM 임직원들과 만나 "파업이 계속돼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해외로 물량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했었다.

경기 평택시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정문.

게다가 GM은 한국GM에 전기차 생산 물량을 전혀 배정하지 않고 있다. GM은 2023년까지 20종의 전기차를 출시하기로 했으나 한국 공장에 전기차 생산 물량은 2027년까지 배정되지 않은 상태다. GM이 한국에서 철수하지 않기로 약속한 10년과 거의 맞물리는 시기여서 더욱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공장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GM은 2035년부터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아예 생산하지 않기로 했다.

르노그룹도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르노 그룹은 '르놀루션(Renaulution)'을 발표하면서 한국과 라틴 아메리카, 인도에서 수익성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발표 직후 르노삼성은 모든 임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그간 르노그룹 역시 한국 노조에 수차례 경고장을 보내왔다. 2019년 부산공장의 닛산 로그 위탁생산 종료를 앞두고 로스 모저스 르노 부회장은 "파업이 계속될 경우 후속 물량에 대한 논의를 하기 어렵다"고 했다. 모저스 부회장 당시 한국을 방문해 임금단체협상 관련 노사 갈등을 직접 중재하기도 했다. 부산 공장은 작년 3월 로그 생산 종료 후 후속 물량을 받지 못했고, 수출 물량이 80% 가까이 급감했다.

2013년 파업 중인 쌍용차 노조원들이 평택 도장2공장 옥상에 올라가 있는 모습.

◇ 쌍용차 '옥쇄 파업' 상처는 현재 진행중

쌍용차의 경우 한국GM, 르노삼성과 상황은 다르지만 업계에선 쌍용차의 노사 갈등을 경쟁력 저하의 이유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쌍용차의 경우 중국 상하이차가 2009년 '먹튀 논란'을 남기고 철수하면서 노사 갈등이 심화됐다. 당시 쌍용차는 2646명의 직원을 정리 해고하거나 무급 휴직시키는 자구책을 내놨다. 노조는 이에 반발해 2009년 5월부터 8월까지 77일간 쌍용차 평택 공장을 점거하고 '옥쇄 파업'을 벌였다.

당시 경찰과 노조, 사측 직원,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충돌해 유혈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그해 8월 노사가 무급휴직 48%·희망퇴직 52%라는 합의안을 도출하면서 파업은 마무리됐으나 64명의 노조원이 구속됐고 쌍용차 직원을 비롯해 희망퇴직자와 가족, 협력업체 직원 30여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심각한 상흔을 남겼다.

2010년 인도 마힌드라그룹이 쌍용차를 인수하고 회생절차가 끝나면서 무급휴직자, 해고자, 희망퇴직자 모두 작년 5월을 끝으로 10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복직했다. 그러나 마힌드라가 쌍용차에 23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던 투자 계획을 취소하고, 쌍용차를 미국 자동차 유통업체 HAAH오토모티브홀딩스에 매각하기 위한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쌍용차는 결국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법원에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최근 "노조가 '흑자가 나기 전까지 쟁의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기 전엔 쌍용차에 단돈 1원도 지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작년에도 이 회장은 쌍용차에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의 각오로 임하라"며 강도 높은 자구 노력을 요구했다. 현재 쌍용차 노조는 제1노조인 기업노조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로 나뉘어 있는데 쌍용차 노조는 이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산업은행이 해야 할 것은 노조에 대한 일방적 양보 요구가 아니라 고용보장과 미래 비전 확보를 위한 노력"이라며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쌍용차의 위기는 대주주인 마힌드라와 쌍용차 경영진의 부실경영 결과"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외국계 자동차업체의 경우 본사가 한국 시장에서의 단기 계획을 공유하지 않아 노조도 불안해하는 측면이 있다"며 "이 때문에 노조 내 강경파가 파업을 주도하게 되고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대차도 최근에는 5년 정도의 단기 계획은 노조와 최대한 공유하려고 하고 있다"며 "노조도 파업을 자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자동차 업체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