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영 KCC 명예회장 별세
영자 돌림 '현대가 1세대' 역사 속으로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지난 30일 별세했다. 향년 85세. 고인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막냇동생이다. 이로써 '영(永)'자 돌림을 쓰는 현대가 창업 1세대의 시대가 완전히 막을 내렸다.

현대가(家) 창업 세대 6남 1녀의 맏이였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2001년 타계한 데 이어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2005년),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2005년),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2006년), 정희영 여사(2015년) 등도 세상을 떠났다.

고 정상영 KCC 명예회장.

현대가는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말을 남긴 정주영 명예회장의 맨손에서 출발했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형제들과 의기투합해 현대건설, 현대자동차 등을 세우며 현대를 한 때 국내 재계 서열 1위 기업집단으로 키워냈다. 1998년에는 직접 소 떼를 몰고 판문점을 통과해 방북하는 등 금강산 관광 사업과 개성공단 사업에도 주도적으로 나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정 명예회장 별세 1년 전인 2000년 '왕자의 난'이 벌어지며 현대그룹은 쪼개졌다. 2남인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은 1953년 현대건설(000720)에 입사해 정주영 회장과 함께 현대그룹을 일궜으나, 1976년 당시 중동 진출 이견 등으로 형과 갈등을 빚으면서 1977년 한라의 전신인 현대양행으로 독립했다. 3남인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은 1969년 현대건설에서 독립한 현대시멘트를 이끌었다.

'포니정'으로 불린 4남 정세영 명예회장은 1957년 현대건설로 입사한 뒤 1967년 초대 현대차(005380)사장에 취임해 32년간 자동차 사업을 이끌면서 자동차 수출 신화를 이뤄냈다. 그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뜻에 따라 1999년 조카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에게 자동차 부문 경영권을 넘기고 당시 현대차 회장이었던 아들 정몽규 HDC 회장과 함께 현대산업개발로 자리를 옮겼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5남 정신영씨는 30대 초반인 1962년 독일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유일한 여동생이자 고 김영주 한국프랜지공업 명예회장(2010년 별세)의 부인인 정희영 여사는 2015년 별세했다.

현대가 창업 세대 중 마지막으로 별세한 정상영 KCC 명예회장은 1958년 8월 금강스레트공업이라는 이름으로 KCC(002380)를 창업했다. 2003년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조카며느리 현정은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지만 결국 패했다.

표=이재은 기자

범(汎)현대가는 2000년대 초 경영권 승계 작업에 속도를 내며 '몽(夢)'자를 쓰는 2세대로 넘어간 데 이어 현재는 '선(宣)'자를 쓰는 3세대로 넘어가고 있다. 창업 1세대는 정상영 명예회장이 지난 30일 타계하면서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