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용적률·역세권·아파트층수제한 등 정할 막강권한 가져

세종시에 있는 국토교통부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변창흠 장관을 필두로 국토부가 만들고 있는 주택공급 방안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광역지자체장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야당 인사가 서울시장이 될 경우에는 정부안 집행 단계에서 또다른 난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정부 정책기조와 다른 민간 재건축 활성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2일 국토부와 서울시 등에 따르면 서울시 등 광역지자체는 용적률에 직결되는 용도지역·지구 변경, 역세권 범위 설정은 물론 아파트 층수 제한 등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 등을 갖고 있다. 주요 개발 사업의 인·허가의 속도도 조절할 수 있다. 재건축사업 속도에 직결되는 재건축 지구단위계획 수립, 재건축 안전진단 등도 시장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최근 국토부 관계자들은 사석에서 종종 서울시장 후보군별 특징이나 정책, 선거 판세 등을 화제로 올리고 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21일 서울 국토발전전시관에서 열린 '설 성수기 대비 택배 종사자 보호를 위한 택배업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서울시 재량은 막강하다. 부동산 정책의 큰 줄기는 기획재정부(세제), 금융위원회(대출), 국토부(규제지역 등) 등이 짠 법과 시행령을 통해 이뤄지지만 정책의 세부 사항은 지자체의 조례, 지침 등으로 정해진다. 서울시는 도시계획조례를 통해 용적률 제한 등 주요 규제를 통상 법에서 정한 상한선보다 통상 50%포인트 정도 축소해 시행하고 있다. 법에서는 가능해도 서울시 조례 때문에 불가능한 사업이 생기는 이유다.

이 때문에 주요 부동산 대책 발표에는 서울시 관계자가 종종 배석한다. 또 국토부가 발표하는 주요 보도자료에도 국토부 실무자와 함께 서울시의 실무자 이름이 들어간다. 지난 14일 정부가 발표한 공공재개발 후보지 명단도 국토부와 서울시가 함께 결정해 공개했다. 이 지역의 투기를 막기 위한 주요 조치도 곧 서울시 고시를 통해 발표될 예정이다. 지난 7일 시작된 민·관 합동 준공업지역 순환정비사업 공모도 국토부와 서울시 합작품이다. 특히 준공업지역 내 주택 공급 지역을 60%로 늘리는 조치는 시가 도시계획조례를 개정해 가능해졌다.

서울시장이 갖고 있는 부동산 정책 관련 권한은 국토부 입장에서는 강력한 비토권이 된다. 특히 공공이 주도하는 역세권·준공업지역 대상 개발에 대해 서울시 조례 등을 바꿔 사업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을 뼈대로 하는 변 장관의 공급 방안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서울시장의 비토권이 커졌다.

실제 야당 출신 조은희 구청장이 이끄는 서초구청은 지난 9일 공개한 서초구 원베일리 분양가격 심사에서 분양가상한제의 특징을 이용해 중앙 정부가 만든 분양가상한제가 갖고 있는 맹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분상제 심사를 통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고분양가 심사결과(3.3㎡당 4891만원)보다 훨씬 더 높은 분양가격(3.3㎡당 5668만원)을 줬기 때문이다. 이는 분양가 산정 기준 중 지자체가 갖고 있는 재량인 ‘가산비’를 최대한 반영해 3.3㎡당 666만원을 더 얹어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야당 출신이 아닌 대행 체제로 운영되는 중립성향의 현 서울시도 수도권 공급안을 담은 지난해 8.4 대책 발표 당시 정부를 당혹케 했다. 김현미 당시 국토부 장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오전 대책 발표 후 진행된 오후 서울시 자체 브리핑에서 김성보 서울시 주택건축본부장이 "공공재건축은 민간이 참여할 수 있느냐라는 실무적인 퀘스천(의문)이 있다"면서 "애초에 서울시는 별로 찬성하지 않은 방식"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와 서울시장 후보자들이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박원순 시정 잃어버린 10년, 재도약을 위한 약속' 발표회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국민의힘 박성중 서울시당위원장, 오신환, 이종구 서울시장 후보, 유승민 전 의원, 박춘희 후보, 주호영 원내대표, 원희룡 제주지사, 나경원, 오세훈, 조은희, 김근식 후보.

새 서울시장의 임기는 내년 6월까지다. 1년 남짓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잔여 임기와 거의 겹친다. 변 장관이 곧 발표하겠다고 예고한 도심공급대책은 법과 시행령을 손보는 입법 과정을 거치면 4월 서울시장 선거 이후에나 본 궤도에 이를 수 있다. 야당 시장이 탄생할 경우 변 장관이 만든 정책을 집행 못하고 ‘식물장관’으로 임기를 마칠 수 있다.

서울시장이 내놓은 정책에 국토부가 끌려다니는 상황도 가능하다. 현 정부는 민간 재건축·재개발에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주요 야당 후보들은 재건축·개재발을 다시 활성화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아파트 35층 제한을 정한 서울시 도시계획을 바꿔 사업성을 높이거나, 해제한 정비 구역을 다시 지정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여의도와 압구정 일대의 지구단위계획에서 속도를 내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에는 현 정부의 ‘공공재개발’ 정책은 빛이 바랄 수 있지만, 반대 의견을 내면 2023년 지방선거에서 역풍을 맞게 될 계기가 될 수 있다. 여러모로 변 장관에게는 악몽의 1년이 될 수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