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과잉시대]
늘어나는 공직 채용, 줄어드는 민간 채용
공무원 준비에 관심 없는 청년층 14.2%에 불과
"우수한 인재들 시험에 집중...국가적 손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접수 페이지가 지난 11일과 13일, 15일 세차례 마비됐다. 시험을 응시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몰리면서다. 한국사 시험 자격증은 공무원, 교사 채용에 가산점으로 반영돼 공시족(族)이 따야 할 필수 사항으로 여겨진다. 가까스로 시험 접수 페이지는 다시 열렸지만, 충남 등 특정 지역의 시험장은 모두 마감됐다. 고사장이 부족하다면서 수험생들이 항의하기도 했다.

한국사 시험 접수 페이지 마비 사태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인구가 늘어난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전부터 심각했던 취업난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더욱 가속화되면서, 청년층이 ‘철밥통’으로 불리는 공무원과 같이 안정적인 일자리로 쏠리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무원 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민간 채용 시장은 얼어붙으면서 공무원 시험에 청년층이 몰리고 있다. 기업에 취직하거나 창업을 해서 국가 경제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법한 우수 인재까지 모두 공직사회가 흡수하게 되면, 국가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청년층이 공시에 매달리면서 생산활동을 하지 않아 발생하는 사회적 손실이 17조원 이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정부세종청사에 이달 초 새해 첫 출근을 하고 있는 공무원들.

◇매서운 고용 한파에 청년층 공무원 시험에 몰렸다

공시족의 증가는 취업난과 문재인 정부의 공무원 채용 확대가 겹친 영향이다. 지난해 10월 치러진 2020년도 지방공무원 7급 공개경쟁 임용 시험에는 3만9397명이 지원했다. 평균 경쟁률은 69.73대 1이었다.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직군별로 다르지만, 이처럼 최근 최소 수십에서 높게는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대학생, 취업 준비생 10명 중 8명 이상은 공무원 시험 일정을 기웃거리고 있다. 지난 10월 취업 포털 사이트 잡코리아가 알바몬과 함께 대학생·취업준비생 1962명을 대상으로 ‘취준생 공시준비 현황’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37.4%는 ‘현재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절반에 가까운 수준인 48.4%는 ‘앞으로 공시를 준비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공무원 시험에 관심이 없다고 답한 사람은 응답자의 14.2%에 불과했다.

이 같은 공무원 시험 쏠림 현상은 엄혹한 민간 취업 시장의 어려움과 반대 경향을 보이는 공직사회 비대화 경향과 맞닿아있다. 통계청의 2019년 ‘공공부문 일자리 통계’의 연령별 일자리 수를 보면, 29세 이하에서 3만4000명, 30대에서 2만3000명이 각각 증가했다. 공공부문에서는 청년층 고용이 늘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전체적인 취업자 수를 집계하는 ‘2020년 고용동향’을 보면, 2020년 15~29세 취업자 수는 18만3000명, 30~39세는 16만5000명 줄었다. 40~49세(15만8000명 감소), 50~59세(8만8000명 감소), 60세 이상(37만5000명 증가) 등 다른 연령대 대비 취업자 수 감소 폭이 가장 컸다. 공공부문에서 고용이 늘었음에도 민간 일자리가 고용 대란 충격을 견디지 못해 청년층 취업자가 전체적으로는 감소했다는 의미다. 이 기간 전체 고용률은 60.1%로 전년 대비 0.8%P 빠졌을 때, 15~29세 고용률은 42.2%로 같은 기간 1.3%P 떨어져 감소폭이 더 컸다.

잡코리아

◇청년층 공시 쏠리면 소비도 생산도 위축

민간의 고용 창출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공공 부문에서만 일자리가 늘어나자, 2030세대는 너나할것 없이 공무원, 공기업 시험 대열에 뛰어들고 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른바 ‘공시족’이 급증하면서 연간 17조1430억원의 사회적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발간한 ‘공시(공무원시험)의 경제적 영향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층의 비경제활동인구는 2011년 537만4000명에서 2016년 498만명으로 1년 간 7.3% 감소했다. 그러나 공시족은 같은 기간 18만5000명에서 25만7000명으로, 38.9% 늘었다.

문제는 이들이 시험 공부에 매달리면서 생산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구원은 지난 2016년 기준 공시족 수(25만7000여명)를 기준으로 이들이 취업해 경제 활동을 했다고 가정하면 15조4441억원의 생산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또 청년 가계소비지출액을 토대로 계산했을 때 6조3249억원의 소비 효과도 함께 거둘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총 21조7690억원의 경제 효과를 잃은 셈이다.

하지만 공시족들은 생산 활동을 하지 않고 시험 준비를 위한 최소한의 비용만을 지출했다. 연구원은 그 규모를 4조6260억원으로 추산했다. 연구원은 21조7690억원에서 4조6260억원을 뺀 17조1430억원을 공시족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로 분석했다. 연구원은 "사회 전체적 관점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시험 준비에 그 능력을 집중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고 판단된다"면서 "공시족이 증가한 근본 원인은 경제 내 질 좋은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무원은 한번 채용하면 매우 오랜 시간 봉급을 줘야하므로, 고용이 휘청댄다고해서 공무원 채용을 늘리면 향후 재정에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라면서 "정부가 공무원 채용으로 달성하려는 목적이 ‘일자리를 창출’이 아니라, 현재 사회에 부족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