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20일(현지 시각) 공식 출범하면서 미국 주요 빅테크 기업에 투자한 서학개미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도 선방한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등 정보통신(IT) 기업들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일러스트=백형선

올해 들어 전날까지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애플은 약 3.7% 하락했다. 지난해 마지막 거래일인 지난 12월 31일 애플은 132.6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같은 기간 아마존(4.2%), 페이스북(4.4%), 마이크로소프트(2.7%) 역시 줄줄이 하락했다.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만 홀로 1.8% 상승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8일(현지 시각)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실리콘밸리는 한층 더 거센 규제 압박을 마주하게 됐다"며 "바이든 당선인은 백악관에 들어서기 이전부터 빅테크 기업에 대한 비판을 제기해왔는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막말을 페이스북 책임으로 돌리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지난해 말부터 미국, 중국, 유럽 등 주요국들이 반독점법을 근거로 빅테크 기업들을 주시하기 했고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이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며 "언택트 문화 확산으로 수혜를 받던 좋은 시절이 끝날지도 모른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페이스북과 알파벳의 경우 이미 여러 건의 반독점 소송을 마주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 1년 동안 국내 투자자들이 뉴욕 증시에서 테슬라 다음으로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이다. 그 규모는 22억8421만달러로 우리나라 돈으로는 2조5128억원 수준이다. 이 밖에 아마존(6억687만달러)과 마이크로소프트(4억2113만달러), 알파벳(3억4439만달러), 페이스북(1억826만달러)의 순매수 규모 역시 큰 편이다.

애플에 투자한 직장인 조모(29)씨는 "대단한 호재도 없는 상황에 안 좋은 소식만 들려오니 심란하다"며 "모두가 테슬라에 환호할 때 애플을 고집한 게 잘못된 선택이었나 싶다"고 말했다. 아마존 온라인 종목 토론방에는 ‘반독점법 잘 해결될까’ ‘빅테크 주가 곧 폭락한다’ ‘블루웨이브 때문에 3000달러 깨진다’ 등 게시글이 올라왔다.

바이든 행정부는 통신품위법(CDA) 230조 개정에도 주목하고 있다. 이 조항은 소셜미디어(SNS) 이용자가 올린 콘텐츠에 대해 플랫폼 업체는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최근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 의사당 난입 사태, 트럼프 대통령의 SNS 계정 영구 정지 등을 계기로 업체들에 대한 규제 강화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지난 19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인근 앤드류스 공군기지에 도착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그의 부인 질 바이든.

다만 전문가들은 빅테크 기업 규제가 단기적으로 차익실현 빌미가 될 수는 있어도 기업들의 장기적인 상승 추세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 시기에 실적이 워낙 좋았던 만큼 당장은 주춤해도 여러가지 대내외 요건들이 결국에는 빅테크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김재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빅테크 규제 강화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나온 얘기지만 규제를 집행할 법적 장치가 없기 때문에 진전은 거의 없었다"며 "시장이 우려하는 수준의 강한 법안은 의회 통과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미 정치권의 제반 상황이나 소비자 권익 충돌 등을 고려하면 빅테크 규제 이슈는 단기 노이즈일 뿐"이라고 진단했다.

이재윤 SK증권 연구원은 코로나로 미국 경제가 타격을 입은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도 빅테크 기업을 강하게 압박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미·중 양국간 경제 패권 경쟁이 지속되면서 오히려 빅테크 경쟁력을 키워야 할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연구원은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경기가 둔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법인세를 인상하진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며 "설령 인상되더라도 코로나로 빨라진 디지털화 속도 등을 감안하면 테크 산업의 추세적 성장으로 인한 실적 개선을 멈추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이든 행정부는 IT 기업 수장들과 인연이 깊다. 바이든 캠프 선거 자금 모금 당시 에릭 슈미트 전 구글 최고경영자(CEO)가 상당한 기여를 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실리콘밸리와 유대가 돈독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 데이비드 자폴스키 아마존 법무총괄 등도 바이든 행정부 인사들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