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대표 석유회사 토탈, API 탈퇴 선언
"기후변화 대응 관련 가치관 차이 있다"
韓 한화와 美 태양광 발전소 건설키로
"바이든 취임식 앞두고 발빠르게 전환"
BP·로열더치셸 등도 API 탈퇴 고심

프랑스 대표 석유회사인 토탈(TOTAL) 그룹이 미국 석유업계의 최대 로비단체인 미국석유협회(API·American Petorleum Institute)를 탈퇴한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을 앞두고 기후변화 대응을 주요 국정과제로 내세운 차기 미 행정부의 기조에 발빠르게 대응하려는 행보다.

프랑스 파리 근교 라 데팡스 업무지구에 본사를 둔 석유회사 토탈(TOTAL) 건물 전경.

16일(현지 시각) 미 CNN비즈니스에 따르면 토탈 그룹은 이날 성명을 내고 "API가 미국의 파리기후협약 재가입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등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 토탈의 가치관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며 이날부로 API 회원자격을 자체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패트릭 파우야네 최고경영자(CEO)는 성명에서 "API는 전기자동차 보조금 지급을 반대하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시설에 대한 메탄가스 배출 규제를 완화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며 탈퇴 이유를 설명했다. 1985년부터 한국에도 지사를 둔 이 기업은 2015년 한화그룹 계열사로 편입됐으며 '지구 온난화 해결에 기여'를 기업 과제로 설정했다.

토탈 그룹의 이러한 결정은 '그린 뉴딜'을 천명한 바이든의 취임식을 나흘 앞두고 나왔다. 바이든은 트럼프 시대의 석유 산업 지원을 철회하고 청정에너지 및 인프라 구축에 임기 4년간 2조달러(약 2200조원)를 투입하겠다고 했었다. CNN비즈니스는 미국 현 정부와 유럽의 석유 강대국 간 기후변화 대응 정책에 대한 불화를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최근 API 내부 회의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석유 시추(프래킹) 작업을 제한할 거란 우려와 성토가 쏟아졌다고 한다. 바이든은 앞서 시추 자체를 금하지 않겠다고 해명했으나 업계에선 미 연방 소유 지역의 신규 시추를 제한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바이든은 이미 석유·가스 시추 비용에 대한 세금 공제 혜택을 없애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토탈 그룹의 이번 선언이 글로벌 석유기업들의 API 탈퇴를 부추길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기후변화 대응을 이유로 미국 최대 로비단체를 탈퇴한 첫 번째 사례이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최대 연기금 운용사인 KLP는 토탈의 이번 결정으로 자국 에너지기업 에퀴노르, 세계 2위 석유 기업인 동시에 영국 최대 업체인 로열더치셸, BP 등도 API 탈퇴를 고려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BP와 로열더치셸 등은 최근 토탈 그룹의 뒤를 이어 미국 무역 협회의 정유회사 로비단체인 미국석유화학단체(AFPM)의 회원 자격을 포기한 바 있다. FT는 "유럽 석유 업체들을 움직이는 큰손 주주들은 석유 메이저들이 배기가스 감축을 위한 약속과 반대되는 로비단체에 소속된 것 자체를 강도 높게 비난하고 있다"며 이들 업체들이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토탈 그룹의 결정을 계기로 향후 행보를 고심하게 됐다고 전했다.

특히 토탈 그룹은 지난 14일 한화에너지와 각각 50%의 지분을 투자한 합작회사를 설립해 미국에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를 짓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으로는 한화에너지의 미국 내 100% 자회사인 태양광 사업법인 174파워글로벌이 보유한 사업권에 토탈이 공동 투자해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이다. CNN비즈니스와 FT는 이를 두고 "과거 석유산업의 틀을 벗어나 글로벌 재생 에너지 사업을 제대로 구축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지속가능한 개발 관련 비영리단체인 세레스의 석유 및 가스 분야 담당자인 앤드류 로건은 이날 FT와 인터뷰에서 "토탈의 탈퇴는 API에 심각한 타격"이라며 "API가 석유 및 가스 산업 전체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기존의 주장이 관련 업계에 점차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계기로 글로벌 석유 업체들의 이탈에 속도가 붙을 것 같다"고 했다.

한편 1919년에 설립된 API는 현재 미국 엑슨모빌과 쉐브론, 코노코필립스, BP와 로열더치셸 을 포함해 전세계 600개 이상의 회원사를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