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위트홈’이 8개국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배경이 된 아파트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명의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갑자기 인간이 괴물로 변하는 재난 상황에서 ‘그린홈’이라는 낡은 아파트의 입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렸다. 작품의 주 무대가 되는 ‘그린홈’은 1933년에 지어져 아직까지 재건축되지 않고 있는 서울의 15층 아파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위트홈’에 나타난 ‘그린홈’ 아파트.

그린홈은 실제 존재하는 아파트를 모티브로 했다. 연출자인 이응복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현수(주인공)가 이사 가는 곳이라 너무 비싸서는 안 됐고 재개발이 되어야 하는 곳이었고, 또 그곳은 도시의 욕망을 간직하고 있길 바랐다"면서 "실제로 회현 시민아파트나 충정아파트를 답사했다"고 말했다.

17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충정아파트는 1932년 준공돼 89년차를 맞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다. 그린홈의 초록색 외벽은 이 아파트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위치는 충정로역 9번 출구에서 불과 100m 떨어진 ‘초역세권’이다.

충정아파트는 일본인 건축가 도요타 다네오가 지은 건물로, 한국전쟁 당시에는 유엔(UN)군의 임시숙소로 쓰였다가 1960년대에는 관광호텔로 운영되기도 했다. 건물 중앙이 비어있는 중앙정원형 5층 아파트로 주택형은 공급면적 기준 26·49·59·66·82·99㎡ 등으로 다양하다. 현재 가구수는 총 50가구로 추정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에 자리한 ‘충정아파트’.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충정아파트는 지난해 2월 69㎡형이 5억9000만원에 거래됐다. 3.3㎡당 2821만원 수준으로 앞서 2018년 86㎡형이 3억2980만원(3.3㎡당 1265만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가격이 상당히 올랐다.

오래된 아파트답게 전·월세 가격은 저렴하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에 따르면, 93㎡형 전세매물이 1억3000만원에 나와있고 28㎡형 월세매물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0만원으로 나와있다. 실제 임대차 거래는 지난해 7월 28㎡형이 전세 7000만원에 체결된 것이 마지막이다.

1970년 5월 준공된 회현제2시민아파트는 스위트홈 드라마 촬영이 일부 이뤄지기도 했던 곳이다. 전용면적 38㎡ 352가구로만 구성된 10층짜리 아파트다. 1960년대부터 서울시는 무허가 건물을 정비하기 위해 총 447동의 시민아파트를 건립했는데, 현재는 모두 철거되고 온전히 남아있는 것은 회현제2시민아파트가 유일하다.

서울 중구 회현동에 위치한 ‘회현제2시민아파트’.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매매 기록은 남아있지 않고, 임대차 거래는 2014년의 전세 8000만원과 2017년 5월의 보증금 200만원·월세 20만원이 마지막이다.

드라마에 나타나는 그린홈은 오랜 연식에도 불구하고 번번히 재건축이 좌절된 아파트로 보인다. 아파트 1층 관리사무실에는 ‘주택 재건축 추진위원회’ 등의 문구가 여기저기 붙어있지만, 오래 전에 조합 활동이 중단된 듯 글자가 낡고 헤진 상태다.

충정아파트와 회현제2시민아파트는 재건축이 아닌 리모델링 사업으로 명맥을 유지할 전망이다. 서울시가 각각 ‘최고령 아파트’와 ‘마지막 시민아파트’라는 상징성을 고려해 보존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충정아파트는 1979년 도시환경정비사업구역으로 최초 지정된 후 2008년에는 마포5구역 2지구로 변경 고시됐다. 주민 간 보상금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그간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서울시는 지난 2019년 충정아파트를 보존하는 방향으로 정비계획을 변경했다. 근대 건축물의 중요 유적으로 가치가 있는 충정아파트를 문화시설로 변경하는 대신 해당 지구의 용적률과 아파트 층수에 상향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서울시 도시활성화정책팀 관계자는 "주민 제안으로 정비계획을 변경한 것으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안건이 통과되는 대로 본격적인 정비 절차가 진행될 전망"이라면서 "충정아파트 외관은 그동안 불법 증축된 구조물 등을 덜어내는 정도로 최대한 보존하고, 내부 공간은 주택사(史) 박물관 등으로 리모델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회현제2시민아파트에도 한때 재건축이 추진됐던 흔적이 남아있다.

회현제2시민아파트는 예술인들을 위한 ‘아트빌리지’로 리모델링할 계획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의 352가구를 253가구로 축소해 200가구는 청년 예술인에게 임대하고 53가구는 아직 남아있는 주민에게 제공할 방침이다.

사업은 현재 지체되고 있다. 시민아파트는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는 토지임대부 주택의 원조격으로, 토지 지분은 시에 귀속돼있고 주민은 건물 지분만 갖고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보상 절차에 이견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위례신도시 특별분양 등의 이주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지만, 건물 지분에 한정된 보상액 자체는 큰 편이 아니다"라면서 "이에 계속 거주를 결정한 주민들이 ‘리모델링에 찬성하는 대신 토지 소유권을 양도해달라’고 주장하고 있어 설득 중인 상황"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