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기대인플레 2% 넘어서… 경기부양 기대→인플레 가능성 이어져
7조달러 푼 연준, 언젠간 거둬야… 신흥국 금리인상·부채 문제 풀어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은 5년여만에 양적완화의 시대로 회귀했다. 중앙은행들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금리를 내리는 동시에 각종 유동성 공급책을 내놨고, 각국 정부는 대규모 재정지출에 돌입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올해 코로나19 위기가 종식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시장은 벌써 부풀어오르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유동성 파티'도 끝내야 해 이제는 유동성의 역습을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편집자주]

2013년 5월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에게 악몽같았던 시기다.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이 양적완화(QE)의 단계적 축소(테이퍼링)를 시사하자 전세계 금융시장이 '테이퍼 텐트럼(taper tantrum·긴축 발작)을 일으켰다. 미국 국채금리가 급등하고, 신흥국 주가와 통화가치는 곤두박질쳤다.

비슷한 일은 가까운 2019년 12월에도 있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연준이 통화 공급을 위해 보유 중이었던 자산을 축소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자 미국 증시가 대폭 하락했던 것이다. 그러자 파월 의장은 곧바로 긴축 속도조절을 시사하며 수습에 나서야만 했다.

'테이퍼 텐트럼'이 남긴 트라우마는 깊었다. 이후 연준은 '긴축' 신호를 보내기 조심스러워졌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연준의 자산은 7조달러를 넘어섰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경기부양책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인플레이션 우려가 나오자 '뿌린 돈을 거둘' 시기도 앞당겨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에는 글로벌 자산시장에 자금이 쏠리면서 일부 연준 인사를 중심으로 경고성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인플레 가능성 커지자 긴축 논의도 ‘솔솔’… 고민깊은 연준

최근 '테이퍼링'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을 논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면서다. 바이든 새 행정부의 등장, 백신의 접종으로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미국의 대표적인 기대인플레이션 지표인 10년물 기대인플레이션율(BEI)은 이달 들어 2%를 넘어섰다. 2018년 11월 이후 약 2년 2개월 만이다.

과거처럼 급격한 물가상승이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과도한 유동성이 만들어 내는 인플레이션이 현실화된다면 중앙은행이 언젠가는 긴축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테이퍼링' 논의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이다.

하지만 연준의 고민은 간단하지 않다. 미국을 필두로 전세계적으로 자산가격은 과열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고용을 중심으로 한 실물경기는 코로나19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준은 일단은 '긴축을 하더라도 조심스럽게 하겠다'고 시장을 달랜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위원들은 자산매입을 축소하기 전에 미리 시장에 충분한 신호를 주겠다고 밝혔다. 매월 1200억 달러 규모의 국채와 모기지 담보증권(MBS)을 매입해 시중에 돈을 풀고 있는데 이 규모를 조정하기 전에 충분히 알리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일정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용인하겠다는 취지의 평균물가제목표제(AIT)를 주목한다. '우리가 인플레이션에 즉각 반응하진 않을거야' 라는 신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QE축소에 나서는 시기를 이르면 내년, 금리인상은 2023년 이후로 보고 있다. 당장 걱정할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벌써 시장에서 우려가 나오는건 그 충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2008년 1조달러에 못 미쳤던 미 연준의 총자산은 2014년 4조달러를 넘어섰고, 2019년들어 겨우 3조달러대로 낮춘데 불과했다. 그런데도 아르헨티나, 터키,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금융취약 신흥국은 수시로 환율 폭등과 주가 폭락을 겪어야 했다. 올해 1월 현재 연준의 자산은 7조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연준이 자산 축소를 시작하면 글로벌 금융시장이 받을 충격은 지금껏 나타났던 그 어떤 시장 쇼크보다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조심스러웠던 연준에서도 최근 글로벌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자산가격이 급등하자 매파(긴축선호)적 발언이 나오고 있다. 미국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라파엘 보스틱 총재는 지난 11일(현지시간) 경기의 빠른 회복을 전제로 이르면 내년 하반기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언급했다. 물론 연준의 대다수 인사의 견해와는 동떨어졌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다만 최근 미 10년물 국채금리가 1.132%(11일)까지 오르면서 글로벌 시장에서는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연준이 계획보다 이른 테이퍼링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하는 의견도 있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세계적으로 주가가 크게 올라 너도나도 뛰어드는 분위기지만 긴축의 충격은 엄청날 것으로 본다"며 "백신이 광범위하게 접종되면 축소되는 방향이 확실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할지 짚어봐야 한다"고 했다.

◇전세계가 돈 풀었고, 자산은 부채에 기댔다… 10년전과 또 다르다

언젠가 다가올 긴축을 앞두고 코로나19 이후는 금융위기 때와는 또 다를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2008년 금융위기가 미국에서 발생해서 미 연준이 그 수습을 거의 도맡아 했던 것과 달리 코로나19는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악재다. 이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돈을 푼건 선진국 뿐만 아니라 신흥국도 마찬가지였다. 취약신흥국들의 기준금리만 봐도 알 수 있다. 브라질 2%, 남아공 3.5% 등으로 모두 역대 최저치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 신흥국들이 겪었던 테이퍼링 부작용은 달러가 빠져나가면서 생긴 것이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미국의 정상화 작업에 따른 달러 유출 충격과 함께 신흥국들은 자국 금리 정상화로 인한 후폭풍을 동시에 수습해야 한다.신흥국 경제가 받을 충격이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클 수 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우리나라만 해도 역대 최저인 0.5%까지 금리를 낮춘 상황으로, 시장에서는 내년 미 연준의 자산매입 축소가 진행되면 금리인상의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각국이 최저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낮춘 것은 부채의 급증으로 이어졌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부채 규모는 277조달러(약 30경8080조원)로 사상 최대치를 였다.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365%에 해당하는 규모로, 2019년 말 320%에서 대폭 커진 것이다. 정부의 재정적자도 커졌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지난해 세계 정부는 11조달러(1경2000조원)의 재정 적자를 추가했다고 분석했다.

당장 우리나라의 상황만 놓고봐도 가계부채와 기업부채의 규모가 각각 GDP를 넘어선 상황이다. 지난해 3분기 말 우리나라의 명목 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은 101.1%로,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100%를 돌파했다. 기업부채는 GDP대비 110%에 이른다. 금리인상까지 가지 않더라도 긴축 시그널 만으로도 시장금리가 본격적으로 오르게 될 경우 금융리스크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부동산, 주식 모두 유동성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차후 버블이 터지게 되면 이는 부채문제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며 "부채가 부실화되면 금융기관으로 전이가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