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T'·'헬리콥터 머니' 주장 與 의원들, 2차 전국민 지원금 주장
국회 예산정책처 용역보고서 "재정지출 늘수록 부양효과 감소"
'국가채무 증가→민간저축 감소→투자 위축→경기침체' 악순환
적자 국채 발행은 시중금리 상승, 서민 금융부담 증가로 이어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은 5년여만에 양적완화의 시대로 회귀했다. 중앙은행들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금리를 내리는 동시에 각종 유동성 공급책을 내놨고, 각국 정부는 대규모 재정지출에 돌입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올해 코로나19 위기가 종식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시장은 벌써 부풀어오르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유동성 파티'도 끝내야 해 이제는 유동성의 역습을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편집자주]

"금리정책이 실효적이지 않으면 한국형 양적완화(QE)나 현대화폐이론(MMT)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양향자 의원)

"8월 나온 OECD 보고서에서는 통화 완화정책으로 전통적 수단 아닌 비전통적 수단을 쓰라고 권하고 있다. 비전통적 수단이 무엇이겠나. ‘헬리콥터 머니’다."(홍익표 의원)

지난해 8월 2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한국은행 업무보고에서는 MMT, 헬리콥터 머니라는 표현이 여당 의원들의 입을 통해 쏟아졌다. MMT는 '독자적인 화폐를 가진 나라의 정부는 무한정 돈을 찍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재정 적자를 불려도 국가 부도는커녕 아무 문제가 없다'는 주장으로 주류 경제학계에서는 이단적 이론으로 취급받는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이에 "현재로서는 상당히 부작용이 더 크게 보여서 본격 그런 것(MMT, 헬리콥터 머니)을 채택한 나라는 없다고 봐야 한다"고 일축했지만, 현재 여당 최고위원(양향자), 정책위의장(홍익표)을 맡고 있는 두 사람의 발언은 재정 건전성에 대한 여권 정치인들의 시각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두 사람이 포함된 민주당 지도부는 새해 들어 또 MMT 이론을 자주 거론한다. 전국민에게 최소 20만원을 지급하는 2차 전국민재난위로금을 주장하기 위해서다. 2차는 물론 N차 재난지원금까지 주장할 기세다.

이런 분위기에 재정학자를 중심으로 경제학계는 우려를 높이고 있다. 한국의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현 정부 출범 때 660조원이었던 국가채무는 2020년 846조9000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 연말에는 956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47.3%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코로나 경제위기로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국가채무비율은 정부 전망보다 더 높을 것으로 관측된다. 작년처럼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잦게되면 국가채무 1000조원 돌파도 시간 문제일 뿐이다. 국가채무비율 등이 다른 나라보다 낮다고 하더라도, 이같이 빠른 채무증가 속도를 한국 경제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작년 5월 13일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에 긴급재난지원금 사용이 가능하다는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 국회 보고서 "재정지출 늘수록 부양효과 감소...부정적 영향 미칠 가능성"

지난해 10월 8일 김시원, 김원기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회 예산정책처에 제출한 ‘장기 국가채무 추계치 수준에 따른 재정정책의 유효성 분석’ 연구용역보고서를 통해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지출을 늘리는 경우 재정건전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는 향후 정부부채의 상환문제 뿐 아니라 재정지출의 효과성을 감소시켜 원하는 목적(경기부양)을 달성하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 연구보고서는 나라빚이 늘수록 경기부양을 위한 정부지출 효과가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는 한국이 포함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11개 국가들의 1960년부터 2019년까지 60년간 분기별 데이터를 이용해 정부소비와 정부투자의 승수 크기를 측정해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

보고서는 "특히 재정지출 증가 후 1년 이내의 단기를 제외하면 재정지출의 경기부양효과는 정부부채가 높을수록 감소하는 경향을 나타내며 정부부채가 높을수록 감소폭 또한 커진다"면서 "특히 정부투자의 경우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60%부터 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추정된 승수가 음의 값을 가짐)으로 나타나 경기 부양효과가 현저히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은 2017년 400조원이었던 한 해 정부 예산을 올해 558조원으로 불려놨다. 4년만에 나라살림이 160조원 증가했지만, 현 정부 출범 후 GDP 성장률은 매년 떨어지고 있다. 반도체 수출 호조 덕에 2017년 3.0%를 기록한 이후 2018년 2.7%, 2019년 2.0%로 성장 속도가 감퇴됐고, 올해는 -1%대 성장으로 후퇴할 전망이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구호 속에서 추진된 최저임금 과속 인상 등이 고용과 내수 경기를 위축시켰기 때문이다. 정부가 각종 현금성 복지 지출을 늘리고 있지만, 경기침체는 오히려 깊어지고 있다. ‘국가채무 증가→민간 저축 감소→기업투자 위축→생산성 후퇴→경기침체→국가채무 증가’라는 교과서적 악순환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뉴욕의 피치 본사.

◇ 가계부채 부담인데··· 적자 국채 늘리면 서민 대출 금리도 오른다

이같은 우려도 불구하고 여당 의원들은 나라 빚을 늘리는 데 전혀 경계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양향자 의원은 2차 전국민지원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적자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 의원은 지난 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2차 전국민 재난위로금 재원 마련을 위해) 추경을 통한 국채 발행도 검토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적자 국채 발행은 구축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재정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한 국채가 시장에 공급되면 채권 가격이 하락(금리 상승)한다. 국채 금리에 영향받아 기업과 은행이 발행하는 채권금리도 상승하게 되고, 은행 대출금리도 동반 상승한다. 한마디로 정부가 빚을 낼수록 민간은 더 비싼 이자를 내야한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채권시장에서는 이미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지난해 국내 채권시장에서는 2019년 대비 적자국채 발행 규모가 급증하면서, 국채금리가 지속적으로 상승(국채 가격 하락) 압력을 받았다. 채권시장이 정부가 찍어내는 적자국채 소화에 부담을 느끼면서 채권가격이 하락(금리 상승)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효과는 정부가 공급을 늘린 국채 물량 부담으로 인해 상쇄됐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3월, 5월 두차례 걸쳐 기준금리를 총 0.75%포인트(P) 인하했지만, 국채 10년물 금리는 7월 중순까지 3월 초와 비슷한 1.3% 후반대를 유지했다.

올해 558조원을 지출할 예정인 정부는 총수입(478조원)을 초과한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적자국채를 93조원 발행할 계획이다. 지난해 나타났던 ‘국채발(發) 시중금리 상승’이 올해도 되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여당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적자 국채 발행은 장기적으로는 서민 경제 활동을 위축시키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정부의 적자 국채 발행이 늘어날 수록 시중 금리 상승압력이 발생하고, 이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서민들의 대출 금리를 올릴 수 있다. 실제 기준금리가 0.75%P 내렸지만 신규 가계대출 금리는 작년 3월 2.88%에서 11월 2.72%로 큰 변화가 없었다. 이같은 상황은 대출 이자 부담으로 민간 소비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 국가채무 빠르게 늘면 신용등급 유지에 악영향

물론 코로나19 발생 이후 전세계 주요국들은 모두 정부 재정지출을 크게 늘렸다. 이로 인해 주요국들의 2020년 국가채무비율도 대폭 상승했지만, 2021년부터는 채무비율을 다시 낮추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OECD에 따르면 프랑스는 2020년 117.9%에서 2021년 116%로, 영국도 2020년 97.9%에서 91%로 낮출 계획을 잡았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국가채무를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작년 9월 '2020~2024년 국가채무관리계획'을 통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2020년 43.5%로 시작해 2021년 46.7%, 2022년 50.9%, 2023년 54.6%, 2024년 58.3%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이후 4차 추경을 거치면서 국가채무비율 전망은 추가 상승이 예상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이 43.9%에 이를 것으로 봤다.

경제성장을 뛰어넘은 국가채무 증가 속도는 국가신용등급 강등을 일으킬 수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달러화나 유로화. 일본 엔화 등 국제통화를 발행하지 않는 한국은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50% 이상으로 높아질 경우 신용등급하락 압력이 본격화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의 원화는 달러나 엔화처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화폐가 아니기 때문에 대외 지불 능력이 제한적이다. 이론적으로 국가신용등급 하락은 원화 가치를 떨어뜨리게 되고, 이런 상황이 현실화되면 대외 지불능력 감소로 인한 외환위기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축통화나 국제통화를 쓰는 미국, 유럽, 일본이나 우리나라와 경제구조가 완전히 다른 산유국을 제외한 신흥국·개발도상국 그룹과 비교해보면 국가채무비율 50%대 국가의 평균 신용등급은 BBB+"라면서 "AA(스탠다드앤드푸어스 기준)인 한국이 국가채무비율 50%대로 진입하면 신용평가사들이 채무비율이나 재정건전성이 높다는 이유로 신용등급을 몇 단계 낮춰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