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자인 A씨는 최근 집을 사려다 입주권 지분을 사라는 권유를 받았다. 입주권의 99%만 먼저 지분으로 사고 새 아파트가 지어지면 나머지 1%를 사는 형식으로 4~5년에 걸쳐 매수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신 다른 입주권보다 2억~3억원 정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물건을 소개한 공인중개업소는 "생소하지만 그리 위험한 거래도 아니다"고 했다.

주택 가격 안정화 대책으로 각종 규제가 겹겹이 쌓이고 이를 타개하려는 꼼수가 생겨나면서 부동산 거래 방식이 다양해지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집값 상승세가 계속되면서 매도자 우위 시장이 되자, 이런 복잡한 방식의 거래까지 성사되는 것이라면서 예상보다 복잡하고 위험한 거래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바라본 강남 재건축 아파트(앞쪽)와 뒤로 보이는 강북 아파트.

9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방배동과 동작구 흑석동 등 일부 재개발·재건축 사업지에서 조합원 입주권의 일부만 지분 형식으로 매매하는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이는 조금이라도 싼 값에 입주권을 매입하고 싶은 매수자와 팔 수 없는 입주권을 팔려는 매도자(조합원)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나오는 거래다.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하 도정법)에 따르면 투기과열지구인 서울의 경우 2018년 1월 24일 이후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한 구역은 관리처분 계획인가 이후 입주권 전매가 금지된다. 다만 일부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입주권을 매도할 수 있게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조합원이 10년 거주 5년 보유 등의 요건을 충족한 조합원일 때다.

문제는 요건에 부합하더라도 다세대 주택 소유자라 입주권을 여러 개 가진 경우 입주권을 하나만 팔 수 없다는 데서 생겼다. 현행 도정법에 따르면 이런 입주권은 매도하고 싶은 경우 일괄적으로 팔도록 했다. 예를 들어 입주권 2개를 가진 조합원이 입주권 1개만 갖고 나머지 1개는 매도하는 행위는 할 수 없고 입주권 2개를 전부 매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조합설립인가를 마친 조합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로 조합원 수가 늘어나선 안 된다고 도정법에 명시돼 있다"면서 "때문에 입주권을 여러개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를 나눠서 매도해 조합원 수를 늘릴 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주택 규제가 강화되면서 세금 부담이 늘고 돈을 융통할 창구가 줄어들자 입주권 일부만 팔고 싶은 조합원들이 생겨났다. 이에 머리를 짜낸 방식이 바로 입주권 지분 거래다. 조합원이 입주권의 지분 99%를 먼저 매수자에게 팔고 나중에 신축 아파트의 등기가 나면 나머지 1%도 이전해주는 방식이다.

조합원 명부에는 기존 조합원 이름만 올라가는 대신 매도한 지분 99%에 대한 권리는 공증이나 가등기(부동산등기법 제3조에 따라 장래에 행해질 본등기에 대비해 미리 그 순위 보전을 위해 하는 예비적 등기) 등을 통해 보장 받는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일종의 매매 예약 형태의 거래"라면서 "내가 가진 담보의 일부만 지분 등기를 해서 매매할 방법을 찾은 일종의 꼼수"라고 했다.

예전에도 이런 거래는 있었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지에서 아파트와 상가를 일괄로 받은 조합원이 상가만 따로 매도하고 싶을 때 등에 이런 방식이 사용됐다. 원칙적으로는 아파트와 상가에 대한 조합원 지위를 모두 넘겨야 하지만, 나중에 등기가 날 때 이름을 넘겨주기로 하고 일부 지분을 미리 넘겨주면서 매매대금이 오고가는 것이다.

신탁업계 한 관계자는 "인생 처음으로 집을 매수하는 무주택자 입장에서는 다소 생소한 거래 방식일 수 있다"면서도 "어차피 부동산 매매가 사인간의 계약으로 이뤄지는 내용이란 점을 감안하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는 계약"이라고 했다.

실제로 일부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이나 정비업계 관계자들은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은 없는 거래라고 보고 있다. 공동투자의 일환으로 보면 문제될 것도 없다는 것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다소 기간이 긴 공동투자라 귀찮은 점은 있을 수 있지만 공증, 가등기, 근저당 설정과 같은 안전장치만 잘 확보하면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일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부동산 전문가들은 입주권 지분 매매가 단순히 주택을 매매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할만큼 복잡한 거래라 숨은 위험이 따를 수 밖에 없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현행 도정법은 전문가들도 실수할 정도로 복잡하기 때문이다.

법률사무소 서담의 부동산 전문 최은미 변호사는 "현행법 및 조합 정관에 따라 입주권 지분 매매가 제한될 수도 있고 조합의 사업 추진시기가 다르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계약 전에 조합사무소와 변호사 등을 통해 구체적인 확인을 해야 한다"면서 "자칫하면 현금청산될 위험도 도사리고 있어 계약할 때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또 최 변호사는 "입주권 지분 매매에 대한 법원 판결이 구체적 사례마다 다르게 나올 수 있으므로 특정 판결이 자신의 상황에 적용되지 않을 수 있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공동투자에는 생각하지 못한 여러 가지 위험이 따를 수 있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다. 예를 들어 세금과 관련한 분쟁이 있을 수 있다. 매도자 입장에선 지분 99%를 넘긴 만큼 해당 입주권에 대한 세금은 매수자가 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매수자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아직 명의가 다 넘어오지도 않은 데다가 일부만 부담한다고 하더라도 매도자의 상황에 따라 세금이 매겨지는데 어디까지 부담해야 하는지 확실치도 않다. 매도자가 1주택자인 경우와 다주택자인 경우 세금은 크게 차이가 난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지에 새 아파트가 들어서 등기가 나기까지 변수가 많다는 점도 문제다.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 준공이 됐다고 하더라도 조합의 이해관계가 얽혀 등기가 제 때 되지 못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2018년 12월에 준공을 받은 서울 송파구의 헬리오시티는 입주 2년차가 되어가도록 등기가 안 되고 있다. 최근 강화된 자금 출처 소명 문제 등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입주권 99%를 산 시점과 명의가 넘어오는 시점의 간극이 클 경우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원하는 주택을 문제없이 골라살 수 있는 매수자 우위 시장이라면 이렇게 복잡한 거래가 성사되긴 어렵다"면서 "주택 시장 전반이 겹겹 규제로 둘러싸이면서 이런 방식의 거래까지 따져물어가면서 내 집 마련을 해야 하는 상황이 개탄스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