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기준 가계부채, 사상 처음 한국 GDP 규모 앞질러
기업 대출도 역대급...좀비기업 붕괴 우려
유동성 축소 조치 시 민간 부채 채무불이행 위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은 5년여만에 양적완화의 시대로 회귀했다. 중앙은행들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금리를 내리는 동시에 각종 유동성 공급책을 내놨고, 각국 정부는 대규모 재정지출에 돌입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올해 코로나19 위기가 종식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시장은 벌써 부풀어오르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유동성 파티'도 끝내야 해 이제는 유동성의 역습을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편집자주]

"전세계가 이용할 수 있는 백신이 출현해 팬데믹이 신속하게 해결된다고 해도 금융기관의 대차대조표와 세계 경제는 (이미)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코로나19로 인한 건강 위기가 일시적이기 때문에 기업과 가계의 재정적인 고통도 일시적일 거라는 데 희망을 건다."

카르멘 라인하트(Carmen reinhart) 세계은행(WB)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영국 경제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지(紙)가 최근 발간한 최근 발간된 ‘2021 세계경제대전망’에서 앞으로 세계 경제회복을 위협할 변수로 코로나 팬데믹으로 급증한 민간 부채를 지목했다.

전세계적으로 민간 부채가 급증한 이유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 위기 국면에서 기업과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수익 창출력이 허약해졌기 때문이다. 수입이 줄어든 가계와 기업이 각종 정책자금 지원으로 연명했다. 정부와 금융기관이 기존 대출금에는 상환 유예 기간을 두고, 새로운 대출금을 내주는 방식으로 경제를 지탱하면서 부채가 급속도로 증가한 것이다.

지난달 가계 부채는 처음으로 한국 경제 규모를 앞질렀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유동성 축소를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는 등의 조치를 섣불리 취하면 누적된 민간 부채가 채무불이행 상태가 될 수 있고, 가계와 기업의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관가와 국내외 연구기관에서도 한국 경제의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 가계 부채를 중심으로 하는 민간 부채를 지목하고 있다.

한국은행

◇가계+기업 대출, GDP의 1.6배까지 늘어

코로나 팬데믹이 본격화된 지난 3월 이후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연 0.50%까지 낮췄고, 정부 또한 총 300조원 이상의 재정과 정책자금을 풀었다. 이로 인해 가계와 기업의 부채는 지난 3분기 말 기준 3014조3000억원으로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1919조원(명목)의 1.57배에 달한다. 가계 부채가 1682조1000억원, 기업 부채가 1332조2000억원으로 파악된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12월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 3분기 말 현재 가계 부채는 1682조1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 증가했다. 국내총생산(GDP 명목·2019년 4분기~2020년 3분기) 대비 가계 신용의 비율은 101.1%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100%를 넘겼다. 1년간 국가 전체가 벌어들이는 돈 1700조원으로도 가계 빚을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의미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조사 대상국 중 레바논(116.4%)을 제외하면 가장 높았다. 레바논은 폭발 사고 충격으로 GDP가 급감한 나라임을 감안하면, 한국이 1위였던 셈이다. 자금순환표상 가계의 대출금과 정부 융자, 기업의 대출금과 채권, 정부 융자 등을 포함한 전체 민간 신용은 GDP 대비 211.2%로 작년 3분기보다 16.6%P(포인트) 상승했다.

빚으로 연명한 좀비 기업들의 붕괴도 한국 경제의 차후 위험 요인으로 지목된다. 가계 부채만큼이나 기업 부채 또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액을 포함해 역대급으로 늘어난 상황이기 때문이다. 3분기 기준 기업대출은 1332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5% 증가했다.

한국은행

◇가파른 민간 부채 증가, 한국 경제 건전성 악화 우려 요인

이같이 민간 부채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한국 경제의 재무 건전성 악화에 대한 우려가 이곳 저곳에서 나오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달 우리나라 민간 부문 빚 위험도를 11년 만에 '주의'에서 '경보'로 격상했다. 코로나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하기 위한 각종 정책 자금 지원이 민간 부채로 누적되고 있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게 BIS의 판단이다.

정부 또한 가파른 민간부채 증가속도를 향후 경기회복세를 제약할 위험 요인으로 손 꼽고 있다. 지난 4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재부 직원 대상 신년사에서 한국 경제의 주요 리스크 요인 가운데 하나를 ‘가계 부채’로 꼽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역대급 유동성이 시장에 풀린 만큼, 가계 부채가 현재와 같은 속도로 증가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겠다는 다짐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민간 부채 증가속도를 조절하기 위한 수습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부동산, 주식 등 자산시장 과열이 부채 증가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자체적으로 유동성 축소 방안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토지보상금 제도의 개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토지보상금을 현금 형태로 받는 걸 선호했지만, 앞으로는 보상금을 땅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토지를 수용당하는 원주민에게 신도시 내 땅을 주는 식으로 시중 유동성이 급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만약 토지보상금을 정부가 토지주의 입출금통장으로 현금을 입금하게 된다면, 이 자금은 시중유동성(M2) 통계로 잡히게 된다. 정부는 토지보상금으로 인해 유동성이 급증했다는 오명을 얻게 될 수도 있다. 3기 신도시를 포함한 수도권 신도시 토지보상금은 100조원 규모로 추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로 인한 경제활동 정상화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각종 유동성 지원이 계속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정부가 대출 만기를 일률적으로 연장시키는 방식으로 유도해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한다. 상환 능력이 있는 차주에 대해서는 채무를 적기에 회수해야 하고, 한계기업이나 취약한 가계에 추가적인 대출이 이뤄지는 것은 방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되지 않으면 내년에도 유동성을 줄이기는 쉽지 않겠지만, 마냥 경기 회복을 기다리다 적절한 시점을 놓치면 자산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돼 더욱 위험해질 것"이라면서 "아주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유동성을 완전히 줄이지는 못한 상황에 코로나19 위기를 맞닥뜨려 더욱 유동성이 넘쳐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