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부터 새 신용점수를 받아든 사람들 사이에선 한바탕 난리가 났다. 기존 1000점 만점에 700~800점대이던 일부 채무자의 신용평가 점수가 채무불이행자 수준인 350점까지 떨어지는 일이 무더기로 발생한 것이다.

올해 개인신용을 평가하는 방식이 등급제에서 점수제로 바뀌면서 곳곳에서 잡음이 일고 있다. 약간의 점수 차이로 등급이 갈려 대출에서 불이익을 받는 ‘문턱 효과’를 없애겠다는 취지로 시행했지만, 정작 서민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점수는 되레 떨어져 대출받기 어려운 건 똑같다"고 토로한다. 금융감독원은 신용평가사(CB·Credit Bureau)들을 대상으로 뒤늦게 실태 점검에 나섰다.

이번 소동은 나이스신용평가가 신용점수제 전환에 발맞춰 선보인 새로운 신용평가 모형에 따라 대부업권과 자산관리회사의 대출 정보를 적용하면서 발생했다. 새로운 방식의 신용평가를 위해서는 우선 채권 자체가 ‘정상채권’인지, ‘부실채권’인지를 구분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나이스는 채권을 매입한 회사가 금융당국에 등록된 정식 대부업체인지, 자산관리회사인지 여부만으로 채권의 속성을 구분 지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통상 개인이 대부업체의 빚을 제때 갚지 못하면 부실채권으로 분류되는데, 대부업체는 이런 부실채권을 대부분 자산관리회사에 매각한다. 그러나 이 중에는 더러 정상 상환 중인 채권이 함께 팔려나가는 경우도 있다. 이번 사태의 경우 A대부업체가 폐업하면서 이들이 갖고 있던 정상·부실채권을 모두 B자산관리회사에 매각했는데, 나이스는 B사가 보유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차주의 신용점수를 폭락시키기도 했다.

금융당국은 "신용평가 모형 개편은 CB사가 자체적으로 하는 일인 만큼 이번 오류와 신용점수제 변경은 큰 연관이 없다"며 "등급 하락과 관련한 민원은 신용점수제가 개편될 때마다 늘 있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금융당국 역시 제도 변화에 앞서 허점이나 부작용을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앞서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은 신용점수제의 차질 없는 적용을 위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CB사를 비롯한 금융권과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점검 회의를 개최해 왔다. 신용점수제 개편 취지에 맞게끔 신규 신용평가 모형 개발·적용을 준비 중이던 CB사들의 상황을 살펴볼 기회가 충분히 있었던 셈이다.

신용평가에 대부업 대출정보를 반영하는 데 따른 취약 차주의 피해도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대부업 신용정보는 CB사에 앞서 2019년 은행·카드사·상호금융권 등 전 금융권에 공유되기 시작했다. 금융당국은 당시 대부업 이용 실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고객의 신용등급을 강등하거나 대출을 거절하는 금융사는 철퇴시키는 등 소비자 보호 방안을 선제적으로 마련했었다. 금융사가 참고할 ‘기초 지표’를 만들어내는 CB사들에 대해서도 이런 우려를 함께 고민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혼란은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이스의 오류 인정과 정정 작업으로 이번 사태는 소동으로 마무리됐지만, 짧은 요 며칠간 서민들의 일상에 입힌 타격은 절대 작지 않았다. 금전적인 피해가 없었다고 해도 하루아침 채무불이행자 점수로 전락해버린 사람들은 속앓이를 감내해야 했다.

한 차주는 "대부업 대출은 어차피 언젠가 상환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이번 일로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무리해서 일시상환했다"며 "나름대로 사정에 맞춰 세워뒀던 금융 계획에 차질이 생겨버렸다"고 말했다. "떨어진 점수로는 대출이 나올 곳이 없을 것 같아 급히 카드론이라도 받아 두려고 연락을 돌렸다"는 차주도 있었다.

금융 제도에 아주 조그만 구멍 하나만 생겨도 서민들의 삶은 쉽게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 법정 최고금리 연 20% 인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금융 지원 조치 연착륙, 가계부채 선진화 방안 마련 등 서민의 삶에 직결된 금융정책이 2021년에도 산적해 있다. 아무리 좋은 의도의 정책이라도 사소한 허술함 때문에 이용자들의 절망이 양산되지 않도록 현장에서는 더욱 세심하게 펼쳐질 필요가 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이어진 생각들이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힘써 나가겠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올해 신년사를 통해 다시 한번 강조했던 자신의 취임사다. 그의 다짐이 올해 꼭 지켜질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