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배에 갇혀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매일 매일 ‘이 분(중증환자) 제발 좀 전담병원에 가게 해달라’고 울며불며 중앙본부에 얘기했는데 그런 환자조차도 3~4일 뒤에야 병원을 옮길 수 있었다."

서울 구로구 미소들요양병원에서 2주째 격리돼 있다는 한 의료진은 지난 29일 오후 한 방송 인터뷰에 출연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금 남아있는 의료진은 3분의1 밖에 되지 않는다. 수간호사 중에 안 쓰러진 사람이 없을 정도"라며 "음압병동도 없다. 전담병원 이송을 기다리며 환자를 그냥 두는 건 방치하는 것과 같다"고 호소했다.

지난 29일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코호트 격리된 서울 구로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한 환자가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다.

◇ 전국 요양시설 확진자 1451명… 병상 대기 중 사망 잇따라

요양병원 등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집단감염이 확산해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외부로의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코호트(동일집단) 격리 조치가 오히려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코로나 3차 대유행의 여파로 요양시설에서 집단감염이 줄줄이 발생하고 있다. 30일 0시 기준 전국 요양시설 확진 상황은 ▲울산 남구 양지요양병원 243명 ▲서울 구로구 미소들요양병원 190명 ▲경기 부천 효플러스요양병원 155명 ▲충북 청주 참사랑노인요양원 107명 ▲전북 김제 가나안요양원 99명 등이다.

전날 0시 기준 전국에 총 17개의 요양시설이 집단감염 발생으로 방역당국의 관리를 받고 있고, 이들 시설에선 누적 1451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어제까지 6000여개 요양시설, 약 20만명에 대한 검사를 실시해 30명의 환자를 추가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격리 중 사망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28일 하루 코로나 사망자는 40명으로 직전 최고치인 24명을 크게 웃돌았다. 사망자 가운데 70%가량이 요양시설에서 나온 것으로 조사됐다.

방역당국과 지자체에 따르면 이날 0시 기준 코로나 병상을 배정받지 못한 채 요양시설에서 격리 도중 숨진 환자들은 ▲경기 부천 효플러스요양병원 27명 ▲서울 구로구 미소들요양병원 6명▲울산 남구 양지요양병원 5명 등이다. 아직까지 효플러스요양병원에서 20명, 미소들요양병원에서 37명의 확진 환자들이 병상 배정을 기다리고 있다.

29일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코호트 격리된 서울 구로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함께 격리된 간호사가 외부 취재진을 향해 병원 내부 상황을 알리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병원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정부의 지원을 촉구했다.

지난 28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일본 유람선처럼 갇혀서 죽어가고 있는 요양병원 환자들을 구출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자신을 미소들요양병원 의료인력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병원엔 코로나 양성 판정 후 병상 나기를 기다리는 환자들과 음성 판정을 받은 환자들이 남아있는데, 문제는 음성 환자도 격리 기간 동안 8명이 사망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간병사 없이 한 병동에서 1~3명의 간호 인력이 레벨 D 방호복을 비롯한 4종 방호구를 착용하고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기존 간호 인력도 ‘번아웃(burnout·정신적, 육체적으로 극심한 피로를 느껴 무기력한 상황에 놓이는 것)’ 되어 곧 나가떨어지면 아무도 환자를 돌볼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인력 지원이 되지 않는 한 기존의 양성 환자 및 음성 환자 치료가 제대로 되지 못해 사망자는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방역당국에 따르면 확진 환자들과 함께 이 병원에 남아있는 비확진 환자는 92명이며 전날 0시까지 총 62명의 간호사와 간병인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 "코호트 격리로 환자 상황 악화" 지적… 정부는 ‘뒷북’ 대책 마련

전국에서 이같은 상황이 지속되자 시설 내 집단감염의 외부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코호트 격리 방침이 오히려 시설 내 감염 확산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3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상동 효플러스요양병원에 불이 켜져 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전날 경기 부천 효플러스요양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호트 격리는 확진자가 발생한 병원 또는 시설을 의료진, 직원과 함께 폐쇄함으로써 감염의 외부 확산 위험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며 "그러나 코로나 치료 인프라가 부족한 요양병원의 코호트 격리는 사실상 해당 기관 내에 있는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무책임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이어 "요양시설에 입원하고 있는 환자는 대부분 고령으로,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코로나 사망 위험군에 해당된다"며 "오히려 코호트 격리로 인해 상태가 악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아직 감염이 되지 않은 직원이나 환자가 코호트 격리 중에 감염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감염병 전담병원을 확충해 신속히 병상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단기간 내 상황이 개선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요양병원 코호트 격리는 병상 부족 때문"이라며 "공공병원을 코로나 전담 병원으로 전환하고 병동과 중환자실을 유기적으로 오갈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요양병원 코로나 환자들은 고령인 데다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요양시설이 아닌 적절한 의료 환경이 갖춰진 곳에서 반드시 치료받아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요양병원 내 집단 감염이 발생한 경우 현장으로 출동해 환자 재배치나 외부 의료 인력 투입 등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감염병 전담 요양병원을 수도권에 두 곳 지정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다음달 중순은 돼야 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