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문 대통령 백신 발언록 공개
13건 가운데 9건 백신 개발 위탁생산 독려
전세계 백신전쟁 끝난 11월에야 '해외확보' 지시
11월 중순까지도 "국내 백신 개발 진척 보인다"

청와대가 22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물량을 제때 확보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반박하는 내용의 '백신 관련 서면 브리핑' 자료를 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 자료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부터 '충분한 백신 확보'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날 청와대가 공개한 지난 4월 9일부터 12월 8일까지 문 대통령의 지시 목록 13건을 보면, 올해 9월 이전에는해외 백신 구매와 관련한 지시는 사실상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 기업인 경기도 성남 소재 SK바이오사이언스 방문, 세포배양실에서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사전에 백신 확보 지시를 충분히 했으니, 백신 미확보 논란에는 책임이 없다는 취지로 설명했지만, 도리어 이날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이 그동안 '자체 개발'을 강조하는 바람에 정부의 '해외 백신 도입' 대책이 적극 작동하지 않았다는 정황이 확인됐다.

이날 청와대가 공개한 문 대통령 발언 13건 가운데 9건은 코로나 치료제, 백신 개발(7건)과 SK바이오사이언스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위탁 생산(2건)에 관한 내용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9일 경기 성남 한국파스퇴르 연구소를 방문해 ‘코로나 치료제 백신 개발 합동 회의’를 주재하면서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확실히 돕겠다. 개발한 치료제와 백신은 (코로나가 끝나도) 비축하겠다. 끝을 보라"고 했다.

4월 14일 국무회의에서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 바이오 의약 수준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9월 8일 국무회의에서는 '국립감염병연구소의 백신개발 지원'을 주문했다. 해외 백신을 수입하는 것보다 '백신·치료제 자체 개발'을 강조한 것이다.

'해외 백신을 확보하라'는 메시지 4건은 9월 이후에 나왔다. 첫 지시는 9월 15일 내부 참모회의에서 "코백스, 글로벌 제약사 등을 통해 충분한 양의 백신을 확보해 두라"고 지시한 것이었다. 해외 백신 확보를 지시한 나머지 3건은 백신 미확보 논란이 확산된 11월 말 이후 집중됐다. 하지만 이때는 화이자⋅모더나 등 안전성이 확보된 백신 물량 전쟁은 이미 끝난 상황이었다. 대통령 지시가 그만큼 늦었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15일 백신 개발 기업인 SK바이오사이언스을 방문한 자리와 11월 18일 인천 송도 연세대 국제캠퍼스에서 열린 바이오산업 행사에 참석한 자리에서도 '백신 개발'을 독려했다. 정치권에서는 "다른나라들은 올해 상반기부터 해외 백신 확보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는데, 문 대통령은 다른 나라가 백신 확보를 마무리한 11월까지도 K방역을 자신하며 자체 백신만 강조해 왔던 것이 드러났다"는 얘기가 나왔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백신·치료제 개발에 무게를 두며, "속도보다 안전성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내면서 방역 당국의 백신 확보도 늦어진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SK바이오사이언스를 찾은 자리에서 "다른나라보다 더 빨리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겠지만,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안전성과 효능"이라고 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지난 20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해외 백신 도입이 늦어진 이유로 국내 백신 치료제 개발 기대감을 꼽았다. 정 총리는 "우리 백신은 내년 연말쯤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고, 그 때까지 필요한 양의 백신을 제때 구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었다"고 했다. 정 총리는 "정부가 백신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한 지난 7월엔 국내 확진자 수가 100명 수준이어서 백신 의존도를 높일 생각을 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도 했다.

관가에선 "대통령이 9월 지시 이후에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 초기 '적폐 청산'을 이유로 징계당하는 것을 목격한 공무원들이 백신 확보를 두고 책임질 일이 생길 것이 두려워 직접 움직이지 않았다는 말도 나온다.

다음은 청와대가 공개한 문 대통령 발언 행보 전문이다.

1. 경기도 성남시 한국파스퇴르 연구소(4월 9일) '코로나 치료제·백신 개발 산학연병 합동 회의'
- 이날 회의에서 "치료제와 백신 개발, 확실히 돕겠다"고 다짐. 백신 개발 2,100억 원 투자약속. "개발한 치료제와 백신은 (코로나가 끝나도)비축하겠다. 끝을 보라!"고 강조. 그런 뒤 기존 '산학연병'에 '정'까지 포함한 범정부적 상시 지원체계 지시.

2. 문 대통령-빌게이츠 이사장(빌&멜린다 게이츠 재단) 전화통화(4월 10일)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개발협력 확대 합의. 게이츠 재단은 통화 이후인 지난 5월에 SK바이오사이언스에 360만 달러(44억 원)의 백신개발 지원. 이번 달 1,000만 달러(109억 원)지원대상 선정.

3. 문 대통령 지시로 코로나 치료제 백신 개발 범정부 지원단(4월 12일) 구성 발표, 현재까지 가동 중.

4. 국무회의(4월 14일)서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속도 내 바이오 의약 수준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국무위원들에게 강조.

5.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회의(7월 20일)에서 "스마트 대한민국 펀드의 출범이 백신과 치료제 등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 줄 것"을 당부

6. 내부 참모회의(7월 21일)
- SK바이오사이언스가 아스트라제네카가 백신을 위탁받아 생산키로 한 사실 등을 보고 받고 "충분한 물량 공급" 당부.

7. 국무회의(9월 8일)서 질병관리청 승격에 맞춰 백신 치료제 개발 독려. "국립보건연구원 아래 국립감염병연구소 신설 백신개발 지원 등을 통해 감염병에 대한 대응능력 높여 달라"고 주문.

8. 내부 참모회의(9월 15일)
- 코로나 백신 상황 챙긴 뒤 "코박스, 글로벌 제약사 등을 통해 충분한 양의 백신을 확보해 두라"고 지시.

9. 코로나 백신 개발 기업인 경기도 성남시 SK바이오사이언스 방문(10월 15일)
- 최태원 SK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등 범정부적 지원에 감사 표시. 문 대통령, "끝까지, 확실히 성공할 때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재차 강조. "SK바이오사이언스는 아스트라제네카와 노바백스 같은 글로벌 백신회사들과 위탁생산을 협의하고 있는데, 생산물량의 일부를 우리에게 우선 공급할 수 있게 된다면 백신 안정적 확보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언급. "다른 나라가 먼저 개발해도, 코로나가 지나가도, 백신주권 위해 끝까지 개발하라. 반드시 끝을 보자"고 독려.

10.인천 송도 연세대 국제캠퍼스에서 열린 바이오산업 행사(11월 18일)에 참석,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의 역할을 평가하며 독려("백신, 치료제 개발 진척 보여 빠르면 올해 말부터 항체 치료제와 혈장 치료제 시장에 선보일 것")

11. 내부 참모회의(11월 24일)
"백신 안전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우리가 배송 취급과정에서 부주의가 있지 않는 한 과학과 의학에 기반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서 확보하라."

12. 내부 참모회의(11월 30일)
"과하다고 할 정도로 물량을 확보하라. 대강대강 생각하지 마라"

13. 문 대통령, 홍남기 경제부총리 보고(12월 8일)
"재정 부담이 커도 백신 물량 추가확보를 지원해 주도록 하라"고 재차 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