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반도체 업계 M&A 규모 129조원 추정
비대면 확산 반도체 수요 끌어올려… AI 반도체, 빅데이터 등은 기술 통합 촉진
업계 "M&A, 기술개발 시간 버는 것"… 각자 단점 보완하며 성장하는 '윈-윈' 전략
내년 반도체 수퍼사이클 전망… 2015년 M&A 최대 이후 업황 호조 패턴 재연 기대

전세계 반도체 업계가 올해 인수·합병(M&A)에 쓴 돈이 1150억달러(약 124조36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해 M&A 규모로는 지난 2015년 1077억달러(약 116조5500억원)를 뛰어넘는 역대 최대 수준이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혁신 기술이 융합되는 시대가 오면서 반도체 업계의 기술통합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10월 인텔 낸드 부문을 90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국내 M&A 사상 최고액이었다. 사진은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양산한 128단 4D 낸드플래시.

업계는 대규모 M&A 뒤에는 호황이 올 것으로 기대한다. 실제 지난 2015~2016년 반도체 업계는 2년 간 1675억달러(약 161조1700억원) 규모의 M&A를 펼쳤고, 2017~2018년 반도체 시장은 호황을 누렸다. 내년 이후 역시 반도체 업황이 수퍼사이클(장기호황)에 진입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0일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올해 반도체 업계의 M&A 총액은 전년보다 265% 급증한 1150억달러에 이른다.

올 들어 반도체 M&A는 지난 10월 SK하이닉스가 인텔 낸드 부문을 90억달러(약 10조1600억원)에 인수하면서 100조원 규모를 넘어섰다. 같은 달 미국 반도체 기업 마벨테크놀로지가 경쟁사인 인파이를 100억달러(약 10조86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하면서 역대 최고액을 갈아치웠다.

여기에 대만 반도체 소재 업체인 글로벌웨이퍼스가 추진 중인 독일 실트로닉 인수가 올해 안으로 마무리될 경우 2020년 반도체 M&A 총액은 1195억달러(약 129조4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전까지는 2015년 1077억달러가 연간 M&A 규모로는 가장 컸다. 이듬해인 2016년에는 600억달러에 가까운 M&A가 있었다. 2015, 2016년 2년 간 50여건의 M&A가 단행됐다.

업계 관계자는 "2015년과 2016년에는 사물인터넷(IoT)과 자율주행 기술이 부각되면서 반도체 업계의 기술 통합이 가속화됐다"며 "여러 업체들이 M&A로 신기술을 획득하고, 몸집을 키웠다"고 분석했다. 당시 싱가포르 반도체 업체 아바고가 미국 통신칩 업체 브로드컴을 370억달러에, 미국 메모리반도체 회사 웨스턴디지털이 샌디스크를 190억달러에 인수했다.

AI칩을 형상화한 그래픽

올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비대면’경제 확산으로 반도체 수요가 커진 가운데, 인공지능(AI) 반도체, 클라우드, 5G(5세대) 이동통신 등이 핵심 기술로 부각됐다. 이에 따른 통합 기술 수요 증가 또한 M&A를 가속화한 중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엔비디아는 반도체 설계에 특화된 영국 ARM을 400억달러에 사들이기로 했다. 또 10월에는 AMD가 통신 인프라 사업 진출을 위해 자일링스를 350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앞으로의 반도체 기술 경향을 예측해 보면 단일 제품으로는 시장에서 성과를 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최근 M&A의 경향은 컨소시엄(연합체) 형태로 흐르고 있는데, 자신들이 약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인수해 기술력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했다. M&A는 기술 확보에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것이다.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 부문 인수도 컨트롤러 기술 확보를 위한 M&A로 이해된다. 낸드플래시의 경우 반도체 단품이 아닌 SSD(스테이트솔리드 드라이브) 등 완제품으로 판매되는데, 두뇌 역할을 하는 컨트롤러 기술이 완성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SK하이닉스는 수년 간 컨트롤러 기술의 내재화에 힘써왔지만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이 분야 선두 업체인 인텔의 관련 사업을 인수해 시간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성순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반도체 기업들은 M&A로 각자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는 추세"라며 "SK하이닉스·엔비디아·AMD 등의 사례가 이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업계는 올해 대형 M&A 등을 계기로 한동안 침체됐던 반도체 수요와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반도체 수퍼사이클’이 내년쯤 올 것으로 예측한다. 지난 2015년 반도체 M&A가 사상 최대를 기록한 후, 연간 3500억달러 수준이었던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17년 4320억달러, 2018년 4851억달러로 크게 뛴 전례가 재연될 수 있다는 기대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올해 반도체 시장 규모를 4515억달러로 추정하면서 내년에는 4890억달러, 2022년 5423억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 관계자는 "적극적인 동시에 규모가 큰 M&A로 탄생한 ‘빅 플레이어’가 반도체 시장 규모를 키우면서 호황을 이끌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