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수조 원대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벌이면서 재계에서 가장 뜨거운 라이벌 기업으로 급부상한 SK이노베이션(096770)LG화학(051910)직원들의 급여 격차가 올해 들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만 해도 4000만원이 넘던 연봉 차이가 2000만원대로 감소한 것이다.

두 기업은 ‘차세대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배터리(2차전지) 분야의 경쟁사다. 지난 10년간 10여 번의 소송을 벌였을 정도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영업비밀 침해 소송은 2017년 LG화학 직원들의 잇따른 SK이노베이션으로의 이직이 단초가 됐는데, LG 측은 "직원 빼가기"라고 반발하고 있는 반면 SK이노베이션은 "직원들이 급여 차이 때문에 자발적으로 LG화학을 떠난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양사가 급여 격차를 어느 정도로 의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숫자로 보면 양사의 급여 차이는 올해 들어 눈에 띄게 감소했다. LG화학 또한 직원들을 눌러 앉히기 위해선 고연봉을 약속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그래픽=정다운

금융감독원에 공시된 올해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 남자 직원의 평균 연간급여액은 8900만원으로, LG화학 전지부문 직원(남)의 연보수 6400만원보다 2500만원 많았다. 근속연수 차이 등의 변수가 있긴 하지만 단순화시켜 보면 LG화학 직원 입장에서는 SK이노베이션으로 옮기면 연봉이 40% 뛰는 셈이다.

SK이노베이션은 정유업체 SK에너지, 분리막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 등 6개의 자회사를 보유한 중간 지주회사지만 전지사업은 직접 운영하고 있다.

현재의 급여 차이도 적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나마 올해 들어 많이 줄어든 수치다. 지난해의 경우 격차는 더 컸었다. 지난해 3분기 보고서 기준 SK이노베이션 직원의 평균 급여액은 1억500만원이었다. 2019년도 사업보고서 기준 연간 급여액은 1억2600만원이나 됐다. 반면 LG화학은 3분기까지의 급여는 6000만원, 지난해 전체 급여는 7800만원이었다. 3분기까지만 보면 SK이노베이션 직원의 57%에 그친 것이다. 2017년(3분기 기준)에도 SK이노베이션 남자 직원들은 1억200만원, LG화학 전지사업부문 남직원은 6100만원의 급여를 받았다.

직원들이 평균적으로 회사에 다니는 기간도 차이가 났다. SK이노베이션 남자 직원 평균 근속연수는 9.77년으로 LG화학 전지부문(8.07년)보다 1년 이상 길었다. 다만 LG화학의 경우 전지 외에 석유화학, 첨단소재, 생명과학부문 직원은 평균 10년 넘게 근무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지사업 부문 직원들의 이탈이 숫자로 확인된 셈이다.

일러스트=조경표

전통적인 가전업계 라이벌인 삼성전자(005930)LG전자(066570)는 어떨까. 삼성전자의 올해 남자 직원은 평균 7800만원(3분기 기준)의 연봉을 받아 6600만원을 받는 LG전자 직원보다 1200만원을 더 수령했다. 두 회사의 급여 추이는 삼성전자가 급여를 올리면 LG전자가 따라가는 구조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6600만원이던 삼성전자 평균 연봉이 매해 오르면서 4년 만에 18% 넘게 상승하자 LG전자도 같은 해 5900만원에서 2017년 6200만원, 2018년 6600만원, 2019년 6700만원으로 꾸준히 연봉을 높인 것이다. 반도체 사업이 없는 LG전자는 이 기간 스마트폰 부진 때문에 상대적으로 실적이 좋지 못했지만, 인력 이탈 등을 막기 위해 급여를 올린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조선 3사 중에선 삼성중공업(010140)이 가장 많은 연봉을 지급했다. 삼성중공업 남자 직원의 1인 평균급여액은 3분기 기준 5600만원으로, 현대중공업의 조선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4824만5000원)이나 대우조선해양(4600만원)보다 각각 775만5000원, 1000만원 많았다.

삼성중공업은 3사 중 유일하게 최근 4년간 평균연봉이 소폭이나마 꾸준히 상승했다. 2017년 5000만원에서 매해 200만~300만원씩 올랐다. 반면 한국조선해양은 평균연봉이 2017년 4553만1000원에서 다음 해 4968만3000원으로 올랐다가 2018년 2662만7000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다만 반토막은 기업 분할 과정에서 나온 영향인 것으로 추정된다. 대우조선해양은 2017년 4400만원에서 지난해 5000만원으로 오르는가 싶더니 올해 다시 4000만원대로 밀려났다.

같은 라이벌 업체지만, 위 기업들과 달리 은행권은 연봉 차이가 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 은행 4사의 남자 직원 1인 평균급여액은 △하나은행 9000만원 △국민은행 8900만원 △우리은행 8600만원 △신한은행 8300만원 순으로 나타났다. 전체 직원 수 역시 △하나은행 1만2832명 △국민은행 1만7559명 △우리은행 1만5000명 △신한은행 1만4093명 등으로 비교적 큰 차이는 없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직원 급여 추이는 기업의 위상 변화, 경쟁 상황 등에 따라 미묘하게 바뀌기 마련"이라며 "하는 일이 비슷한데 연봉과 처우 차이가 너무 많이 나면 연쇄 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