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출예산의 72.4%를 상반기에 조기 집행토록 예산배정계획을 확정했다. 상반기에만 333조원 이상의 재정을 투입한다는 의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경기침체 조기 회복을 위해 예산을 즉시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8일 국무회의에서 '2021년도 예산배정계획'을 확정했다. 내년 예산 총지출은 558조억원이고 이 가운데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 기금을 제외한 세출 예산(일반회계+특별회계)은 459조1000억원이다. 정부는 이 중 305조원을 상반기에 배정했다. 배정률 72.4%는 올해(71.4%)보다 1%포인트 높아졌다. 유럽 재정 위기 여파로 경기 침체가 심했던 2013년 상반기(71.6%)를 뛰어넘는 역대 최고치다.
예산배정은 각 부처에서 예산을 사용할 수 있도록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예산 배정이 이뤄져야 각 부처 내에서 자금 배정이 이뤄지고 예산도 집행할 수 있다. 박준호 기획재정부 예산실 예산총괄과장은 "연초부터 곧바로 집행이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절차를 추진 중"이라고 했다.
예산 규모로 따지면 333조원이 상반기에 풀린다. 역대 상반기에 배정된 예산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정부는 내년에 연구개발(R&D)과 사회간접자본(SOC)에 54조원을 풀기로 했다. 두 예산의 상반기 배정률은 80% 수준이다. 박 과장은 "경기활성화와 관련이 큰 SOC 분야와 우리 경제의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한 R&D 사업 등을 상반기에 중점 배정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예산배정뿐만 아니라 정책방향도 경기반등으로 설정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거시경제 금융회의'를 열고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코로나 확산세를 차단하는 데 주력하면서도 코로나 이후 시대를 준비하는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다"며 "한국판 뉴딜의 성공적인 추진, 미래 핵심산업인 BIG3(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차)의 육성에범정부적 역량을 집중해 지금의 위기를 변화를 위한 기회로 만들겠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상반기에 예산을 집중하면서, 내년 하반기 재정절벽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정절벽은 대규모의 정부지출감소와 세금인상이 경제에 타격을 입히는 현상을 말한다. 정부의 재정지출이 대폭 감소하고 세금이 인상되면서 경기가 절벽에서 떨어지듯 급강하하는 현상을 재정절벽이라 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상반기 예산배정률은 증가하기 시작했다. 2018년 68%→2019년 70.4%→2020년 71.4% 등이다. 문제는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면서 추가경정예산(추경) 투입이 반복돼 왔다는 점이다. 앞서 정부는 2015년에서 올해까지 6년 연속 추경을 편성해왔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올해 4번째 추경이 진행됐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학과 교수는 "과도하게 상반기에 재정을 집중할 경우, 하반기 재정이 부족하는 재정절벽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올해까지 6년 연속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해왔는데, 내년에도 돈이 부족하면 또다시 추경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