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공급하는 신혼부부 매입임대주택이 중장년층 사이에서도 각광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 제한이 없이 혼인신고 7년 이내라는 요건만 충족하면 재혼이라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4일 서울시가 청년과 신혼부부 주거지원을 하겠다는 광고를 하면서, 서울도서관 외벽에 '집'이라고 쓴 글씨를 뒤집어 전시했다.

7일 SH에 따르면, 지난 7월 공급한 신혼부부 매입임대주택 I 당첨자 97명 가운데 15명이 만 40세 이상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고 연령은 1958년생(만 62세)의 ‘황혼 부부’로 강동구 신혼부부 임대빌라에 당첨됐다.

지난달 공급한 신혼부부 매입임대주택도 마찬가지로 서류심사 대상자 275명 가운데 41명이 만 40세 이상이었다. 최고 연령은 만 59세였다. 해당 입주자 모집 청약 경쟁률이 1대 1을 넘지 못한 만큼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으면 실제 입주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처럼 중장년 부부가 신혼부부 매입임대 주택에 입주할 수 있었던 것은 ‘신혼부부에 재혼을 포함한다’는 항목 덕분이다. 신혼부부 매입임대주택의 자격 요건은 혼인연수와 자녀여부 등에 따라 1·2·3순위로 나뉜다.

1순위는 ‘임신 중이거나 출산, 입양으로 자녀가 있는 (예비) 신혼부부 및 만 6세 이하 자녀가 있는 한부모가족’이다. 2순위는 ‘자녀가 없는 신혼부부 및 예비 신혼부부’, 3순위는 ‘1·2 순위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사람 중 만 6세 이하 자녀가 있는 혼인가구’다.

청약은 선순위 우선 배정 방식으로, 순위가 같을 경우 가점제를 적용한다. 가점은 총 15점으로 △수급자 여부(2~3점) △자녀 수(1~3점) △청약저축 및 주택청약종합저축 납입횟수(1~3점) △서울시 연속 거주 기간 (1~3점) △장애인 등록 여부(2점) ⑥ 신청자의 만 65세 이상 직계존속 부양여부 (1점) 등이다.

2순위(무자녀) 기준으로 다른 조건이 같다고 간주했을 때, 타 지역(0점)에서 전입하는 신혼부부는 서울에 5년 이상 거주(3점)한 황혼부부보다 2점이 뒤지는 구조다. SH에 따르면, 7월 공급에서 최고 연령이었던 58년생 A씨도 자녀가 없는 ‘신혼부부’로서 2순위로 당첨됐다.

장성한 자녀가 있는 중장년 신혼부부라면 아예 1순위에 지원해 거의 확정적으로 당첨이 가능하다. ‘자녀가 있는 신혼부부’라는 1순위 요건에서 자녀의 나이는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중장년 신혼부부는 청년 신혼부부와 경쟁했을 때, 청약 납입 횟수나 해당 지역 연속 거주 기간, 자녀 수 등 대부분의 항목에서 유리해진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청년 정책으로 홍보한 것과는 다른 결과라는 취지의 비판도 나온다. 올해부터 세 차례 공급된 신혼부부 매입임대주택은 서울시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서울시 신혼부부 주거지원 사업계획’에 따라 도입된 제도다. 당시 서울시는 "청년들이 결혼을 해서 자녀를 키우는 데 있어 집 문제 만큼은 서울시가 해결하겠다는 각오"라고 했었다.

그럼에도 실제 청년 신혼부부는 까다로운 소득 및 재산 요건 탓에 입주 신청을 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은 상황이다. 신혼부부 매입임대주택은 맞벌이 부부의 경우 소득 수준 90% 이하, 외벌이는 70% 이하여야 신청이 가능하다. 보증금과 임대료 경감을 받으려면 소득 수준이 50% 미만이어야 한다. 2인 가구로 환산하면 각각 394만원(90%), 306만원(70%), 218만원(50%)이다.

직장인 정모(26)씨는 "맞벌이로 400만원, 혹은 외벌이도 300만원도 간신히 버는 커플에게 우선순위를 줄 수는 있겠으나 이것이 커트라인이 되는 것은 문제"라며 "그정도 소득으로 거주할 수 있을 만큼 임대료가 싼 것도 아니다"고 했다.

실제로 서울 강동구 천호동 도원휴먼빌 전용면적 67.68㎡는 임대보증금 6345만원에 월 임대료가 82만6600원이었다. 외벌이 부부라면 소득의 3분의 1을 SH에 월세로 내야 하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11월 공급은 277가구를 모집해 276명이 청약하는데 그쳤다. 주택형 별로 보면 총 25개 중 16개에서 미달이 발생했다.

한편 보다 양질의 주거환경을 제공하는 ‘신혼부부 매입임대주택 II’는 내년부터 부부이기만 하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LH 관계자는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으로 구성된 유형 II에 대해 내년부터 자녀 수나 혼인 기간을 고려하지 않는 4순위를 신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매입단가가 높은 유형 II는 유형 I에 비해 보증금과 임대료가 높은 편으로, 신청 요건도 소득 수준이 100%(맞벌이는 120%) 이하로 느슨하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의 신혼부부 임대주택 제도는 목표한 실수요자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제도적 허점이 있다"면서 "연령 상한선을 두면서 소득이나 재산 기준 등도 완화해서 정말 집이 필요한 사회초년생 신혼부부에게 집중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