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선 운임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는 것과 달리 건화물(벌크)선과 탱커선 운임은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서 "해운업 모두가 호황인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나마 벌크선의 경우 향후 수요 증가에다 공급량 부족으로 업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반면 탱커선의 침체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팬오션 홈페이지 캡처

7일 업계에 따르면 컨테이너선 운임 강세는 계속되고 있다. 세계 컨테이너선 운임 지표인 상하이 컨테이너선 운임지수(SCFI)는 지난 4일 기준 2129.26을 기록했다. 2009년 10월 지수가 만들어진 이후 최고점이다. 9주 연속 상승하면서 매주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반면 광물과 곡물 등을 운반하는 벌크선 운임은 지난 10월 ‘반짝’ 반등 이후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 철강업계가 동절기 감산에 들어갔고, 환경 규제 영향으로 석탄의 해상 운송 수요도 크게 줄어든 영향이다. 벌크선 시황을 나타내는 발틱운임지수(BDI)는 지난 4일 1189로 지난해 같은 기간 1400대를 하회했다. 이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올해 연평균 BDI는 1075로 전년보다 20.5% 하락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류품을 운송하는 탱커선은 사정이 더 열악하다. 유가 급락으로 수입이 몰려 치솟았던 탱커선 운임은 지난 5월 산유국의 감산 합의 등과 맞물려 급락한 뒤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중동-중국 항로의 운임 지수를 나타내는 월드스케일(WS)은 계속해서 30을 밑돌고 있다. 용선료로 환산하면 하루 약 7000달러다. VLCC의 손익분기점이 약 3만 달러로 고려할 때 스팟운임이 손익분기점의 4분의 1 수준이다.

선박 별로 운임 상황이 다른 만큼 국내 선사들의 실적도 온도 차를 보이고 있다. 컨테이너선을 주력으로 하는 HMM(옛 현대상선)은 올해 2분기와 3분기 연속 영업이익을 냈다. 10년 만에 연간 흑자 가능성도 커졌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HMM이 올해 821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벌크선이 주력인 팬오션(028670)의 올해 3분기 매출은 6344억원으로 지난해보다 7%가량 줄었고, 대한해운(005880)역시 같은 기간 매출이 16% 감소한 2204억원에 그쳤다. 그나마 장기 운송계약 덕분에 이익은 양호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팬오션은 0.8% 감소하고, 대한해운은 오히려 1.5% 증가하는 등 선방했다.

그나마 업계에선 벌크선 운임은 내년부터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과 미국 모두 인프라 투자가 이어져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큰 반면, 벌크선 공급량은 1%가량 늘어나는데 그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석탄 수입 쿼터가 초기화되는 1월부터 반등이 있을 거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반면 탱커선 운임은 당장 회복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많다. 원유나 석유제품 등의 수요가 빠르게 회복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이 최근 계획보다 감산 폭을 덜 줄이기로 합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OPEC+는 당초 내년 1월부터 감산 규모를 600만 배럴까지 조정할 계획이었지만, 770만 배럴에서 720만 배럴로 낮추는 것으로 결론 냈다.

공급 문제도 있다. 현재 탱커선 10척 중 1척은 보관용으로 쓰이고 있다. 운행이 불가능한 선박을 제외한 수치다. 수요가 늘더라도 언제든지 보관용 선박을 운영하면 공급이 따라 오를 수 있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백신이 등장해서 경제활동이 다시 불붙더라도 원유 소비까지 온기가 전달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며 "유조선 불황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