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인천 계양구 박촌동 외곽 인천 테크노밸리 신도시 예정지. 인적이 드문 도로를 달리는 10여분 내내 보행로에는 ‘원스톱 서비스’, ‘세무상담 수수료 완전무료’ 같은 은행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표면에 두꺼운 헝겊이 덮인 비닐하우스와 영세한 화훼 농장, 옥수수와 감자 상자를 쌓아놓은 가족 농장만 가끔 보이는 이 지역에 시중은행이 현수막을 걸어놓은 이유는 테크노밸리에 풀리는 토지보상금 때문이다. 최근 하남 교산, 인천 계양, 남양주 왕숙 지구 토지보상 공고가 나붙었고, 고양 창릉과 부천 대장 지구도 내년 상반기 보상 계획이 공고될 예정이다.

4일 은행권에 따르면 이들 5개 지구 토지보상에 풀리는 돈만 약 30조원에 달한다. 3기 신도시와 서울을 연결하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등 사회간접자본 개발과 서울 구룡마을 등 도시 개발 사업 관련 보상비, 시흥과 용인 등 산업단지 보상비 등 올해 말부터 내년 사이 풀리는 토지보상금까지 합하면 약 5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들 가운데 제일 먼저 토지 보상에 들어가는 인천 계양 테크노밸리 일대에서는 이미 시중은행들이 대거 나서 눈에 잘보이는 높이에 현수막을 걸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장에서 도로 하나만 건너면 나오는 서운동과 병방동의 빈 상업시설에는 ‘은행 입점 확정’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었다. 인근의 한 새마을금고는 ‘토지보상 관련 상담만 받아도 선물을 드린다’며 비누와 수건이 들어간 목욕용품 세트를 박스째 쌓아 놓고 있었다.

시중은행들은 앞서 영종도와 판교 등에서 토지보상금이 대거 풀리는 상황을 목격한 바 있다. 은행은 갑작스럽게 목돈이 생긴 토지보상금 수령자가 늘어나면 수신을 늘리고 부가가치가 높은 WM(자산 관리) 회원을 확보할 좋은 기회를 얻는다. 특히 요즘처럼 금리가 낮아 예금 소비자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목돈을 가진 새 소비자가 잠깐이라도 자금을 예치해도 이득을 볼 수 있다.

경기 하남교산신도시가 들어설 천현동, 교산동, 춘공동 일대 전경.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정 인원에 대규모 보상금이 한꺼번에 지급되는 만큼 지점 이익과 수익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며 "은행 예금 이자율이 연 1% 남짓한 상황을 고려하면 거액을 쥔 토지보상금 수령자들을 유치하면 장기적으로 투자 상품으로 거래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규모가 큰 시중은행들은 별도로 토지 보상 전담조직을 꾸리거나, WM 서비스 가운데 토지 보상 컨설팅 서비스를 강화해 차별화에 나섰다. 키워드는 ‘원스톱’이다. 은행마다 변호사와 세무사, 회계사, 감정평가사 같은 전문 인력을 최대한 끌어모아 전방위적인 서비스를 한번에 제공한다.

전통적으로 토지보상에 강세를 보였던 NH농협은행은 올해 토지 보상 상담 전담조직 ‘토지 보상 서포터즈’를 출범했다. 보상 협의부터 매각 자금을 어떤 식으로 운용할지, 자식에게 상속하거나 증여할 경우 세금 문제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맞춤형으로 한번에 컨설팅을 해주겠다는 취지다. 하나은행도 전문가 자문단을 중심으로 ‘하나 토지보상 드림팀’을 만들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부문 수석위원은 "부동산으로 돈을 벌어본 분들은 다시 부동산에 투자하길 원하는 경우가 많아 보상받는 곳 인근 상가나 가까운 서울 지역 상가를 알아봐 달라는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자산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PWM센터를 통해 ‘신한은행 전문가와 함께하는 토지보상 우대서비스’를 제공한다. 5억원이 넘는 토지 보상금을 3개월 이상 예치하면 양도소득세 신고를 대행해주고, 양도가액이 10억원이 넘으면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식이다. 국민은행은 각 영업점에서 토지 보상 상담 신청 시 본점 전문가 인력이 직접 상담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보다 규모가 작은 협동조합이나 일부 지방은행은 토지보상을 받은 소비자를 직접 찾아가 만나는 ‘발로 뛰는 영업’을 기획했다. 대형 은행만큼 인력 동원은 어렵지만, 그동안 지역사회에서 쌓은 관계를 이용해 각개격파를 하는 전략이다.

수협은 그동안 영업점별로 알아서 영업을 나서면 본부에서 일부 지원하는 형태로 영업을 펼쳤지만, 이번에는 지난달 취임한 김진균 신임 행장이 직접 나서 토지보상 전담팀을 만들었다. 부산 지역 개발 수요를 노리는 BNK부산은행은 "부산에서는 송도 지역에 토지보상이 들어갈 예정인데, 보상금을 받는 사람들 가운데 금융 지식이 부족한 장년층이 많아 자문 수요가 상당하다"며 "은행 WM사업부 소속 세무사가 직접 찾아가 상담을 해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저금리 탓에 예적금으로 은행에 돈을 넣어 두려는 수요가 기대만큼 많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전처럼 현격한 우대금리를 제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얼마나 자금을 유치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분석이다.

한 시중은행 PB업무 담당자는 "이전 사례로 볼 때 보통 토지보상금으로 풀린 자금 대부분은 은행에 맡겨놓기 보다 다시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파격적인 금리를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재산을 두고 다투는 가족 간 송사 관련 법률 상담이나 상속, 증여에 대비한 유언장 작성 서비스 같은 실질적인 컨설팅을 많이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