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직권남용죄(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라는 부메랑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몰아세우기 위해 직권남용죄 카드를 꺼냈지만 법무부 감찰위원회와 서울행정법원 심리를 거치면서 오히려 추 장관 측의 직권남용 혐의가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죄다. 형법 제7장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죄' 중 제123조가 직권남용죄를 규정하고 있다. 정권 교체기에 어김없이 등장해 이전 정권 인사들을 단죄하는 '전가의 보도'처럼 쓰여왔다. 윤 총장도 과거 전직 대통령과 대법원장을 직권남용죄 혐의로 구속한 적이 있다.
추 장관은 윤 총장에 대한 직무배제와 징계청구를 지시하면서 여섯 가지 혐의를 제시했다. 그중 가장 논란이 된 건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이 작성한 '재판부 분석 문건'이었다. 추 장관은 이 문건을 '판사 사찰'의 증거로 몰아가며 윤 총장이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에 판사 사찰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윤 총장은 공소유지에 필요한 정당한 범위의 업무 지시였다고 맞섰다.
그런데 윤 총장 직무배제와 징계의 적법성을 놓고 법무부 감찰위원회와 행정법원 심리가 진행되면서 오히려 추 장관 측의 직권남용 혐의가 드러나고 있다. 직권남용으로 윤 총장을 때리려던 추 장관의 계획이 틀어지면서 오히려 공수가 바뀌고 있다.
◇秋 지시로 감찰관 패싱… "직권남용죄 시인한 꼴"
지난 1일 법무부 감찰위원회에는 법무부 감찰관실 소속 검사들이 출석했다. 이 과정에서 윤 총장에 대한 감찰을 주도한 박은정 감찰담당관의 직권남용 혐의가 상당 부분 드러났다는 게 감찰위에 참여한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박 감찰담당관은 윤 총장에 대한 감찰을 진행하면서 자신의 직속 상관인 류혁 법무부 감찰관에게는 관련 내용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류 감찰관은 윤 총장에 대한 직무배제 발표가 나오기 하루 전까지도 감찰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에 대해 박 감찰담당관은 "추 장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는데, 이 해명 자체가 추 장관의 직권남용죄를 시인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 감찰규정은 '감찰담당직원이 사정활동을 통하여 수집한 자료는 신속히 감찰관에게 서면으로 보고하여야 한다'(제11조 1항)고 규정하고 있다. 박 감찰담당관이 감찰을 진행했다면 이를 류 감찰관에게 서면으로 보고했어야 하는데, 윤 총장에 대한 감찰에서는 이 과정이 통째로 생략된 것이다.
또 감찰규정에는 '감찰결과의 언론공표여부는 법무부장관이 법무부 감찰위원회 또는 감찰관의 의견 등을 종합하여 최종 결정한다'(제22조 4항)고 돼 있는데 추 장관은 이 과정도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감찰위원회는 추 장관의 브리핑 이후에야 사실을 확인했고, 류 감찰관도 지난 1일 감찰위에서 "결과를 보고받지 못했기 때문에 수사의뢰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국군 사이버사령부 댓글공작 수사를 방해한 혐의에 대해 당시 재판부는 김 전 장관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는 목적으로 수사 지시를 내렸다며 부당한 직권 행사로 봤다"며 "감찰관에 대한 보고 규정을 무시한 추 장관의 지시도 마찬가지로 부당한 직권의 행사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감찰위에서는 '재판부 분석 문건'의 내용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내부 보고서를 작성했다가 해당 내용이 삭제됐다고 폭로한 이정화 검사와 박 감찰담당관의 대질도 있었다. 박 감찰담당관은 "내가 삭제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이 검사는 면전에서 "박 감찰담당관이 삭제를 지시해서 내가 삭제했다"고 반박했다. 보고서 내용을 삭제 지시한 것 역시 직권을 남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시각이 많다.
◇"서울행정법원 판단이 秋 직권남용 증명해준 셈"
추 장관이 대검 감찰부에 직접 지시를 내린 것도 직권남용죄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검찰청법은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만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추 장관은 윤 총장을 건너뛰고 대검 감찰부에 직접 감찰을 지시해 왔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대검 감찰부장은 검찰공무원의 범죄나 비위 발견 시, 내용이 경미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체없이 장관에게 이를 보고해야 한다'는 감찰규정을 근거로 들고 있지만, 검찰총장 산하기관인 대검 감찰부에 법무부 장관이 직접 지시할 수 있는 근거는 아니라는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무엇보다 윤 총장의 손을 들어준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조미연 부장판사)의 판단이 결정적이다. 법조계에선 행정법원이 추 장관의 직권남용 혐의를 증명해준거나 마찬가지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결정문을 보면 "검사의 수사와 공소의 제기 및 유지 권한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 특히 검찰청이 소속된 법무부의 장관으로부터도 최대한 간섭받지 않고 행사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고 명시했다. 법무부 장관이 검사에 대해 갖는 지휘·감독권은 일반적인 행정기관에 대한 지휘·감독권과 다르게 '제한'을 두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1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직권남용 행위의 대상이 되는 상대방인 공무원인 경우에는 관계 법령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추 장관과 박 감찰담당관의 지시가 직권남용죄에 해당하는지는 검찰청법과 검찰 관련 규정을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행정법원의 판단을 두고 '직권남용 혐의가 충분하다'고 해석할 소지가 충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추 장관과 박 감찰담당관은 직권남용죄로 고발당한 상태다. 시민단체인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법세련)는 지난달 30일 추 장관과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 박 감찰담당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고, 서울서부지검은 이 사건을 형사1부에 배당해 수사에 착수했다. 변호사 단체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도 지난 1일 추 장관을 검찰청법 위반·직권남용·공문서 변조 등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한변의 김태훈 회장(변호사)은 "검찰청법 8조는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규정돼 있는데, 추미애는 총장을 건너뛰고 대검 감찰부에 직접 지시해 검찰청법 제8조 위반에 해당한다"며 "추미애 등은 부당한 직권남용을 행사하면서 이정화 검사의 '판사 사찰 의혹은 죄가 안된다'는 보고서의 내용을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공문서 변조"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