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등배정에 유리한 자녀명의 계좌 관심 높아져
자녀 없거나 미혼자에게 불리하단 지적도

직장인 박모(41)씨는 지난 19일 오후 회사 근처 하나금융투자 영업점을 찾아 두 아들 명의의 계좌를 만들었다.

전날(18일) 금융위원회가 개인투자자들에게 배정되는 공모주 물량의 절반 이상을 최소청약증거금을 넣은 모든 투자자들에게 똑같이 배정(균등방식)하겠다는 내용의 ‘기업공개(IPO) 공모주 일반청약자 참여기회 확대방안’을 발표했다. 이 정책에 따르면 균등방식으로 배정되는 공모주를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는 자녀 명의의 계좌가 많은 게 유리하다. 박씨도 정부의 정책을 듣고 자녀 명의의 증권계좌를 만든 것이다.

그는 "평소에도 공모주 투자를 종종 했는데 정부가 균등방식으로 공모주를 나눠주겠다고 해서 일단 하나금융투자 계좌를 만들었다"며 "아들 2명의 명의로 기업공개(IPO) 주관을 많이하는 증권사 10여곳에 계좌를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가 균등방식을 포함한 개인투자자의 공모주 확대방안을 발표한 19일부터 박씨처럼 자녀 명의의 계좌를 만들려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카카오게임즈, SK바이오팜 등 기업들에 대한 공모주 투자가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면서 미성년 자녀 명의로 계좌를 만들어 균등배정에서 더 많은 공모주를 받으려는 것이다.

9월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영업점에서 투자자들이 카카오게임즈 공모주 청약 신청 및 상담을 하고 있다.

미성년 자녀 명의 계좌는 정부가 균등방식을 발표하기 전부터 공모주 투자자들에게 인기있는 방식이었다. 업계에서는 이들을 ‘공모주 아줌마 부대’등으로 부른다. 공모주 청약은 보통 온라인으로 증권사 홈페이지 등에서 비대면으로 할 수 있다. 하지만 미성년 자녀 계좌로 청약을 하기 위해서는 가족관계증명서, 부모의 신분증과 도장, 주민등록등본 등 관련서류를 갖고 증권사 영업점을 방문해야한다. 이 때문에 자녀 명의로 청약을 하려는 공모주 투자자들이 청약일에 증권사 영업점에 줄을 서는 경우가 많다.

업계 관계자는 "인기 공모주 청약날이면 어김없이 영업점에 줄을 늘어서고 자녀 명의 통장을 여러개씩 가져와서 청약을 넣는 분들이 많았다. 주로 중년의 여성분들이라 보통 공모주 아줌마 부대라고 하기도 한다"고 했다.

주부 오모(39)씨는 "최소청약증거금만 있으면 공모주를 똑같이 나눠준다는 말에 남편과 아이 명의 계좌를 만드는 일을 의논하고 있다"고 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정부의 균등배정방식이 사실상 차명계좌를 유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자녀 명의 계좌도 사실상 차명계좌인데 이런 편법으로 공모청약을 넣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정부가 이런 일을 조장하는 정책을 쓰는 것 같다"고 했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아직은 자녀 명의 계좌수가 급증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대형 청약 이벤트가 생기면 그 직전에 자녀 명의를 개설하려는 투자자들이 늘 것 같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자녀가 없는 사람들에게 불리한 조건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자녀가 없는 기혼자 홍모(43)씨는 "공모주도 아파트처럼 자녀가 많을수록 더 많이 받아갈 수 있는 게 좀 씁쓸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