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전자거래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발의된 것을 두고 전자거래 플랫폼을 준비하던 프롭테크 기업들이 들썩이고 있다. 정부가 전자거래 플랫폼을 독점·통제할 가능성이 있다는 걱정이 생겼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보다 원활한 혁신을 위해 산업 기반 조성에 먼저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조선DB

18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은 지난 6일 ‘부동산거래 및 부동산서비스산업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안에는 ‘부동산거래분석원’ 설립 외에도 전·월세 신고제와 전자계약 의무화 조항 등이 들어가 있다.

언뜻 보기엔 부동산 전자거래 사업에 본격 진출하려던 프롭테크들에게 호재로 작용할 법안으로 보인다. 하지만 프롭테크들은 더 신중해진 분위기다. 법안 내용의 해석에 따라 오히려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프롭테크 기업들의 이목이 쏠린 것은 법안 제6조의 전자계약시스템 조항과 제9조의 전자계약 체결의무 조항이다. 법안은 국토교통부장관이 부동산등의 거래계약에 관한 정보시스템을 구축·운영하도록 하고, △‘공공주택 특별법’에 따른 공공주택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민간임대주택 △토지·주택 전매행위가 제한된 지역 △토지거래허가구역에 있는 부동산 등의 부동산 거래계약은 반드시 전자계약 방식으로 체결하도록 했다.

프롭테크들은 법 조항의 해석상 법에서 특정한 사례의 경우 국토부가 마련한 전자계약시스템으로만 거래해야 하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체 개발한 플랫폼으로 부동산 전자거래 시장에 진출하려던 프롭테크들에게는 이 같은 해석이 확정될 경우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국토부는 이미 한국감정원에 위탁해 지난 2016년부터 부동산거래 전자계약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5년간의 활용 실적을 보면 민망한 수준이다. 더불어민주당 조오섭 의원에 따르면 부동산거래 전자계약제도 도입 이후 5년 동안 매매와 전·월세 등 부동산 거래(1264만2464건) 중 전자계약을 체결한 사례는 1.24%(15만6864건)에 불과했다.

부동산 업계에서 국토부 전자계약제 이용을 기피하는 것은 불편하기 때문이다. 양천구의 한 공인중개업 관계자는 "국토부 시스템을 한번 이용해보려고 했는데, 전자계약용 공인인증서를 별도로 발급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 계약서를 수정하는 경우 공인중개사·매도인·매수인 3자가 모두 모여 본인인증을 해야 했다"면서 "진이 다 빠져서 다음부터는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또 소득 노출에 대한 임대인과 중개사들의 불안감 등도 국토부 전자계약제를 기피하는 이유로 꼽힌다.

프롭테크들은 국토부 시스템의 단점을 개선한 전자계약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다방·디스코·모두싸인 등은 간단한 인증절차로 사용자들의 편의성을 높일 원스톱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국토부가 일부라도 국토부 전자계약시스템을 강제할 경우 플랫폼 개발·시장 진출의 유인이 크게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법안은 당·정 간의 협의 끝에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진성준 의원실 관계자는 "국토부 등 관계부처와 어느 정도 교감 끝에 나온 법안"이라고 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 역시 "법안을 가능하면 연내에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법안이 발의된 직후인 지난 9일에는 조달청에 ‘2021년 부동산거래 전자계약시스템 운영관리’ 구매 입찰 긴급공고가 게시되기도 했다.

진 의원실 관계자는 "전자거래를 전면적으로 획일화하기보다는 부동산 시장을 부분적·소극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근거 법률의 성격이 강하다"고 덧붙였다.

이영준 모두싸인 대표는 "법안은 특정 거래에 한정하겠다고 하지만, 정부·여당의 움직임을 보면 결국 부동산 실거래 전반을 정부가 통제하려는 것 같다는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면서 "전체 파이가 언제든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면 혁신에 나서려는 민간기업으로서는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경쟁하지 않으면 서비스 개선이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통제보다는 민간과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구상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전자거래 의무화 자체는 정보의 투명화와 수요자 편의성 등 모든 면에서 바람직한 일"이라면서도 "법제로 먼저 한계와 틀을 정하기보다는 새로운 시장의 환경부터 조성하는 데 집중해야 산업의 혁신도 더 촉진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토부가 지정하는 업체’도 전자거래에 참여가 가능하다는 조항만 추가되더라도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