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윈, 10월 24일 공개연설서 "中 은행은 '전당포'" 맹비난
시진핑, 발언 내용 보고 받고 '격노'…IPO 중단 지시
자신의 통치는 물론 공산당 안정성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
열흘 만에 속전속결로 마윈 소환·IPO 중단·규제강화 발표
앤트그룹 급성장 우려하던 공산당에 '규제강화' 찬스 됐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마윈의 공개 발언에 '격노'해 앤트그룹의 기업공개(IPO) 중단을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12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문제에 정통한 중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시 주석이 마윈의 10월 24일 연설 내용을 보고 받은 뒤 규제당국에 앤트그룹의 IPO를 중단 시키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2020년 9월 4일(현지 시각) 중국 국제 서비스 무역 페어에서 연설하는 시진핑 국가주석.

전자결제 앱 알리페이로 유명한 중국의 핀테크 대기업 앤트그룹은 5일 상하이, 홍콩 증시에 상장할 예정이었으나 이틀 전 갑작스럽게 모든 절차가 중단됐다.

중국 금융당국은 상장을 사흘 앞두고 마윈과 징셴둥 회장 등 고위 임원을 소환한 뒤 다음날 "뒤늦게 재조사가 필요할 수 있는 문제를 발견했다"며 상장을 중단시켰다.

중국 금융당국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앤트그룹의 동시 상장을 허가했기 때문에 입장을 180도 바꾼 배경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됐다. 일각에서 마윈이 규제당국을 비판한 것이 문제가 됐다는 설이 제기됐지만 정부 관계자를 인용한 보도가 나온건 이번이 처음이다.

문제가 된 마윈의 발언은 상하이에서 열린 한 금융 포럼에서 나왔다. 마윈은 "성공이 나에게서 올 필요는 없다"는 시 주석의 말을 인용하면서 혁신을 통해 중국의 금융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21분 간 이어진 연설에서 중국 금융당국의 규제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마윈은 "중국 금융시스템에는 시스템 위기가 없다. 중국 금융에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을 '전당포'에 비유하며 "리스크에만 집중하고 발전을 간과해, 많은 기업가들을 어렵게 했다"고도 했다.

이 자리에는 중국 부주석 왕치산, 인민은행장 이강을 비롯해 국영은행 고위 임원들이 있었다.

시 주석은 마윈의 발언을 자신의 통치와 공산당이 구축해놓은 안정성에 도전하는 행위라고 여겼다고 WSJ는 전했다. 공산당 고위 관료들도 매우 분노했고 오랫동안 금융 규제 강화를 요구했던 이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앤트그룹의 상장 중단까지 단 열흘이 걸렸다. 마윈의 발언으로부터 일주일 뒤인 10월 31일 류허 부총리가 이끄는 규제당국이 회의를 소집해 마윈 문제를 논의했다. 이틀 뒤 마윈이 소환됐고 앤트그룹에 대한 규제 강화 방안 초안이 발표 됐다. 그 다음날 상장이 중단 됐다.

중국 앤트그룹 설립자 마윈.

정부가 발표한 규제 강화 방안 초안에는 앤트그룹을 타깃으로 한 강력한 규제가 새로 들어갔다고 이 문제에 정통한 중국 관료들은 말했다.

소액 대출 업체들은 은행으로부터 대출금을 조달할 때 최소 30%의 자본금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규제가 현실화 되면 800억위안(13조5000억원)의 현금을 보유한 앤트그룹은 5400억위안(91조6000억원)의 자본금을 쌓아야 한다.

앤트그룹이 급격하게 덩치를 불리는 것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봤던 중국 공산당에게 마윈의 발언은 규제 고삐를 조이는 계기가 됐다. 앤트그룹의 알리페이는 중국 인구 70%가 사용하고 있다. 현재 중소기업 2000만개와 개인 5억명에게 대출을 해주고 있고 중국에서 가장 큰 뮤추얼 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앤트그룹을 직접 타깃으로 하지 못한 건 이 회사에 자금을 지원한 고위 정치인의 측근과 기업인들이 강력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라고 WSJ는 전했다. 이들 중엔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손자인 앨빈 장이 파트너로 있는 사모펀드와 중국 연금펀드, 중국개발은행, 중국국제자본공사 등이 포함돼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중국 총괄이었던 에스워 프라사드 미 코넬대 교수는 "앤트그룹과 중국 공산당은 매우 복잡한 관계였다"며 "앤트그룹은 더이상 정부기관이 통제하기에 지나치게 크거나 영향력 있는 회사로 비춰지지 않을 것이며, 마윈의 연설이 정부가 행동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자수성가한 기업인의 표본이었던 마윈은 말 한번 잘못 했다가 인생 최대 위기를 맞닥뜨리게 됐다. 그는 앤트그룹 IPO가 중단된 이후 공개석상에 나서지도,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발언도 내놓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앤트그룹이 IPO를 재개하더라도 규제 강화 여파로 이전에 기대했던 것 만큼 많은 자금을 모으기는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