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영·프·독 이어 한·일·호 정상 통화
"동맹 강화" "인도·태평양" 공통 언급
'反中 강조' 해석 나오자 靑 진화 나서
'인도·태평양 지역'은 지리적 표현이라는 게 靑 주장
美, 中 팽창에 태평양사령부도 '인도·태평양사령부'로 개명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2일 한국, 일본, 호주 정상과 잇달아 정상통화를 했다. 키워드는 '인도·태평양'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통화를 하며 공통적으로 "인도·태평양의 지역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발언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추진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떠올리는 표현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청와대가 진화에 나섰다. "'인도·태평양'은 해당 지역을 지리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아내 질 바이든 여사가 미국 재향군인의 날인 11일(현지 시각)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국전쟁 기념공원을 찾아 한국전쟁 기념비에 헌화하고 참배하고 있다.

◇한·일·호주에 "안전하고 번영하는 인도·태평양"

청와대에 따르면 이날 정상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해 바이든 당선인과 긴밀히 소통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에 바이든 당선인은 "한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번영에 있어 린치핀(linchpin·핵심축)"이라며 "한국에 대한 방위공약을 확고히 유지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스가 일본 총리와의 통화에서도 "미일동맹 강화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향해 협력해나갈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하며 '인도·태평양'을 강조했다. 스가 총리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의 실현을 향해 "함께 연대해 나가고 싶다"고 했다. 또 양 정상은 번영하고 안전한 인도·태평양 지역의 주춧돌(conerstone·礎石)으로서 미일동맹 강화 등에 대해 대화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1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정상통화를 한 뒤 기자들에게 통화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지난 2016년 8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아프리카개발회의(TICAD) 때 제안한 것이다. 태평양에서부터 페르시아만에 이르는 인도·태평양 지역을 "자유와 법치·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장(場)"으로 규정하고, 관련 국가들이 국제규범에 근거한 인프라 정비와 무역·투자, 해양안보 분야 등의 협력을 추진해나가자는 내용이다. 아사히신문은 "미일 동맹을 바탕으로 시장경제·민주주의 등의 공통 가치를 가진 인도·호주 등과 연계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세력을 넓히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모리슨 호주 총리와의 통화에서도 호주와의 동맹 강화 의지를 밝혔다. 또 "안전하고 번영하는 인도·태평양 지역 유지를 포함한 많은 공동 과제에 관해 긴밀히 협력하길 고대한다"고 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12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돌아온 오바마의 '린치핀'과 '코너스톤'

바이든 당선인은 영국, 독일, 프랑스 아이랜드 등 유럽 정상과 통화했다. 그는 "미국이 돌아왔다"며 미국과 유럽의 동맹 강화에 대한 의지를 강조했다. 이날 한국과 일본, 호주 정상과 통화도 이런 지역적 고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훼손된 동맹 관계를 재건하겠다는 것이다.

이 점을 엿볼 수 있는 단어가 '린치핀(한국)'과 '코너스톤(일본)'이다. 린치핀과 코너스톤 모두 외교관계에서 '필수 동반자'를 가리키는 표현인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표현할 때 두 단어를 구분해서 썼다. 원래 '린치핀'은 미일동맹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는데,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0년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한미동맹을 가리키며 이 표현을 썼다. 일본을 향해 코너스톤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2012년 아베 총리에게 보낸 축하성명 때부터다.

둘 사이에 경중(輕重) 차이는 없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역할의 차이는 있다. 린치핀은 수레 등의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는 핀으로, 번역을 할 때는 '핵심축'이라고 한다. 린치핀이 빠지면 바퀴 전체가 떨어져 나가 마차가 무너질 수 있다. 주춧돌은 기둥 밑에 놓는 것으로, 하중을 받친다.

바이든 당선인은 린치핀과 코너스톤이란 표현을 쓰면서도 '인도·태평양'이라는 지역을 설정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통적 동맹관을 드러내면서도,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추진하던 '인도·태평양 전략'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날 바이든 당선인이 통화한 일본과 호주는 '반중 연대'로 불리는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에 가입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 관저 접견실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첫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靑 "'인도·태평양'은 지리적 표현" 진화

그러나 청와대는 이 같은 해석을 진화하고 나섰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바이든 당선인이 언급한 '인도 태평양'은 해당 지역을 지리적으로 표현한 것이지 '인도·태평양 전략'과는 무관하다"며 "그런 의미로 언급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또 "'반중전선'을 강조했다는 일부 보도 또한 사실이 아니다"라며 "바이든 당선인은 전혀 중국과 관련한 발언을 하지 않았고, 그런 뉘앙스의 언급도 없었다"고 했다. '린치핀'에 대해서도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 이외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와 함께 바이든 당선인 인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전하는 통화 내용에서도 "인도·태평양 지역(the Indo-Pacific region)이라고 표현했다"고 전했다. 바이든 인수위에서는 이날 통화에 대해 "차기 대통령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번영의 린치핀(핵심축)으로 한미 동맹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문 대통령에게 축하를 전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바이든 당선인이 사용한 인도·태평양을 지리적으로만 한정해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은 중국의 팽창을 경계하면서 2018년 5월, 70여년의 역사를 가진 태평양사령부 이름을 '인도·태평양사령부'로 변경했다. 인도·태평양사령부는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등을 관장한다 이는 인도와 일본, 호주 등과 함께 중국을 포위해 세력 확장을 차단한다는 전략이 담긴 명칭으로 해석되고 있다.

미 외교전문지 더디플로맷은 지난해 7월 '인도·태평양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지도를 해석하는 방법에는 지리적·정치적 경계를 초월하는 공간을 상상하는 것도 있다"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은 최근 유행한 정신적인 지도 중 하나"라고 했다. 이어 "인도·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상상력이 떠오르는 것은 이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가 넓어지고 있고, 미국 동맹 체제가 상대적으로 쇠퇴와 부활을 위한 노력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