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대란'으로 수출업체들의 물류 수출에 어려움이 커진데 대해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과 국적 컨테이너선사 대표들이 11일 만나 대책을 논의했다. 하지만 선박 대란이 일어난지 두 달이 지났는데 너무 늦게 만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부 화주들은 "지난 9월부터 미국 서안으로 가는 선박 부족 문제가 불거졌다"면서 "초반에는 오히려 (산업은행이 최대주주인) HMM의 실적이 좋아질 것이라며 긍정적이라는 태도만 취했었다. 수출 업계의 어려움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해운업계 관계자는 "내년에도 선박 공급보다 수요가 더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며 "일회성 간담회가 아닌 중장기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문 장관과 HMM(옛 현대상선), SM상선, 흥아해운(003280)등 15개 컨테이너선사 대표들은 이날 오후 3시 30분 서울 여의도 해운빌딩에서 '수출기업 애로 관련 정기해운선사 간담회'를 열었다. 배재훈 HMM 사장과 박기훈 SM상선 대표 등이 참석했다

문 장관은 이날 "미주항로에서 시작된 물동량 증가와 운임 상승이 유럽, 동남아 등 다른 시장까지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해운업계가 업계 이익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를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비공개 회의는 약 50분가량 진행됐다. 한국선주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컨테이너선사들은 △미주 노선에 추가 선박 투입 △컨테이너 박스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한 회전율 강화 △화주와 상생 강조 등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진행하면서 초대형선박을 수주했기 때문에 그나마 지금 사정이 나은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문 장관이 "마른 수건 짜내는 심정으로 수출업체들의 요청에 부응해달라"고 당부하는 것으로 회의는 마무리됐다.

수출업계는 대안이 없다는 이야기와 다름 없다고 지적한다. 중소수출업체 관계자는 "(회의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며 "그래도 긴급한 상황에 모여서 정부를 칭찬하는 말을 나눌 줄은 몰랐다"고 했다.

◇ 미주노선 운임 7월에 이미 3000달러 넘어… "이제야 움직이나"

사실상 빈손으로 간담회가 끝난데다가 수출업체들은 그 시점을 두고도 불만을 토로했다. 이미 미국 내 소비가 큰 블랙프라이데이와 추수감사절 등의 성수기 시즌은 배가 부족해 놓쳤는데 뒤늦게 일회성 회의를 열었다는 것이다.

수출기업 관계자는 "배가 없어서 손해를 감수하면서 비행기로 물건을 나른다는 이야기까지 나온지 한달이 지났다"며 "상황이 이 정도로 심각해져야 해양수산부가 움직인다는 게 답답하다"고 했다.

실제로 세계 컨테이너선 운임 지표인 상하이 컨테이너선 운임지수(SCFI)가 1100선을 돌파한 것은 지난 7월 31일이다. 국내 수출기업들의 같은날 아시아~미국 서안 노선의 운임은 FEU(12m 컨테이너 1개)당 3167달러로 1주일만에 463달러 뛰었다. 이때부터 고운임과 선박 부족 문제는 예견됐던 셈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배가 없어서 수출을 못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HMM은 지난 8월부터 부산항~미국 LA항 노선에 매달 한두척의 컨테이너선을 임시 투입했다. 물동량 상황에 따라 오는 2월까지 이같은 임시 투입을 이어갈 계획이다. 정기 노선에도 연말까지 6차례에 걸쳐 각 350TEU 만큼의 선적 공간을 할애해 국내 중소수출기업의 물건을 우선 싣기로 했다. SM상선도 12월부터 내년 1월까지 미주항로에 3000TEU급 컨테이너선 1척을 임시 투입하기로 했다.

해양수산부는 임시 조치로 지난 9월에는 전년대비 증가한 물동량 1만514TEU 가운데 약 40%(4160TEU)를, 10월에는 지난해 운송한 물동량 6만5992TEU의 12%(7,980TEU)를 추가로 처리했다고 밝혔다. 해양수산부는 임시 투입으로 선박 대란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는 상황이다.

◇수출업계는 "이것만으로 안돼"… 문 장관, 前정부 책임으로 떠넘기는 발언도

하지만 이같은 방식은 중장기 대책이 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내년에도 선박 공급보다 물량 수요가 3% 가량 많을 것으로 내다봤다. 수요가 3%만 많다는 것은 언뜻 보기엔 그리 커보이지 않지만, 수급불균형이 한번 깨지면 운임이 어느 정도로 튈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수출기업들은 내년에도 고운임과 선박 부족 문제라는 이중고를 겪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 20여개의 글로벌 대형선사가 10여개로 재편되고 3대 얼라이언스 체제가 되면서 시장 지배력은 커졌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원 연구원은 "해운사 간 M&A(인수합병)가 정리되면서 과거보다 경쟁하는 강도가 약해졌다"며 "결과적으로 해운사들의 시장 지배력이 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우리나라 국적 선사의 규모 성장은 더디다. 국적 선사의 선복량(적재 능력)은 올해 10월 기준 77만TEU(20피트 컨테이너 1개)로 한진해운이 파산하기 전인 2016년 105만TEU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같은 기간 아시아~미주 시장 점유율도 11%에서 3%대까지 하락했다. 글로벌 대형선사들이 시장을 주도하는데 한진해운 파산으로 우리 국적선사들의 목소리는 줄어든 셈이다.

이날 간담회에서 문 장관은 전 정부의 책임이라는 듯한 발언도 했다. 그는 "최근의 해운 운임 상승과 국내 수출기업의 선적 공간 부족 문제는 코로나19 이후 미국 내 경기부양에 따른 상품 수요 증가가 직접적인 원인이기는 하나, 2017년 2월 발생한 한진해운 파산 이후 국적선사의 선복 공급량이 감소한 것이 문제를 악화시킨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책임을 떠넘기기보다 대책 마련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반응을 내비치고 있다.

지난달 31일긴급 투입한 컨테이너선 'HMM 프레스티지호'가 화물을 싣고 부산항에서 출항하고 있다.

◇ 결국 답은 '선복량' 확대…"비용 누가 부담하나"

국적 선사의 선복량을 늘려야 '선박 대란'을 해결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단기적으로 배를 빌려오고, 중장기적으로도 국적 선사의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운업계에선 지금과 같은 상황이 언제까지 갈지 장담하기 어렵다며 쉽게 선복량을 늘리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언제든지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지면 용선에 따른 비용이 손해로 잡힐 수 있다는 것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로 사실상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무턱대고 선복량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며 "만약 다시 저운임 구조가 됐을 때 그 비용은 모두 해운사가 떠안게 된다"고 했다.

선장 출신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출이 중요한 나라에서 당장 수출에 필요한 배가 없는 상황이라면 정부나 국회에서 나서서 추가 선박 투입을 지원하고 유도해야 한다"며 "결과적으로 고운임으로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줄고 납기를 맞추지 못해 신뢰를 잃으면 우리나라 산업계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장기적으로 현재 북미항로 수출입 화물의 우리 국적 선사의 운송 비중을 현재 25%에서 50% 이상으로 올려주기 위한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형 화주는 물론이고 중소형 화주와 국적선사의 장기운송계약 체결을 민간에서 제도화해 안정적인 운송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