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전력 강점에 성능·호환성 개선된 ARM 아키텍처로 만든 'M1'
퀄컴 업고도 틈새시장 공략 머문 ARM 진영, 인텔 주도 PC 프로세서 시장 흔든다

애플을 등에 업은 ARM 진영이 인텔·AMD가 장악하고 있는 PC 칩 시장을 흔들 수 있을까.

애플이 직접 만든 PC용 프로세서 'M1'이 탑재된 신형 노트북·데스크톱 PC '맥'이 한국 시각으로 11일 처음 공개됐다. 13인치 맥북 프로, 맥북 에어와 함께 모니터를 탑재하지 않은 보급형 데스크톱 컴퓨터 맥 미니 3종이었다.

최대 반도체 설계전문회사 ARM의 기술에 애플의 설계력을 더해 완성된 M1은 전작 대비 CPU(중앙처리장치)는 최대 3.5배, GPU(그래픽처리장치)는 최대 6배, 머신러닝(기계학습) 기능은 최대 15배 빠르며, 배터리 수명은 2배 이상 길어졌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칩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의 최신 5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공정에서 전량 생산됐다.

애플이 독자적으로 만든 첫번째 PC 프로세서 'M1'이 탑재된 맥 3종을 공개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M1은 애플이 만든 칩 중 가장 강력하다"며 "맥 운영체제(OS)인 '빅서'와 결합해 그 어느 때보다 최고의 성능, 놀라운 배터리 수명을 선사하며, 사용자들이 더 많은 앱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은 앞으로 2년에 걸쳐 맥 전체에 자체 칩을 탑재한다는 계획이다.

◇ 애플 중심 생태계로 2년간의 전환, 첫발

현재 PC CPU(중앙처리장치) 기술 기반은 인텔의 x86 아키텍처(하드웨어·소프트웨어 등 컴퓨터 시스템의 설계방식)가 장악하고 있다. 오랜 기간에 걸쳐 PC용 소프트웨어에 최적화돼 왔기 때문이다. PC CPU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인텔·AMD는 물론, 애플도 2006년부터 이 아키텍처를 활용한 인텔 CPU를 써 왔다.

애플이 이런 14년 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ARM을 활용해 칩 독립에 나서는 이유는 인텔에 종속된 생태계를 탈피해 PC·모바일간 생태계를 좀 더 유기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다. 자체 프로세서를 사용하면 신제품 스케줄, OS(운영체제) 같은 소프트웨어와 최적화, 제품 설계 전략 등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 개발자들은 PC용, 모바일용 따로 앱을개발하거나 호환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고, 사용자 입장에서는 어떤 기기에서든 같은 경험을 매끄럽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최근 인텔의 CPU 성능 개선이 더뎌지면서 기업들은 인텔 의존도를 줄이려 하고 있고, 라이선스만 구입하면 입맛대로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는 ARM의 아키텍처가 매력적인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도 애플이 자체 칩을 탑재하기 시작한 이유다.

이종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ARM 코어는 저전력의 장점이 부각되는 아키텍처이지만, 성능 면에서도 x86을 위협하기 시작했다"며 "노트북·태블릿의 경계가 더 빠른 속도로 허물어지고,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통합, 디바이스간 유기적 연계가 이어질 것이란 점에서 독자적으로 만든 애플 칩은 큰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JP모건은 단기적으로는 애플이 CPU 내재화를 통해 부품 원가 절감을, 이에 따라 맥 소비자 가격대가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 "생큐, 애플!" 인텔 위협하는 ARM 진영

전체 PC 시장에서 애플의 맥이 차지하는 비중이 7%(가트너, 2019년 기준)라는 점, 2년에 걸쳐 완전히 ARM 기반 애플 칩으로 맥의 CPU를 대체할 것이라는 점은 인텔·AMD에는 위협이, 최근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는 ARM에는 큰 기회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퀄컴의 2세대 PC CPU '스냅드래곤 8cx 5G'.

저전력, 긴 배터리 수명, 얇은 디자인 등에서 강점이 있는 ARM의 아키텍처는 그동안은 모바일에 최적화돼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애플뿐아니라 전 세계 스마트폰의 90%가 ARM 설계를 활용하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성능 개선뿐 아니라 생태계를 확장하는 데 발목을 잡았던 호환성도 개선되면서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는 분위기다. 퀄컴은 PC 운영체제 점유율이 90% 가까이에 달하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손잡고 윈도 OS에서도 호환되는 ARM 기반 CPU를 개발했다. MS의 노트북인 '서피스 프로 X'뿐 아니라 레노버·에이수스 같은 PC 제조업체가 퀄컴 칩을 채택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갤럭시북'에 퀄컴 CPU를 탑재했다. 퀄컴은 스마트폰의 장점을 PC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프로세서라는 점을 전면에 부각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그간 PC 프로세서 시장에서 틈새를 공략하는 데 그쳤던 ARM 진영이 애플을 만나 저변을 확대할 기회를 만났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 덕에 퀄컴 역시 주목도가 올라갈 것이란 분석이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애플의 탈(脫)인텔 전략, 애플 PC 칩 독자 개발은 수년간 준비돼 온 데다 퀄컴도 PC 프로세서 시장으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는 만큼 인텔 중심의 PC 프로세서 시장이 흔들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면서 "다만, 퀄컴은 애플과는 다르게 칩만 만드는 로직반도체 업체인 만큼 ARM 진영에서의 희비는 엇갈릴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