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가덕신공항' 약속했는데
국토부는 용역예산 20억 전액 삭감
與 "부산 신공항은 마냥 미룰 수 없어"
김현미 "김해부터...법적절차 못 뛰어넘어"

김태년 "국토부 2차관 들어오라 해"
與 "대표도 화가 많이 나신 것 같다"
총리실 결과 나오면 반영할 수 있게 예산 확보

내년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가덕도 신공항'을 띄우면서 정부여당의 갈등이 다시 불거지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지난 4일 부산을 찾아 "희망고문을 빨리 끝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힘을 실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다음날인 5일 부산을 찾아 "가덕 신공항으로 결정되면 적극 돕겠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마치고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런데 이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토교통부가 내년 예산에서 가덕도 신공항 적정성 검토 용역비 20억원을 전액 삭감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국민의힘은 물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김현미 장관에게 집단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민주당 김교흥 의원은 지난 3일 가덕도에 대한 적정성 검토를 한 번 더 하자는 취지에서 20억원 규모의 용역비로 20억원을 신규 요청했었다.

이에 김 장관은 "김해 신공항이 부적절하다는 결론이 나오기도 전에 특정 지역을 정하고 적정성을 검토하는 것은 국토부로서는 따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절차를 만들어서 국토부에 건너뛰도록 결정하면 따라갈 수 있다"면서 "(하지만) 그런 절차도 없이 국토부에 '그냥 이렇게 해'라고 하면 저야 정치인 출신이니 '그러겠다'고 하겠지만, 공무원들은 못 한다"고 했다.

그러자 민주당 김회재 의원은 "부산 신공항 문제는 마냥 미룰 수 없는 사안"이라고 했다. 부산이 지역구인 국민의힘 이헌승 의원도 "국토부가 수용할 것을 적극 검토해서 동의해달라"고 했다. 이를 두고 양측의 의견이 강하게 부딪히면서 진선미 국토위원장은 30여분 정회했다.

같은 시각 이런 사실이 민주당 지도부에 전해지면서 당 최고위 회의를 마친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누군가에게 전화해 "국토부 2차관 빨리 들어오라고 해"라고 대화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김 대표는 복도에서 이동하는 과정 중 혼잣말로 '항명이야 항명’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이 과정에서 거친 언사를 쓴 것으로도 알려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대표가 많이 화가 난 것 같다"며 "대표가 이렇게 화 난 모습은 처음 봤다"고 했다. 김태년 원내대표 뿐만 아니라 이 소식을 들은 이낙연 대표도 불편한 기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국토위 소속 민주당 의원은 "(이낙연) 대표가 직접 부산으로 내려가서 당부를 한 지 이틀만에 국토부가 정면으로 반대의견을 낸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당 지도부가 격앙된 것은 국토부의 이런 예산삭감 행동이 이틀 전 부산을 찾아 "부산·울산·경남 가덕신공항에 대한 희망고문을 빨리 끝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이낙연 대표의 발언과 배치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에 대한 기존입장은 김해공항을 확장한 '김해 신공항' 건설이었다. 그런데 내년 보궐선거가 다가오자 민주당에서 먼저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주장하고 나왔다.

당정은 직전까지 재산세 감면 기준 9억원, 주식양도소득세에 대한 대주주 요건 3억원을 두고 맞부딪혔다. 당 지도부는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재산세 감면 기준을 공시지가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상향조정할 것을 제안했지만, 청와대가 정부의 손을 들어주면서 6억원으로 결론이 났다.

한 회사 주식을 3억원어치 갖고 있으면 대주주로 간주해 이 주식을 팔 때 차익에 양도소득세를 매기는 방안은 민주당과 청와대의 반대로 정부의 주장이 관철되지 못했지만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국회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공직자로서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 표명을 하면서 논란이 됐다.

홍 부총리는 사의 표명 하루만인 지난 4일 부총리직을 계속 수행하겠다고 밝혔지만, 전국 생중계되는 국회 전체회의에서 돌발발언을 한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이날 다시 열린 국토위 회의에서 국토위 민주당 간사인 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국토부에 정책연구개발 R&D 사업비로 26억원이 책정됐는데, 여기에 20억원을 증액하자"고 제안하고 김 장관이 받아들이면서 일단락 됐다. 여당의 뜻대로 가덕도 신공항 용역 예산이 확보된 것이다. 김 장관은 "총리실의 검증결과가 발표되면 20억원을 R&D사업비 후속조치 예산으로 사용하겠다"고 했다.

동남권 신공항은 2016년 박근혜 정부가 기존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김해신공항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냈으나, 2018년 민주당 소속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김해신공항을 백지화하고 가덕도 신공항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도 부산을 방문해 재검증을 약속했다. 이후 총리실 산하에 검증위원회가 설치돼 재검토에 들어갔다. 검증위는 늦어도 올해 안에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오른쪽)과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간사가 6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 정회 후 대화를 나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