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 비거라지 창업자 인터뷰]

미국의 물류 창고는 허허벌판에 있어 인력난이 극심하다고 합니다. 특히 올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전자상거래 이용량이 폭증하면서 자동화는 물류 업계의 사활이 걸린 이슈가 되었습니다. 우주항공학도가 드론으로 물류업계의 난제 해결에 도전했습니다. 드론을 포함한 로봇 산업에 한국의 새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편집자주]

"물류 창고에는 위성항법장치(GPS)도 없고 위치를 알려주는 표식도 없습니다. 비거라지(B Garage)의 드론은 오직 몸체에 달린 작은 카메라에 의지해 물류 창고 곳곳을 누비며 재고 조사를 합니다."

최근 드론이 ‘날아다니는 로봇’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먼 거리를 스스로 이동하고 장애물을 피하면서 인간의 지시를 수행한다. 2017년 실리콘밸리에서 설립된 비거라지는 이같은 기술 흐름을 잘 보여주는 스타트업이다.

김영준 비거라지 창업자 겸 CEO

"미국 물류 회사 CTO(최고기술담당임원)의 제안으로 물류 창고의 재고를 드론으로 조사하는 파일럿 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미국 물류 창고의 넓이는 보통 축구장 3개 크기(20만ft2)와 맞먹어요. 선반(랙) 높이도 9m에 달합니다. 사람이 직접 재고를 조사하기에는 물류 창고가 너무 커요. 실제 재고와 전산 재고의 오차가 큰 이유이죠."

김영준 비거라지 창업자 겸 CEO(최고경영자)는 "농업, 어업, 물류 분야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면서 "여기에 드론을 포함해 로봇 비즈니스의 기회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2016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우주항공학 박사를 받고 2017년 소형 자율 비행체를 만드는 비거라지를 창업했다. 한국 네오위즈의 초기 멤버였으며 구글과 오라클 등에서 자연어 처리와 데이터베이스 개발 엔지니어로 일했다. 그는 미국의 민간 우주 기업 스페이스 X의 우주선 발사 중계를 라이브로 챙겨보는 우주항공 애호가이기도 하다.

비거라지는 미국 10대 물류 회사인 켄코로지스틱스(Kenco Logistics), DSC로지스틱스 등과 드론을 활용한 물류 창고 자동 관리 사업 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다. 또 최근 한컴 그룹 자회사인 한컴 GMD와 비행체 제조를 포함한 드론 사업에 관한 포괄적인 협력 계약을 맺었다. 한컴 GMD는 비거라지의 드론을 제조 생산, 판매하는 파트너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비거라지와 협력할 계획이다. 기자는 그를 캘리포니아 서니베일과 서울 시내에서 두 차례 만났다.

비거라지가 만든 물류창고 재고조사용 드론

― 회사명이 독특하다.

"2006년 설립된 로봇 회사 윌로우개라지(Willow Garage)를 ‘오마주(존경의 표시로 대사나 이름을 인용하는 일)’한 것이다. 윌로우개라지는 2014년 문을 닫았지만, 이 회사의 로봇 운영체제 ‘ROS(Robot Operating System)’는 수많은 로봇 기업이 탄생하는 밑거름이 됐다. 비거라지의 ‘B’는 미국 산호세의 브룩허스트(Brookhurst) 지역에서 따온 것이다. 실제로 브룩허스트의 친구 집 차고에서 사업을 준비했다."

― 물류 창고의 재고 조사에 드론을 투입한다는 게 흥미롭다.

"드론이 특정 선반으로 날아가 카메라로 물건의 이미지를 찍고 이 이미지에서 물건의 정보, 이름, 수량 등을 추출한다. 드론으로 물류 창고의 재고 조사 전 과정을 자동화한 것이다. 재고 측정 정확도는 99%가 넘는다. 사람보다 정확하지 않으면 물류 창고 회사가 드론을 쓰지 않을 것이다. "

― 실내에서는 드론의 비행이 어렵다. 드론이 원하는 위치에 어떻게 찾아가나.

"보통 자율주행차는 레이저로 거리를 측정하는 ‘라이다(LiDAR)’ 센서를 이용한다. 하지만, 좁은 실내에서 비행하는 드론에 그렇게 크고 무거운 센서를 달 수 없다. 또 철제 선반이 많은 물류 창고에서 와이파이(Wi-Fi)망을 이용할 수 없다. 금속류는 전파 수신을 방해한다.

비거라지의 드론은 일반 카메라만 이용해 목표 지점(가령, 5열 4단)에 찾아간다. 핵심 기술은 드론에 내장된 자율 비행 소프트웨어(알고리즘)이다. 이 소프트웨어에는 (1) 센서를 통해 주변을 인지하는 기술 (perception) (2) 주변의 정보를 통해 나의 위치를 파악하는 기술(localization) (3) 이를 바탕으로 어떤 경로로 가야 할 지 계획하는 기술(planning) (4) 계획을 바탕으로 기체를 제어하는 기술(control) 등이 포함돼 있다. 미국 대형 물류 업체 켄코로지스틱스에 따르면, 작년 이 회사의 파일럿 프로젝트에서 실내 자율 주행을 제대로 해낸 기업은 비거라지가 유일했다."

그래픽=박길우

― 많은 사람들이 비콘(beacon·근거리무선통신장치)이나 RFID 기술이 물류에 쓰일 것이라고 내다 봤다. 이런 기술들의 채택률이 예상보다 낮은 이유는.

"물류 창고 분야에 한정해 이야기해보겠다. 비콘이나 RFID 등을 쓰면, 일단 돈이 든다. 더 큰 문제는 새 환경에 맞춰 인력을 교육하는 일이다. 인프라 변경에 드는 비용보다 더 많은 돈과 품이 인력 관리에 들어간다. 물류 분야의 혁신은 기존 환경을 바꾸지 않고 해내는 게 중요하다."

― 코로나19 확산 이후 전자상거래 이용자가 폭증했다. 물류 업계에 미친 영향은.

"북미 최대 물류 콘퍼런스 프로매트(ProMat)나 모덱스(MODEX)의 최근 화두가 ‘자동화(automation)’와 ‘실시간 시각화(real time visibility)’였다. 코로나는 물류업계에 불어닥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바람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제 자동화는 물류업계의 생존과도 직결된 일이다.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와중에 일까지 폭증했기 때문이다.

또, 새 비즈니스 기회를 찾기 위해서는 어떤 물건의 수요가 치솟는지, 재고는 얼마나 남았는 지 바로 확인해야 한다. 화주들이 물건 이동의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기 위해 각종 실시간 시각화 기술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물류 창고 자동화 시장 규모가 급격하게 커지고 있다.

(물류 전문 시장 조사업체 로지스틱스IQ는 지난해 물류 창고 자동화 시장이 2025년까지 연간 11.7%씩 성장, 270억 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올해 보고서에서는 코로나19 확산의 영향으로 물류 창고 자동화 시장이 연간 14%씩 성장, 2026년 약 300억 달러 시장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래픽=박길우

― 드론도 넓게 보면 ‘나는 로봇’이다. 로봇 산업 흐름은.

"2006년 미국에 유학을 왔고 2007년 애플의 ‘아이폰’이 출시되었다. 군용으로 쓰이던 드론이 실생활에 폭넓게 쓰이게 된 것은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모바일 혁명 덕분이다. 가속도계, 자이로스코프, 자력계, 기압계, 거리측정계 등 스마트폰에 쓰이는 기술이 드론에도 그대로 쓰인다. 이런 센서들은 음식 서빙 로봇, 길 안내 로봇 등 로봇 산업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모터와 배터리 기술의 발전 속도가 다소 느리긴 하지만, 인류가 로봇과 자연스럽게 살아갈 날이 멀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2007년 대학원 재학 시절 인공지능 담당 교수가 "10년 후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을 때,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반응은 ‘설마 10년 안에 될까’였다. 최근 웨이모(구글의 모기업 알파벳 산하의 자율주행차 개발 업체)가 안전요원이 타지 않은 ‘완전’ 무인(無人) 자율주행차의 상업 운행을 발표한 것을 보면, 기술은 놀랍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 비거라지의 향후 계획은.

"내년 2분기 비거라지가 설계한 물류 창고 전용 드론이 미국 물류 회사에 본격적으로 공급된다. 초기 투자금을 한국에서 유치했기에 서류상 본사는 서울에 있는 법인이고 미국 법인은 한국 법인의 자회사 형태로 되어 있다. 하지만, 창업 이후 연구개발이 미국 법인에서 이뤄졌고 미국 영업도 확대되고 있어 미국 법인을 본사로 바꾸는 작업도 진행할 계획이다.

물류 업계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은 현대 사회의 중요한 인프라를 유지하는 일이다. 최근 로봇으로 물류업계 난제를 해결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여기에 한국의 새 기회도 있다. 제조 강국인 한국이 세계 로봇 산업 발전에서 오는 기회를 잡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