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대표이던 이해찬 전 대표는 지난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정문 앞에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관한 질문을 던진 기자에게 'XX자식'이라고 했다. 이 전 대표는 "그런 걸 이 자리에서 예의라고 하느냐. 최소한도 가릴 게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전 대표가 질문한 기자를 노려보던 눈빛이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이 난다.
박 전 시장은 자신의 비서 성추행 혐의로 피소당한 다음날 실종된 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박 전 시장의 장례식장에는 민주당 의원들이 충혈된 눈으로 빈소 안팎을 오갔다. 장례식장 앞 좁은 현관에 100명이 넘는 기자들과 유튜버까지 몰려있었지만, 그 누구도 드나드는 의원들을 붙잡고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묻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는 조문객의 모습에 모두가 할 말을 잊었다. 이 날은 비까지 내렸다.
당시 빈소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당 대표 질문에 앞서 사전 협의를 했다. 현장 상황을 공유하기 위해 만든 단체 대화방에서도 '필요한 질문이다'라고 합의했다. 이 대표가 화를 내면서 가버리면 다른 질문을 할 수 없으니 맨 마지막에 질문하자고 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어 성추행 의혹이 터진 상황이었다. 그렇게라도 던져야 할 질문이었다. '성추행'이라는 단어는 쓰지도 않았다. 당 대표에게 당 차원의 대응을 물었는데 '예의도 모르는 XX자식'이라는 막말을 들었다.
그런데 민주당은 전날 별세한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애도하는 논평에서 '과'부터 끄집어냈다. 민주당은 공식 논평에서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던 영욕(榮辱⋅영예와 치욕)의 삶이었다"라며 "그가 남긴 부정적 유산들은 우리 사회가 청산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고 했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삼성은 과거의 잘못된 고리를 끊고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란다. 고인의 빛과 그림자를 차분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낙연 대표는 3개월 전 박 전 시장의 빈소에서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노웅래 최고위원은 '당의 대책'을 묻는 질문에 "그건 나중 문제"라고 했다. 한 평생을 인권운동에 투신한 박 전 시장의 죽음 앞에서 그의 성추행 혐의에 대해 언급한다는 것이 고인에게 불명예스러운 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래서 침묵했다.
여당의 말처럼 삼성은 우리 사회에 그늘도 남겼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의 표현대로 이 전 회장은 '재계의 큰 별'이었다. 여당 인사들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빈소에서 보여준 '예의'를 이 전 회장의 죽음에도 보였어야 한다.
그들이 박 전 시장의 혐의에 관한 질문에 침묵하거나 '다음에'라고 했듯, 삼성의 그늘에 대해서도 이 전 회장의 장례가 끝난 다음에 논의해도 충분하다. 이 전 회장 별세에 대한 현재 여권의 추모 방식은 이중잣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지난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별세했을 때 민주당은 논평을 내지 않았다. 이번에도 애도만 전할 수 없었다면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