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해운업계 지원을 위해 설립된 한국해양진흥공사가 HMM(옛 현대상선)만 집중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의원에 따르면, 해양진흥공사의 지원금 6조5040억원 가운데 63%인 4조1280억원이 HMM에 지원됐다. 나머지 중소선사 81곳에 지원된 금액은 약 2조3760억원, 1곳당 평균지원액은 292억원에 불과했다. HMM이 받은 지원금이 중소선사 평균 지원금의 141배에 달했다.
정부는 지난 2018년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세운 뒤 HMM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를 지원하는 데 힘썼다. 당시 현대상선에 2만4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12척과 1만8000TEU급 컨테이너선 8척 등 총 20척을 투입하기로 하면서 건조비용으로만 3조1532억원을 지원했다. 다행히 HMM은 초대형 컨테이너선 투입 후 21분기만에 흑자를 냈고, 연이은 만선 행진을 기록 중이다.
반면 중소형 해운사는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리며, 경쟁력을 키우지 못했다. 100대 해운사의 27%가 부채비율이 400% 넘는 '고위험' 기업으로 분류돼 금융권 자금 차입, 회사채 발행도 어렵다. 기간산업 안정자금(기안기금) 지원을 받기도, 자산매각도 쉽지 않다 보니 운영 자금을 마련하는 데도 부담이 있다.
이 때문에 해운선사들은 "지원이 HMM에만 쏠린다", "중소선사 지원은 늘 한발 늦다", "부채규모가 커지고 난 뒤에야 궁여지책으로 지원을 해주면 어떻게 하느냐"고 호소하고 있다.
중소형사들의 자금 부족은 선박 노후화,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국내 중형해운사들의 선령은 경쟁국가인 중국, 일본에 비해 높다. 2018년 기준 국내 중소해운사 보유 선령은 14년으로, 중국(11.8년), 일본(8.9년)에 비해 3~6년 정도 높았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국내 중형해운사는 아시아 노선에 집중하고 있어 중국, 일본보다 경쟁력이 높아야 하는데 밀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중국은 2014년 이후로 선령이 우리나라보다 낮아졌고 일본은 신조를 10년 주기로 발주해 평균선령이 낮다"고 설명했다.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대형해운사는 불황을 모르고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중소형 해운사들은 생존위기에 내몰린 상황이다. 대형 해운사가 주로 운항하는 한국~미국 노선은 선박이 부족할 정도로 호황인 반면, 중소형 해운사들이 주로 운항하는 동아시아, 동남아 노선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탓이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원양선사들은 올해 초 공급 감소에다 미국 경기 회복으로 운임이 올랐지만 근해선사들은 선박 감축도 없고, 물동량도 줄어 어려움이 커졌다"며 "근해선사들의 항로 운임은 1TEU당 평균 50달러 이상 하락하면서 박탈감도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운업계 전문가들은 정부가 중소선사를 포기하면 안된다고 강조한다. 한국은 에너지(원유, 가스, 석탄 등) 및 원자재(철광석, 곡물 등) 등의 국가 필수 소비재의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은 데다 반도국가라서 수출입의 99.7%가 바닷길로 운송된다.
또 해운산업은 국내 대표 산업으로 꼽히는 조선, 철강과의 연관성이 높아 무너지면 경제에도 큰 타격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해운 물동량이 증가해야 신규 선박 수주가 증가하고, 철강 수요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박도휘 삼정KPMG 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해운업은 국가의 수출과 수입을 책임지는 국가 기간 산업인 데다 전후방 산업과 밀접하게 연계돼있어 일자리를 많이 창출시킨다"고 "위기에 빠진 해운산업을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해서도 안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전준수 서강대 명예교수는 "중소형 선사들의 주요 무대는 동남아인데, 워낙 선박이 많고 외국 대형선사들도 중간 기항지로 들러 낮은 운임만 받고 화물을 싣기 때문에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며 "정부와 동남아 국가들이 동맹을 맺어 선박을 제한하고, 운임 하락을 막는 방식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