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난 발생 후 한시간 지나서 사고 인지
직원들은 "경찰 신고 너가 하라"며 20분간 실랑이
심각한 기강 해이, '낙하산 인사' 부작용이란 지적도

20초만에 털린 강원랜드.

강원랜드에서 손님을 가장한 외국인들이 슬롯머신을 털어 현금 2400만원을 들고 도망간 사건이 뒤늦게 확인됐다. 강원랜드에서 기기가 털려 현금을 도난당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일 입수한 강원랜드 자체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월 7일 강원랜드엔 위조된 여권을 이용해 홍콩 남성 1명과 페루 남녀 2명 등 총 3명이 입장했다. 오후 2시 44분부터 시차를 두고 영업장에 들어온 이들은 이날 저녁 6시 55분 만능열쇠로 추정되는 도구를 이용해 슬롯머신의 현금상자를 절취했다.

이들이 슬롯머신을 열어 현금을 챙긴 뒤 카지노 영업장을 빠져나온데 걸린 시간은 불과 20초. 강원랜드 측이 도난 사실을 파악하고 신고를 접수한 것은 사건이 발생하고 1시간 30분이 지나서다. 범인들은 이미 행적을 감춘 후였다.

강원랜드의 허술한 보안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자체 감사 결과에 따르면 범행이 발생한 당시 강원랜드 영업장엔 보안요원 10여명이 근무 중이었다. 특히 도난사건 발생 당시 슬롯머신 기기 상단부의 상태 확인 표시등에선 경보장치가 정상 작동하고 있었다. 경보장치가 울렸음에도 보안요원들은 현장을 확인하지 않은 채 '빈자리 표시'나 '단순 기기 오류'로 여긴 것이다.

강원랜드 측이 사고를 처음 인지한 건 도난 사건 발생 후 한시간 후 쯤이었다. 사고 머신 기기 근처를 지나가던 A 과장이 기기 모니터에 뜬 에러 메시지로 현금 도난 사실을 확인했다. A 과장은 상황실에 바로 경찰 신고를 요청했지만, 상황실 직원은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해당 직원에게 직접 신고하라고 떠넘겼다. 신고를 누가할 건지 실랑이를 벌이는 데만 20분이 걸려 결국 골든타임을 놓치게 됐다.

강원랜드 카지노 영업장 입구.

도난범들이 강원랜드의 만능열쇠를 확보하게 된 과정도 의문 투성이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강원랜드는 2014년 만능열쇠 중 파손된 한 개에 대해 폐기처리를 하기로 했지만 실제론 폐기하지 않은채 담당자가 따로 보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담당자가 교체됐고, 만능열쇠에 대한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016년엔 노후 머신 170여대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열쇠가 여러개 분실되기도 했다. 심지어 파손된 열쇠를 추가 구매할 때 지정 보안 업체가 아니라 지역의 일반 업체를 통해 구매한 사실도 드러났다. 강원랜드는 이들 업체에 기초적인 보안서약서도 받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은 "열쇠의 입·출고는 물론 정기 점검 및 불용 처리 등 이력 관리에 있어서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다"며 "이번 도난사건은 강원랜드 임직원의 업무 태만과 책임 회피, 미흡한 초동조치 등이 빚어낸 인재"라고 했다. 이 의원은 이어 "문태곤 사장이 책임지고 직원 업무 매뉴얼과 감시 체계, 열쇠 이력관리 등 제도 개선과 재발방지 대책 수립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강원랜드에 낙하산 인사가 계속 내려오면서 조직 내 기강 해이가 심각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7년 12월 강원랜드 사장에 취임한 문태곤 사장은 감사원에서 근무하다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6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도난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강원랜드의 2인자였던 한형민 부사장도 노무현정부 때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인물이다. 한 부사장은 지난 6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보로 선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