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초과 저축성예금 650조 돌파…증가분 대부분 기업예금
기업용 수시입출금 계좌에 상반기 사상 최대치 돈 몰려
10억 넘는 정기예금, 5년 만에 감소… "저금리, 매력 사라져"

올해 상반기 기업들이 돈을 자유롭게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기업자유예금에 거액의 자금이 예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잔액이 10억원을 넘는 기업자유예금이 올 상반기 사상 최대폭인 32조원이 늘어 총 잔액이 180조원에 이르렀다.

반면 지난 5년 내내 증가해왔던 10억원 초과 정기예금의 규모는 상반기에 감소했다. 저금리 상황에서 정기예금의 매력도가 떨어진 가운데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불어난 유동성이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기업들의 대기자금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19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6월말 기준 10억원 초과 저축성예금(정기예금, 정기적금, 기업자유예금, 저축예금 등) 잔액은 650조324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32조3630억원 증가했다. 계좌 잔액이 10억원을 초과하는 이른바 거액 저축성예금은 2014년부터 증가세를 보여왔다. 반기 기준으로 10조~20조원대를 기록하던 증가폭은 2018년 30조원대로 올랐다가 지난해에는 상반기와 하반기 각각 27조7180억원, 24조4490억원을 기록했다.

그런데 코로나19 발생 이후 거액 저축성예금을 구성하는 정기예금, 기업자유예금 흐름에 변화가 나타났다. 통상 규모가 가장 큰 정기예금이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전체 저축성 예금의 잔액이 뛰어왔는데, 올해 상반기에는 증가분의 대부분이 기업자유예금에서 나온 것이다.

10억원 초과 기업자유예금은 6월말 기준 180조7680억원으로 상반기 중 31조5970억원이 늘었다. 이는 한은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2년 이후 최대폭을 기록한 것이다. 반면 10억원 초과 정기예금은 전년말 대비 2조2030억원 감소한 453조3810억원으로 집계됐다. 10억원 초과 정기예금이 감소한 건 2015년 상반기 이후 5년 만이다.

기업자유예금은 쉽게 말해 기업용 수시입출금식 통장이다. 금리가 0.2%대에 불과해 거액을 예치해서 얻는 이자수익은 거의 없어 결제수요대기 자금이나 언제 인출할지 모르는 여유자금을 예치해둘 때 주로 활용된다.

한은 관계자는 "기업자유예금은 기업들이 자금을 넣어둘 때가 마땅치 않을 때 임시로 넣어두는 성격의 계좌"라며 "저금리 아래 정기예금의 이점이 부각되지 않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일단 수시입출금이 가능한 계좌에 돈을 넣어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기업자유예금에 거액이 몰리는 건 코로나19 이후 기업들이 처한 환경과 연관이 깊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인 연 0.50%로 내려가고 각종 기업 정책자금이 쏟아지면서 유동성이 급증했고,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에 중장기 투자에 대한 유인이 사라지면서 자금운용은 단기화 하는 경향이 굳어졌다.

이는 곧바로 쓸 수 있는 수시입출금식 예금, 요구불예금으로 구성된 협의통화(M1)의 증가세가 광의통화(M2) 증가세보다 더 빨라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M2는 M1에 저축성예금, 수익증권 등을 포함시킨 개념이다. 8월 기준으로 M2는 전년대비 9.5%, M1은 24% 증가했다. 시중 통화량을 뜻하는 M2가 3100조원을 넘어선 가운데 M1이 그 증가세를 이끌고 있다는 의미다. 이에 반해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불확실성으로 기업의 투자 또한 부진하다. 8월 산업활동동향 지표는 설비투자가 전년대비로 역성장을 나타냈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기업지원을 위해 흘러온 자금들이 생산적인 시설 투자 등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일단은 유동성으로 남아 있는 상황"이라며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유동성 압박에 대응하려는 움직임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