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통령 토론장에 설치돼 큰 관심...美 전역서 널리 사용
"코로나바이러스, 침방울보다 작은 에어로졸로 확산"
공기 중 머물며 이동…"마스크 없이는 가림막 효과 無"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방지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플렉시글라스(plexiglass·투명 아크릴 칸막이)’에 대한 무용론이 확산되고 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코로나바이러스의 공기 중 감염 가능성을 공식 인정하면서다.

지난 7일(현지 시각) 열린 미국 부통령 후보 TV토론회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간 설전만큼 큰 관심을 끈 것은 플렉시글라스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백악관 참모들 사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급증하자 마련된 고육지책이었다. 당시 후보들은 3.6m 거리를 두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토론을 벌였다.

이는 앞서 미국 코로나 대응 총괄 기구인 CDC가 감염 위험이 높은 공공장소와 사업장을 대상으로 물리적 장벽을 설치하라고 제안하고, 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청(OSHA)도 유사한 지침을 내린 데 따른 것이다. 현재 미 전역의 식료품점과 식당 등의 계산대, 사무실, 대형마트 등에서 감염 방지를 목적으로 플렉시글라스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지난 6일(현지 시각) 미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의 유타대 킹스베리홀에서 펜스 부통령과 해리스 상원의원의 부통령 후보 토론회를 준비하는 관계자들이 후보자의 책상 위에 플렉시글라스를 설치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아크릴 칸막이의 효능을 입증할 자료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콜롬비아대학의 역학·의학 교수인 와파 엘 사드르는 13일(현지 시각) 미 CNN방송에 "이론적으로는 확진자가 기침이나 말을 할 때 나오는 큰 입자들을 막아준다지만 아직 입증된 바가 없다"며 "비말을 차단하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조사한 연구 자체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기 중 전염'을 주목하고 있는 학계에서는 최근 이 바이러스가 침방울보다 더 작은 에어로졸(공기입자)로도 확산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지름은 0.1마이크로미터 정도로,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800분의 1 수준이다. 비말은 5마이크로미터 이상인 반면 에어로졸은 5분의 1 정도로 작다.

입자가 작을수록 공기 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감염 가능성이 크다. 침방울은 입에서 나온 즉시 떨어지지만 에어로졸은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실내에서는 최대 몇 시간 씩 공기 중에 머물 수 있다. 6피트 (약 183cm) 이상 이동도 가능하다. 호흡기에서 나오는 비말이 방출돼 아크릴 칸막이를 넘어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대학의 감염학 박사인 프라팀 비스워스는 "사람들이 말을 하거나 재채기를 할 때 방출되는 대부분의 비말은 아크릴 장벽을 지나서 떠다닐 수 있는 크기"라고 말했다.

이 대학 환경보건안전학과의 연구팀은 지난 7월 플렉시글라스의 효능과 한계를 자체 검토한 결과 "에어로졸 감염 등 가능한 모든 방식을 고려할 때 플렉시글라스는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누군가를 완전히 보호할 수 없다"고 했다.

상점에서 사용되는 플렉시글라스의 규격이 일정치 않은 것도 문제다. 이 장치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직원과 고객 간 침방울 등을 차단할 수 있는 규격이 필요한데, 각 지역과 상점마다 제각각이라 사실상 무용지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워싱턴대학 마리사 베이커 교수는 지난 5월부터 매달 시애틀 소재 9개 식료품점과 포틀랜드의 7개 식료품점을 대상으로 안전조치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라면서 "계산대에 설치된 장벽이 직원과 고객 사이를 막기에 너무 작아서 효과가 없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많았고, 키 큰 사람의 코조차 안 가려지는 경우도 있었다. 입자들은 장벽과 상관없이 어디로든 확산된다"고 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마스크 의무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기본 수칙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CNN은 전했다. 플렉시글라스는 부수적 조치에 불과할 뿐 마스크 없이는 감염 위험을 막을 수 없다는 의미다.

식당과 유통업계 무역단체들은 이 장벽이 다른 조치 외에도 코비드-19 확산에 대항할 수 있는 하나의 잠재적 방법으로 보고 있다고 말한다.

식품유통그룹인 FMI의 대변인은 CNN에 보낸 서면 답변에서 "플렉시글라스는 코로나 확산에 대항할 수 있는 하나의 부수적, 추가적인 도구 정도로 보고 있다"며 "무엇보다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는 수단이 가장 효과적이다. 마스크가 없이 아크릴 장벽을 설치하는 건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