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5조달러(약 5700조원) 자산을 운용하는 세계 최대 투자사 30곳이 투자 기업들에 탄소배출 감축을 요구할 계획이다.

탄소 제로를 위한 투자자연합(Net Zero Asset Owner Alliance)은 12일(현지 시각) 성명을 내고 투자 기업들에 5년내 탄소배출을 16~29% 줄이라고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는 11월 13일까지 각국 정부와 공공기관, 기업,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해 내년 1분기까지 이같은 요구를 전달할 기업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다.

UN은 지난해 미국 최대 공공 연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과 독일의 알리안츠, 프랑스 AXA 등 30곳을 모아 연합을 발족하고 2050년까지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기 위해 기업들의 관행 개선을 촉구하겠다고 약속했다. 로이터는 이날 발표를 "보다 빠른 변화를 위해 자산가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압력이 커지는 가운데 연합이 보여준 가장 야심찬 움직임"이라고 평가하며 더 많은 투자자들이 연합의 계획에 동참할 것으로 내다봤다.

2012년 3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윌밍턴의 한 정유공장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기관 투자자들은 기후변화를 더이상 먼 미래의 환경 문제가 아닌 지금의 금융투자 리스크로 보고 있다. 배출권거래제(ETS), 탄소국경세 등으로 인한 기업들의 비용 부담은 결국 투자자들이 향유할 수 있는 배당수익과 시세차익의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배출권거래제는 할당된 배출권에 관해 시장 거래를 허용하는 제도다. 아직 4기(2026년 이후) 거래제 기간의 유상할당 비중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현재(2기) 또는 3기 때에 비해 더 커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탄소배출권 가격도 점차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탄소국경세는 국가 간 수입품의 탄소배출에 비례해 부여하는 세금으로, 유럽연합(EU)이 2021년 상반기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급속히 평가 절하된 자산을 일컫는 좌초자산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기후변화를 위기로 인식하는 시각이 늘면서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정유·석유화학·조선·자동차 산업과 온실가스 대량 배출 산업인 철강·시멘트·플라스틱 산업이 보유한 자원의 매장량이나 시설이 최근 이 범주에 들었다. 막대한 규모의 좌초자산 때문에 금융위기가 예상된다는 이유에서 탄소버블이란 말도 나온다.

특히 석탄의 타격이 크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파리기후변화협약을 기준으로 2100년까지 계산한 탄소 예산에 따르면, 화석연료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매장량 가운데 4분의 3이 무용지물이 된다.

규모가 큰 자산운용사들은 벌써부터 관련 기업들에서 발을 빼고 있다. 7조달러 상당 자산을 운용하는 블랙록은 올해 석탄을 통해 얻은 매출이 25%가 넘는 기업들의 채권과 주식을 처분했다. 약 143억파운드를 운용하는 영국의 사라신앤파트너스는 지난해 다국적 석유회사 셸 주식에서 20% 이상을 팔았다.

이러한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법인 EY한영은 지난 2월 전 세계 투자기관 소속 임원급 인사 298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10명 중 7명(73%)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기후변화의 물리적인 위험 요소를 평가하는 데 많은 시간과 관심을 할애한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래리 핑크 블랙록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월 발표한 CEO 연례 서한에서 "멀지 않은 미래에, 예상보다 빠르게, 상당한 규모의 자본 재분배가 이루어질 것"이라며 "지속 가능성 리스크에 대처하지 않는 기업과 국가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시간이 갈수록 더 회의적으로 변할 것이고 그 결과 자본 비용은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