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국정감사 철을 맞아 ‘부동산값 폭등은 전 정부의 실정(失政) 때문이라는 주장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은 "전 정부의 영향도 일부 있을 수는 있지만, 현 정부의 정책 실패 책임이 더 큰데 떠넘기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8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한 주택공급 확대방안 당정 협의. 좌측부터 홍남기 경제부총리,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 민주당 조정식 전 정책위의장,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 朴정부가 공공택지 지정 안 해서?…"서울 재건축·재개발 규제가 본질"

13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 소병훈 의원은 지난 10일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해 "문재인 정부가 지난 2017년~2019년까지 지정한 공공택지는 전국 기준 3667만㎡인 반면,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2016년 지정한 택지는 553만㎡로 문재인 정부의 15%에 그친다"며 "그 결과 문재인 정부로 들어서면서, 특히 수도권에서 공공택지가 부족해졌고 집값 상승 현상이 나타나게 됐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 2014년 9·1대책에서 "과거에는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공공이 주도하여 도시 외곽에 대규모 택지를 공급해 왔으나 지역 실정에 맞는 중소 규모의 다양한 택지개발을 유도할 것"이라며 공공택지 공급을 줄인 것이 공급까지 줄어들게 해 부동산 가격 폭등의 원인이 됐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에 대해 부동산 시장에서는 "서울 내 공급이 막힌 것이 집값 폭등의 가장 큰 원인인데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의 공공택지로 물타기 하려고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박근혜 정부 당시 공공택지 지정이 줄기는 했지만, 이를 문재인 정부 부동산값 폭등의 근본적 원인이라 보기는 어렵다"면서 "단적으로 일부 2기 신도시는 아직도 미분양이 남아있다. 결국 실수요자들이 원하는 지역에 공급이 들어가는지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했다.

이어 "실수요자들이 원하는 주택공급은 서울의 재개발·재건축을 통해 충족될 수밖에 없다"면서 "분양가 상한제·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안전진단 강화 등의 규제로 민간의 자연적 공급물량이 계속 줄어든 것을 공급 감소의 가장 큰 원인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박근혜 정부 당시는 부동산 수요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기 때문에 공공택지 지정의 필요성도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면서 "이후 수요가 느는 과정에서 공급도 함께 늘렸어야 했는데 ‘공급이 문제가 아니다’라거나 ‘투기를 잡겠다’라는 시각이 수급 균형을 깨뜨린 패착이 됐다"고 했다.

실제로 부동산 정보업체 직방에 따르면, 지난 2015년 76만5328호, 2016년 72만6048호에 이르던 서울의 주택 인·허가 건수는 문재인 정부 1년 차인 2017년 65만3441호에서 2018년 55만4136호, 2019년 48만7975호로 감소했다.

올해는 지난 8월까지 25만7294호에 그쳤다. 부동산114는 서울의 입주 물량 역시 올해 4만8758호에서 내년 2만6940호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인·허가와 입주 사이에 수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을 고려하면 앞으로 입주 물량은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이 위축된 영향이 굉장히 크다"면서 "이미 부동산 가격 하락기에 접어들었어야 했는데, 여러 가지 규제를 도입하면서 오히려 가격이 상승한 부분이 있다. 정권 초기부터 시장을 그대로 뒀다면 공급 부담도 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朴정부 당시 주담대 증가가 주범이라는데… "영향 있지만 크지 않아"

김두관 의원도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토대로 '박근혜 정부에서 주택담보대출이 사상 최대 폭으로 증가했다'고 화살을 돌렸다. 박근혜 정권 5년간 주담대 총액이 282조6000억 원으로 지난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총액 413조6000억 원의 63.7%에 달한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그러면서 "주택가격 상승을 나타내는 지표인 주담대가 박근혜 정부 때 사상 최대로 급등한 것은 ‘초이노믹스’가 부동산값 폭등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 역시도 무리한 책임 전가라고 본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박근혜 정부 당시 주택 관련 대출 장려 정책이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정도 집값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면서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꾸준히 대출 규제가 강화된 것을 고려하면 최소한 올해의 집값 상승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와 지금의 주택시장이 다른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교언 교수는 "박근혜 정부 당시는 집값 하락 우려가 컸다"며 "특히 하우스 푸어(House poor) 문제나 깡통전세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해 당시로써는 어쩔 수 없는 선택지였다"고 했다. 그는 "만약 당시에 주택 관련 대출 규제를 완화하지 않았으면 부동산발 경기침체 역풍이 심각했을 것"이라며 "지금을 기준으로 당시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억측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부동산 전문가도 "문재인 정부 이후 시중 통화량(M2)은 500조원 넘게 증가해 3000조원을 돌파했고, 금리는 더 낮아졌다"며 "주담대만 봐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가 주택담보대출비율(LTV)를 조였지만, 풍선효과로 전세 대출과 신용대출이 늘어나 아파트 매매가에 미친 영향까지 함께 봐야 한다"고 했다.

◇ "前 정부 탓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여당에서는 국감철 이전부터 ‘부동산 전(前) 정부 책임론’의 불씨를 지폈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지난여름 "부동산값 폭등을 초래한 원인 중 하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누적된 부동산 부양정책 때문", "2014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이 주도한 이른바 부동산 3법이 아파트 주택시장 폭등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폐단을 극복하고 정상화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심교언 교수는 "세계적인 유동성 공급으로 부동산값이 폭등한 나라는 한국 말고도 많다"면서 "그러나 다른 나라들의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도 한국은 계속 올랐다. 정부 규제 때문에 오른 이유도 있다고 본다. 무리한 규제 대신 주택 공급을 늘렸으면 이 정도로 상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한 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시기 집값이 폭등했다는 사실은 여당에서도 도저히 부정하기 힘든 현실"이라면서 "결과를 부정할 수 없으니 원인이라도 야당에게 떠넘기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