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끼친 사람 다가오면 화학물질 분비 급증시켜 주변 식물에 위험신호 제공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동물을 가족의 구성원으로 키우는 이들이 많은 것처럼 분재나 난초 등의 식물을 반려식물로 ‘애지중지’ 키우는 이들도 적지 않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집안 생활이 많아지면서 실내에서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반려식물 기르기를 통해 우표나 화폐 수집처럼 식물 컬렉션적 묘미, 실버 세대들에겐 골프나 운동처럼 노후 소일의 묘미, 주부나 퇴직자들에겐 부업적 의미의 도시농업적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는 이들은 원예치료적 효능을 얻고, 미술과 서예처럼 작품을 만들어 작가가 되어보는 재미를 즐길 수 있다.

분재를 키우는 사람들은 하루하루 수고스럽지만 나날과 해해년년이 쌓여 노거수(크고 오래된 나무)다운 기품을 갖추는 때를 기다리는 즐거움으로 성취감과 행복감을 누리고 심신의 건강을 더하는 묘미를 즐길 수 있다고도 한다.

문제는 반려식물의 경우 반려동물처럼 소리도 내지 않고, 행동이 없어 사람과 교감이 쉽지 않아 관리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농진청 소속 연구원이 인간과 식물의 교감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 연구진은 이런 점에 착안해 반려식물도 반려동물처럼 인간과 교감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연구에 착수했고, 최근 관련 연구가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농촌진흥청(이하 농진청)은 식물이 인간 행동에 대해 기체 화학물질을 통해 반응하는 현상을 포착하고 인간과 식물의 교감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13일 밝혔다.

식물은 초식동물이나 곤충이 자신에게 해를 가하면 위험에 처한 정보를 다른 식물과 화학물질로 주고 받는데 이 때 정보를 전달하는 화학물질을 ‘화학언어(chemical word)’라고 한다. 대표적인 화학물질이 ‘메틸자스몬네이트(MeJA)’이다.

연구팀은 인간의 냄새 물질에 식물이 반응을 보인다는 가설을 세우고 식물이 인간 행동에 실제 반응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두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종자를 퍼뜨리기 위해 인간을 이용하는 식물(우슬, 도깨비바늘)과 인간이 식용으로 이용하는 식물(갯기름나물, 우산나물)을 대상으로 사람이 식물에 가까이 접근해 입김을 내뱉었을 때 화학언어 물질이 얼마나 발생하는지 측정했다.

그 결과, ‘우슬’과 ‘도깨비바늘’은 메틸자스몬네이트를 0.04ppb씩 배출했고, ‘갯기름나물(0.35ppb)’과 ‘우산나물(0.36ppb)’은 이보다 약 9배 많은 메틸자스몬네이트를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또 어린 식물을 20분간 짓이겨 죽인 사람의 입김을 받아 죽은 식물의 동료 식물이 있는 유리 공간(챔버)에 넣은 뒤 식물의 화학언어 물질 변화량과 관련 유전자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일반 사람의 입김을 처리했을 때보다 식물에 해를 끼친 사람에게서 받은 입김을 처리했을 때 식물의 화학언어 물질(메틸자스몬네이트)이 23%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메틸자스몬네이트 발생에 관여하는 유전자(JAR1, JMT)의 경우 사람이 식물을 짓이겨 죽인 후 내쉬는 입김에서 반응해 메틸자스몬네이트 매출은 43%, 16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식물이 자신에게 위해가 가해질 때 특이한 화학성분을 내뿜어 주변 식물에 경고를 하는데 과거 위험 경험을 반영해 새로운 위협에 노출될 경우 화학물질 배출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이다.

이런 원리를 활용하면 병해충 방제에도 활용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식물에 악영향을 미치는 병해충에 노출될 경우 배출이 증가하는 화학물질의 성분을 파악한 뒤 식물 재배 시설에 해당 화학물질 감지센서를 설치하고, 배출량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신호가 오면 즉각적으로 방제하는 방식이다.

김광진 농진청 도시농업과 농업연구관은 "반려식물이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람만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식물도 사람이 자신에 대해 관심이 있는지, 미워하지 않는지를 느껴야 하는데 이번 실험은 이 같은 현상을 확인하기 위해 진행했다"며 "식물의 화학언어 물질을 정밀 분석해 사람과 반려식물 사이의 반응과 식물들 간의 해충을 쫓아내고 천적을 불러오는 동반식물 연구를 추가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연구 결과는 기존에 막연하게만 여겨온 인간과 식물의 상호작용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는 최초의 논문이라는 점을 인정받아 올해 7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기술우수논문’으로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