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조 4000억 규모 빅딜
PC용 CPU 급성장 이어 서버시장 공략 가속
경쟁사 인텔의 알테라 인수에 맞대응 성격도

CPU(중앙처리장치)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AMD가 FPGA(프로그래머블 반도체) 업계 1위 자일링스(Xillinx) 인수에 나섰다. FPGA는 강력한 병렬처리 성능으로 서버·AI(인공지능)·5G(세대) 칩으로 주목 받고 있다. 자일링스는 앞서 삼성전자의 인수설(說)이 흘러나오기도 했던 회사다. AMD가 자일링스 인수에 성공한다면 엔비디아의 ARM 인수에 이어 반도체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 것으로 보인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AMD 캠퍼스 전경.

지난 8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AMD가 자일링스를 300억달러(약 34조4000억원)에 인수하기 위한 사전 협상을 진행 중으로, 이르면 내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성사된다면 엔비디아의 ARM 인수 가격인 400억달러(약 45조8000억원)에 이은 올해 글로벌 2위 규모 M&A가 된다.

◇ '라이젠' 성공 AMD, FPGA 최강자 자일링스 인수 나서

AMD는 CPU 시장에서 인텔과, GPU(그래픽처리장치) 시장에선 엔비디아와 경쟁하는 회사다. 두 시장에서 모두 점유율 2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최근 CPU 시장에선 '라이젠'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머큐리 리서치에 따르면, 올 2분기 AMD는 PC CPU 시장 2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3년전 8%에서 12%포인트 늘어난 결과다.

라이젠의 성공에 AMD 실적도 개선되고 있다. AMD 올 2분기 매출은 19억3000만달러(약 2조 20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 늘었다. 주가도 상승세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AMD 시가총액은 지난 9일 기준 975억달러(약 112조원)에 달한다.

인수 대상 기업인 자일링스는 1984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설립된 FPGA 전문 업체다. FPGA는 하드웨어적으로 재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반도체다. 특정 연산을 위해 제작한 ASIC(주문형 반도체) 설계에 수년이 걸리는 반면, FPGA는 설치 후 하드웨어적인 재설계가 가능해 활용도가 높다.

FPGA는 인공지능(AI) 연산과 데이터센터·통신 산업에 널리 쓰이며 주목 받고 있다. 삼성전자와 화웨이 5G 칩셋에 자일링스 제품이 사용되고, SK텔레콤 또한 자일링스 주요 거래처 중 하나다.

삼성전자 5G 장비에 쓰이는 자일링스 '버설(Versal)' ACAP.

자일링스의 FPGA 시장 점유율은 50%를 상회한다. 현재 나스닥에 상장된 자일링스 시가총액은 295억달러다. 이마저도 미국의 화웨이 제재 이후 하락한 것이다. 자일링스는 매출 8%가량을 화웨이에서 거두고 있다. WSJ은 "최근 AMD 주가가 높은 만큼, AMD가 자사 주식을 현금처럼 사용해 자일링스 인수에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 AMD, 삼성 인수說 나오던 자일링스 인수로 인텔과 정면승부

자일링스는 과거 인피니언, NXP 등 반도체 설계 업체들과 함께 삼성전자의 인수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2030년까지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에 오르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한 후 유력한 M&A 대상으로 언급된 것이다. 자일링스 FPGA는 삼성전자 5G 장비와 자동차 전장에 널리 쓰인다. 자일링스 일부 제품군은 삼성전자 파운드리에서 만든다. 삼성전자 메모리를 사용함은 물론이다. 양사 시너지가 주목받던 이유다.

AMD가 자일링스 인수에 관심을 보이는 배경엔 경쟁사 인텔의 알테라(Altera) 인수가 있다. 알테라는 자일링스에 이은 FPGA 시장 2위 업체다. 인텔은 2015년 알테라를 167억달러(약 19조2000억원)에 인수한 바 있다. 이후 인텔은 알테라의 FPGA 기술을 활용해 서버·AI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AMD는 최근 소비자용 CPU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지만, 서버 시장에선 여전히 인텔 지배력이 공고하다. 인텔은 서버용 CPU 시장 95%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AMD가 PC 시장에선 성과를 냈지만 신뢰성을 중시하는 서버 고객사들에겐 외면받고 있다"며 "자일링스 FPGA 제품군을 손에 넣어 서버·데이터센터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