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의 준중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 ‘CR-V’는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꾸준한 판매고를 올려왔던 스테디셀러다. 지난 2004년 한국 판매가 시작되었는데, 적당한 가격과 준수한 성능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혼다를 대표하는 글로벌 모델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혼다의 준중형 SUV 뉴 CR-V 터보.

혼다는 지난 6월 5세대 CR-V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뉴 CR-V 터보’를 국내에 출시했다. 출시 당시 혼다코리아는 "내외관 스타일링과 편의 사양이 업그레이드됐다"고 신형 CR-V를 소개했다. 준중형 SUV는 가장 경쟁이 치열한 시장 중 하나다. 소형 SUV는 덩치를 키우고 상품성을 개선해 시장잠식을 도모하고, 중형 SUV는 약간의 비용만 더 내면 훨씬 더 쾌적하고 고급스러운 주행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혼다의 준중형 SUV 뉴 CR-V 터보.

뉴 CR-V 터보를 시승했다. 시승 구간은 서울 영등포에서 경기도 파주 임진강역까지 왕복 구간을 기본으로 서울 올림픽대로 등 도심 고속 주행 구간도 있었다.

뉴 CR-V는 현대자동차의 투싼과 거의 비슷한 크기다. 전장(4630mm)은 최근 출시한 신형 투싼과 동일하다. 전폭(1855mm)은 10mm 좁고 전고(1680mm)는 15mm 높다. 축거(휠베이스)는 2660mm로 95mm 짧다. 축거가 10cm 정도 차이 나는 것을 제외하면 크기가 비슷한 셈이다

혼다의 준중형 SUV 뉴 CR-V 터보.

국내에서 인기를 끄는 일본 자동차가 대개 그렇지만, CR-V는 미국산 자동차에 가깝다. CR-V는 지난해 미국에서 38만4000대가 팔렸고 올해도 9월까지 22만7000대가 팔리는 등 미국 시장을 노린 모델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지난해 21만3000대가 판매됐지만, 다른 차량도 그렇듯 중국 판매 모델은 아예 별도의 차종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국내에 수입된 모델도 미국에서 생산된 차량이다. 시승차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모두 영어로 되어있고, 에어백이 있는 자리에 붙어있던 태그도 영어로 쓰여 있다. 연비 측정 초기화 등 소소한 기능 작동 방식이 미국에서 판매되는 차와 다른 정도다.

CR-V를 시승하면서 외관 및 내장 디자인이나 주행 성능 등에서도 일본차라기 보다 미국차, 또는 일본적 섬세함이 더해진 미국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다의 준중형 SUV 뉴 CR-V 터보.

외관은 이전 모델과 큰 변화가 없다. 일본차에서 볼 수 있는 약간 과장되게 디자인적인 강조를 하는 게 라디에이터 그릴 위의 굵은 은색 라인이나, 헤드램프 아래 범퍼가 크게 튀어나와 있는 데에서 묻어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무난하다는 인상이었다. 직선을 위주로 해 날렵함을 강조하는 옆 부분 라인이나 급격히 내려가는 뒷 부분은 누구나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거꾸로 된 T자형으로 측면 부분까지 넘어서 있는 테일램프 디자인이 포인트를 주는 모습이다.

혼다의 준중형 SUV 뉴 CR-V 터보.

내장의 경우 단정하면서도 무난했다. 뒷좌석은 레그룸이 1026mm로 상당히 넓은 편이다. 신장 180cm인 성인 남성이 뒷좌석에 앉았을 때 다리나 머리에 신경쓰지 않고 편안하게 앉아있을 수 있었다. 좌석 시도 쾌적했다. 하지만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디스플레이가 7인치로 작고, 라디오나 음원 재생 등 조작 방식이 불편하다. 디지털 클러스터(계기반)이 대형이고 시인성이 뛰어난 것과 균형이 안맞는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기어가 센터페시아 아래쪽에 있는데, 꽤 대형이라 운전자에 따라서 다른 기능을 쓰기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다. 큼지막한 기어 노브가 손을 뻗으면 바로 잘 잡히니 운전할 때는 편하지만 말이다.

혼다의 준중형 SUV 뉴 CR-V 터보.

짐칸의 용량은 561L로 나쁘지 않다. 높이도 상당한 편이라 짐을 적재하기 편리하다. 뒷좌석을 접으면 최대 2146L까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혼다의 준중형 SUV 뉴 CR-V 터보.

CR-V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주행 성능이다. CR-V는 배기량 1498cc 4기통 가솔린엔진에 무단변속기(CVT)를 탑재한다. 최대 출력은 193마력(ps), 최대 토크는 24.8kg.m다. 언덕길에서 가속도 꽤 빠른 편이었고, 굽은 정도가 심한 커브길을 달릴 때에도 안정적으로 주행을 할 수 있었다. 스포츠모드로 전환할 경우 엔진회전수가 급격히 오르면서 재빠른 가속력을 보여주었다. 시속 80km 이상으로 달렸을 때 약간의 소음이 유입되는 편이긴 했다. 하지만 대량 판매를 목적으로하는 준중형 SUV라는 것을 감안하면 기대 이상의 주행성능을 갖고 있었다. 연비는 13.5km/L으로 공인 연비(12.6km/L)보다 약간 높게 나왔다.

혼다의 준중형 SUV 뉴 CR-V 터보.

CR-V는 혼다의 주행 안전 기능인 ‘혼다센싱’을 기본으로 탑재한다. 차로 유지 보조, 차간 간격 유지, 도로 이탈 방지, 전방 주차 보조 시스템 등이다. 지금은 이정도 급의 차량들이 대개 기본 탑재에 더해 옵션 등으로 제공하는 기능이지만, 혼다의 경우 일찍부터 안전 기능에 투자해와 노하우가 상당하다. 크루즈 컨트롤이나 차선 유지 등의 기능들이 운전자가 과하게 신경쓰지 않게하면서도 원활하게 작동되었다.

전반적으로 뉴 CR-V 터보는 SUV로서 기본기에 충실한 차량이다. 내장이나 인포테인먼트 등에서 약간의 불편함이 있지만, 가성비(가격 대 성능비)를 감안했을 때 합격점을 줄만 해보였다. 가격은 EX-L 트림 3850만원, 투어링 트림 454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