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에서 규제지역 지정을 해제해 달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집값 과열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대출과 세금, 전매제한 등에서 더 까다로운 조건을 적용받게됐는데 형평성에 맞지 않고 재산권도 침해받았다는 주장이다.

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희국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인천 서구, 경기 양주시, 의정부시, 안성시, 평택시가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지정 해제를 공식 요청한 상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의정부와 양주, 화성, 평택, 용인 등 경기도 주요 조정대상지역 뿐만 아니라 대전 동구와 중구, 청주 등에서 조정대상지역 해제를 촉구하는 지역민들의 민원이 줄줄이 제기돼있다.

정부는 6·17대책을 통해 일부 자연보전권역과 접경지역을 제외한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전 지역을 조정대상지역에 포함시켰다. 경기 고양과 안성·오산·시흥, 인천, 대전, 충북 청주 등 25곳을 조정대상지역으로 추가 지정했고, 경기 성남 수정구, 수원, 안산 단원구, 인천 연수구, 대전 유성구 등 17개 지역은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조정대상지역은 69개, 투기과열지구는 48개로 각각 늘었다.

양주옥정 공동주택용지 전경.

정부는 집값 상승률이나 청약 경쟁률이 높아 부동산 시장 과열이 우려되는 지역을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고 있다. 주택법상 조정대상지역 지정 요건은 3개월간 집값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1.3배를 초과하는 경우 등이다.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되면 주택담보대출 가능 규모가 줄고 양도소득세가 중과된다. 조정대상지역의 경우 6개월~소유권 이전 등기일까지 전매가 허용된다. 해당 지역 부동산 시장에 투기수요 유입을 차단하려는 게 정부의 취지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선 조정대상지역 지정을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목소리가 크다. 일례로 의정부 청원인은 "일부 급등한 신규주택을 제외한 주택가격은 3년 전 가격 그대로 이거나 오히려 하락한 곳도 있다"고 했다.

안성시도 "주택법에 정한 조정대상지역 지정을 위한 정량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획일적으로 조정대상지역에 편입됐다"면서 해제를 주장했다. 실제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된 안성의 지난 3~5월 집값 상승률은 0.09%였는데, 이는 규제를 피한 김포(0.11%)보다 낮은 수치다.

단기적 상승세만 보고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박정희 청주시 의원은 "오창읍의 방사광 가속기 등 개발 호재에 힘입어 단기간 주택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3년 6개월이 넘도록 미분양관리지역인 청주시를 규제지역에 포함한 것은 근시안적인 행정조치"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청주시가 미분양관리지역으로 최초 지정된 2016년 10월 이 지역의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103.9였으나 지난 6월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될 당시는 92.1로 11.8 포인트 감소했다"면서 "미분양관리에 돌입했을 때보다 아파트 가격이 낮은데도 투기 과열을 막겠다며 강제적으로 규제 지역에 포함한 셈"이라고 말했다.

청주시는 6·17 대책에서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실제 수도권 대부분 지역과 세종시가 규제지역으로 묶인데다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방사광가속기 유치 확정으로 인한 개발 호재에 관심이 쏠리면서 청주시 부동산 시장에 풍선효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시장은 급랭했다. 지난 5월 청주 아파트 거래량은 5410건에 달했는데, 지난달에는 1100건에 그쳤다.

지자체들이 조정대상지역 해제를 촉구하는 것은 지역 민심을 대변하기 위함이다. 여기에 시장이 냉각하면 지역 경제에 악영향이 있을 거라는 우려도 있다. 부동산 거래량 감소는 곧 지방세수 감소로 이어진다.

그렇다보니 ‘지역이 살아나려면 투자수요 유입도 필요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경기 북부 양주시의 조정대상지역 해제를 촉구한 청원인은 "양주시는 변방으로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이라면서 "계속 미분양이 나고 이제서야 2순위에서 청약이 마감되는 수준인데 조정대상지역인 된 이후부터는 외부에서 전혀 관심도 두지않는다"고 토로했다. 실제 양주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수도권 미분양 관리지역이었다가 지난 6월에서야 벗어났다.

상당수 전문가도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비규제지역 등 핀셋규제의 부작용을 지적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투기수요를 막으려는 취지가 있지만, 핀셋규제가 실거주자의 재산권 및 주거 문제와 민감하게 연결돼있다"면서 "거래가 쉽지 않다는 데 따른 불만과 함께 대출 규제 강화로 실수요자의 내집 마련 진입 장벽이 높아지면서 주거 불안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규제가 단기 안정책은 될지 몰라도 시장 왜곡과 불안을 키운다는 부작용이 있다"면서 "조정대상지역을 조정할지 여부가 아니라 제도 자체의 필요성에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집값 하락 없이 조정대상지역을 해제해주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왜 특정 지역은 풀어주고 우리 지역은 안 풀어주느냐는 문제 제기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는 조정대상지역 해제도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뚜렷한 가격 하락이 곧 조정대상지역 해제의 명분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같은 동에서도 오르는 단지가 있고 안 오르는 단지가 있는데, 이를 규제 상에서 구별해 적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지역 내 주택 거래량, 최저 매매가와 최고 매매가(신고가)를 뺀 중간가격에 대한 통계화 등 조정대상지역 지정에 대한 정량적 조건을
좀 더 세분화하고 지정·해제에 대한 평가를 고도화해 시장의 신뢰를 높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